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들여다보기] “비전향장기수 북송은 6.15 은덕”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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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언론의 겉과 속 시간입니다. 북한 언론매체가 한 비전향장기수의 수기를 소개하면서 그들이 북한에 올 수 있었던 것은 ‘6.15의 은덕’때문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진행에 정영기자입니다.

북한의 대남선전 매체인 통일신보 6월 5일자는 6.15공동선언 발표 10주년을 맞아 비전향장기수의 수기를 소개했습니다.

이 신문은 2년 전에 사망한 비전향장기수 김인서 씨가 남긴 미완성 수기를 그의 딸(김화심)이 완성했다면서 “36년간 감옥생활을 했던 아버지가 살아서 불굴의 투사로, 시대의 영웅으로 될 수 있었던 것은 6.15의 덕분”이라며 김정일 위원장에게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이명박 역적패당’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전면 부정하고, ‘함선침몰 사건’이라는 것을 조작하고 반공화국 대결소동에 미쳐 날뛰고 있다”고 성토했습니다.

이 수기의 주인공인 김인서 씨는 6.25전쟁 때 남파되었다가 체포되어 36년 동안 감옥생활을 한 뒤, 6.15남북정상회담 후속조치로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북송될 때 함께 갔습니다.

김인서 씨가 자신의 수기에서 밝혔듯이 비전향장기수들은 ‘6.15공동선언의 최대 수혜자들’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6.25전쟁 때 빨치산, 인민군, 정치공작원으로 남한에 파견되어 체제전복 활동을 했기 때문에 한국의 실정법으로 따지면 간첩에 해당됩니다. 그런데도 6.15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어 남한 정부가 다 올려 보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북한에 올라가서도 북한체제를 선전하는 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감옥에서 악착한 고문을 받고 전향을 강요당했는데도 신념과 의리, 지조를 지켰다고 글을 써 북한 체제 공고화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북한 언론매체들도 비전향장기수들이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이겨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매체들과 장기수들이 주장한대로 남한의 감옥이 그처럼 열악하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 번 소개되었지만, 지금 남한의 감옥은 북한의 휴양소, 대학 기숙사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남한 교도소에서는 감방 안에서 색텔레비전도 볼 수 있고, 매일 들여보내는 신문도 볼 수 있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 압니다. 그리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있고, 고기반찬을 섞은 밥도 하루 세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북한 매체들은 비전향장기수들은 인간세상과 철저히 격리되어 언어기능과 사물을 식별할 사유능력 조차 잃어버린 채 화석으로 살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인모 씨를 형상한 영화에서 쥐를 잡아먹는 장면도 내보냈습니다.

그러면 북한의 감옥은 어떻습니까, 근 20만 명이 갇혀있는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에는 구속영장도 없이 끌려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하루 통강냉이 한줌으로 끼니를 에우고, 너무 허기져서 쥐를 날 것으로 먹고, 바퀴벌레를 먹으며 삶과 죽음의 기로를 헤매고 있습니다. 공민권이 박탈된 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기억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비전향장기수들이 쓴 글을 보면 북한의 이러한 열악한 감옥 환경이나 정치범 수용소와 비교해 쓴 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때 북한에서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불렸던 이인모 노인이 북한의 한 교도소를 둘러보고 “나 같으면 이런 곳에서 3년도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말을 한 이인모 씨도 남한에서 34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고도 북한에 올라와 89살까지 살았습니다.

이번에 수기를 쓴 김인서 씨도 81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한에서 올라간 비전향장기수 63명 가운데 현재 살아있는 사람은 50명 정도 되는데 그들 모두 80세가 넘습니다. 그러니 비전향장기수들의 수명은 북한 주민들의 평균 수명인 69세보다 10년이나 더 긴 셈입니다.

1993년 3월 당시 76살의 이인모 씨가 북한에 들어오자, 그것을 지켜본 주민들은 “34년 동안 감옥살이 한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다니?”하며 의혹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나이 70세만 넘어도 ‘장수’한다고 불리는 요즘 북한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이 오래 산다는 게 신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비전향장기수들은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보다는 한참 행운아들입니다. 왜냐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은 평생 밖으로 나올 수 없는데 비전향장기수들은 그래도 밖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북한에 살고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은 남쪽보다 더 무서운 감옥이 바로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 있다는 걸 모르는 모양입니다. 지금은 번듯한 집을 쓰고 살고, 영웅대접을 받으며 산다고 하지만 말 한마디 잘못하면 비전향장기수라도 결코 안전할 수 없습니다.

북한 언론매체들도 아무리 장기수 문제를 놓고 시비를 해도 남파간첩들까지 다 보내주는 대한민국의 아량과 인도주의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