사회주의 조국이라는 악령

북한 국가우표발행국에서 발행한 사회주의농촌테제발표 50돌 기념우표.
북한 국가우표발행국에서 발행한 사회주의농촌테제발표 50돌 기념우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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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간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해 여름 이후 당 간부 여러분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명언’이라는 제목의 손바닥 크기만 한 책자를 품속에 품고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소책자는 2013년 6월 19일 당, 국가, 군대, 근로단체 출판보도 부문 책임일꾼들 앞에서 한 연설이라는 ‘혁명 발전의 요구에 맞게 당의 유일적 영도 체제를 더욱 철저히 세울 데 대하여’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10대 원칙’ 정도로 북한 당간부들 입장에서는 중히 여기고 학습해야할 책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김정은의 명언’이라는 소책자의 내용에 있는 조목조목들은 ‘10대 원칙’ 못 지 않게 당 간부 여러분이 깊이 각인해 두어야만 신변안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중요한 책인 것 같아 그 내용을 검토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소책자의 첫 장에 ‘조국과 민족,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큰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조국이 있어 당도 정권도 있고, 사회주의 제도도 인민의 행복한 생활도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사실 일제 36년간의 식민지 생활을 경험한 세대들은 누구나 조국을 잃었을 때 겪은 고통과 치욕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직접 경험하지는 못 했지만 교육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흔히 글로벌 시대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 각국이 유무상통하는 시대, 특히 경제적으로 자본과 기술, 물류가 손쉽게 국경선을 넘나들고 있는 시대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세계의 모든 국가는 자국의 영토를 지키고 국경선을 지키는 것을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에 놓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조국이 있어야 당도 있고 정권도 있고 사회주의 제도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은 일단 맞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어서 기술한 다음 문구, 즉 ‘사회주의 조국은 곧 수령이고 조국의 품은 곧 수령의 품이다’라는 말은 무언가 잘못된 현실, 오늘날 북한인민이 겪고 있는 압제와 빈곤, 비인간적 생활의 근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어서 반드시 심각하게 검토해 봐야할 내용입니다.

아직도 북한에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과연 김정은이 북한에 사회주의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지, 여러분도 진정으로 북한사회가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다른 사회주의 정의는 불완전한 것이라고 항상 주장해온 노동당이기 때문에 노동당의 영원한 수령이라는 김일성의 ‘사회주의 조국에 대한 정의’를 한번 인용해 보겠습니다.

1982년 북한의 과학, 백과사전 출판사가 간행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로작 용어 사전’ 298쪽을 보면 김일성은 ‘사회주의 조국’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습니다.

“근로인민 대중이 국가 주권과 생산 수단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하는 사회주의 제도가 마련된 조국을 말한다”

이어서 사회주의 제도란 “인민대중이 정권을 잡고 있으며 생산 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에 기초하여 인민의 복지를 계통적으로 증진시킬 목적 밑에 높은 과학 기술적 토대 위에서 생산을 끊임없이 계획적으로 발전시키며 온갖 착취와 억압을 영원히 없애고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며 로동의 질과 량에 따라 분배를 하는 가장 선진적인 제도를 말한다”

당 간부 여러분!

여러분은 사회주의 조국, 사회주의 제도에 대한 김일성의 이 정의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김정은이 주장하고 있는 ‘사회주의 조국’이 영원한 수령 김일성이 정의한 그런 조국입니까? 사회주의를 이처럼 명확하게 정의한 김일성 자신도 자신이 정의한 ‘사회주의 조국’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채 죽고 말았습니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의 로동의 질과 량에 따라 분배 받는다”는 헛소리를 김정은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능력에 따라 일하는 것은 고사하고 온갖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식량 배급도 받지 못한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이런 나라 형편을 외면하고 마치 김정은이 북한이라는 나라와 인민을 품어 안고 있는 듯 거짓말을 일삼고 있습니다.

자기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고사총으로 처형한 김정은의 품이 어머니 품과 같다는 말입니까?

김일성조차 그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사회주의를 현재 김정은의 지도력으로 실현 할 수 있다고 여러분들은 진정으로 생각하십니까?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이 무력혁명으로 세운 공산당 1당 독재 정치를 구현했던 모든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미 무너졌거나 사회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도를 포기하고 수정, 개혁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이미 개혁, 개방을 선언한 중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김정일은 “중국 공산당은 수정주의 집단으로 사회주의를 배신했다”고 규탄했지만 그 후 중국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여러분이 직접 경험하고 알고 있는 그대로 무너졌던 경제를 재건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꼽히는 강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오늘날 북한이 경제정상화를 이룩하지 못한 근본 원인은 끝까지 개혁, 개방을 거부한 결과로 봐야합니다. 그럼 왜 개혁, 개방을 실행하지 못합니까? 바로 세습 독재체제를 유지하려는 김정은의 강압과 고집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더 이상 ‘사회주의 조국’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수령의 품’은 바로 고통과 고난의 품입니다. 이것은 너무도 분명한 진실이기 때문에 하루 속히 현 체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과감한 조치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