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간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10월 10일은 여러분 당 간부들에겐 연중 최고의 명절로 지켜집니다. 그 이유는 조선노동당 창건일이기 때문입니다. 금년은 7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본 방송자는 이 날이 가까이 오면 조선노동당 출판사가 펴낸 ‘조선로동당약사’를 비롯하여 최근 출판된 노동당 관련 출판물들을 주의 깊게 읽어 봅니다.
왜 읽는가? 그 이유는 신화와 같은 얘기, 진실과 다른 날조된 얘기가 어떤 부분에 삽입, 추가 되었는가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당 간부에겐 귀에 거슬리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이 아닌 거짓말, 근거도 없고 구체적 일시도 장소도 없이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얘기를 ‘위대한 수령님의 업적’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면 조선로동당약사 186쪽에 기술한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1945년 8월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군사요충지들인 경흥군의 토지와 훈춘현의 남별리, 도흥진을 습격하여 적의 무력을 소멸하고 혼란을 일으킴으로써 해방작전을 벌이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지어 놓았다”느니, “1945년 8월 9일 김일성 수령이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 공격명령을 조선인민혁명군에 내렸다”느니 하는 신화 같은 얘기입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는 바와 같이 1945년 8월 9일은 소련이 일본에게 중립조약을 깨고 선전포고하며 연해주에서 만주로 진격해 들어온 날입니다. 소련군의 대일참전을 김일성의 조선인민혁명군이 공격한 것처럼 날조했습니다. 조선노동당 창건과 관련된 기술도 이와 같이 날조된 주장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조선로동당약사 203페이지는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1945년 8월 20일 군사정치간부들 앞에서 한 <해방된 조국에서의 당 국가 및 무력건설에 대하여> 라는 역사적 연설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확고히 령도할 수 있는 맑스·레닌주의 당을 창건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인민정권을 세움으로써 혁명에서 기본문제인 주권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나라와 인민을 보호하고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할 인민무력을 건설해야 합니다. 당면한 이 3대 과업을 해방된 조국에서 조선혁명을 급속히 발전시키기 위하여 하루도 지체할 수 없는 긴급한 혁명임무로 나섰습니다.“
당 간부 여러분! 그런데 이 8월 20일 군사정치간부들 앞에서 행했다는 이 역사적 연설을 어디에서 한 것입니까? 장소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왜 장소와 당시 이 지시를 받았다는 정치군사간부들의 면면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합니다. 날조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김일성은 이런 연설을 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날조된 기술이라는 것을 증명할까요? 그것은 김일성 일행이 원산에 상륙한 날짜가 음력으로 1945년 8월 14일, 양력으로 8월 19일 이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이날의 광경을 ‘북조선왕조성립비사’의 저자, 만주에서 항일 투쟁을 했고 1956년 이상조 대사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김일성 우상숭배를 비판하다 숙청된 임은 선생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도착한 다음날이 추석이었다. 그들은 운동장에서 개최된 씨름도 보았고 2층 여관에서 여장을 풀고 조선의 떡과 음식 그리고 술을 마시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날은 그들에게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었다. 소련군의 첩보요원으로 파견되었던 박길남(후일 초대 조선인민군 공병국장·소련국적의 조선인)이 만주에서 이들을 만나 돼지고기와 소주 접대를 받았고 연해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연결된 날이 바로 4년 전 즉 1941년 추석 전 그날이었기 때문이었다. 4년 후 같은 날 이들은 연해주에서 푸가초프라는 배를 타고 원산항에 들어온 것이다.”
이런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면 조선로동당약사의 기술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해방이 되어 추석 무렵에 원산에 도착한 이들은 북한주둔 소련군 사령부의 명령을 받고, 인연이 있는 지역의 소련군 위수사령부의 부책임자로 명령받아, 김일성과 최용건은 고향인 평양으로, 김책은 함경남도, 박성철은 함경북도 등 각지에 배치되었던 것입니다.
당 간부 여러분! 그러니까 한 달 후에 개최될 당 창건은 이들 김일성과 그 일행에 의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북한주둔 소련군이 준비했고 김일성은 소련군이 작성한 계획서에 따라 순종하며 움직였을 뿐이었습니다.
1945년 10월 5일부터 일주일간 김일성과 그 일당은 평양에 주둔한 소련군 제25군 정치부에서 작성한 러시아 원문을 서툴기 짝이 없는 조선말로 번역한 연설문을 읽는 연습을 하거나,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소련해방군환영식장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제25군 군사위원 레베제프 소장과 군사행정부 사령관 로마넨코 소장으로부터 구체적인 지시를 받고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당 간부 여러분! 여러분도 혹시 들었는지 모르나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기본원칙에는 한 나라에는 하나의 공산당이 인정될 뿐입니다. 이 원칙에 의해 이미 8월 하순 서울에 재건된 박헌영 중심의 조선공산당이 활동을 개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일성 일당이 조직한 북조선 공산당은 서울의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되는 것입니다.
10월 13일 평양에 모인 공산당원들이 서울 박헌영 조선공산당책임비서에게 보낸 축하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소련 붉은 군대의 영웅적 투쟁에 의해 유리한 조건이 실현된 조선에서 박헌영 동지의 정당한 노선에 따라 북조선5도 연합회의를 개최하게 된데 대해 전 세계 무산계급의 조국인 소련방 스탈린 대원수에게 감사하며 동시에 조선무산계급의 영도자 박헌영 동지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수령 스탈린 대원수 만세, 조선의 무산계급의 수령이신 박헌영 동지 만세, 1945년 10월 13일”
바로 이것이 여러분 당 창당에 관한 진실입니다. 더 이상 소설과 같은 신화를 만들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우상화는 하지 말아야 함을 간곡히 권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