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상 최초로 지방에서 진행된 경제관련 군중대회에 참가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 대해 알아봅니다.
- 북한의 물가가 화폐개혁 이전 수준으로 복귀되면서 화폐개혁 실패에 대한 주민들의 비난이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북한의 양대 보안기관이 국경통제에 힘을 집중한 결과 탈북자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도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정영기자와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정영기자, 안녕하세요?
MC:
6일 북한 언론들이 김정일 위원장이 2.8비날론연합기업소 준공을 축하하는 함흥시 군중대회에 참가했다고 보도했는데, 김 위원장이 경제관련 군중대회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까,
정영:
김정일 위원장이 경제관련 군중대회에 참가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김 위원장은 노동당 창건절(10.10)이나 정권 수립절(9.9)과 같이 5년마다 꺾어지는 해를 맞아 진행되는 열병식이나 횃불행진에는 여러 번 참가했지만 경제관련 회의, 특히 그것도 지방에서 진행되는 군중대회에 참가 한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입니다.
지난 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후에 김정일은 “경제가 좀 어렵더라도 (자신은)총대사상을 중요시한다”면서 선군정치에 관심을 높였고 수백만 명이 굶어 죽던 대아사 기간에도 경제 분야에 대한 현지시찰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경제 분야에 관심을 부쩍 보이고 있습니다.
MC:
그러면 김정일 위원장이 요즘 민생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영:
김정일 위원장의 민생관련 행보를 보면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지적한 대로 주민생활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데로부터 집중적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의 해로 만들겠다고 인민들과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2012년이 다가오면 올수록 핵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대화도 잘 안되고, 남북관계도 부진하기 때문에 외부의 경제적 도움을 기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체의 능력으로 경제문제를 풀자니 목표 달성이 요원해지고 이러다가는 또 인민들과 한 약속을 어기게 되었습니다. 당장 후계자에게 권력 승계도 마무리 해야 하는 등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만큼 북한 지도부는 성과주의에 조바심이 났고 그래서 점을 찍은 것이 아마 2.8비날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MC:
그러고 보니 아버지로부터 시작해서 김 위원장 가문은 ‘비날론 사랑’으로 유별나군요?
정영:
김일성 주석도 비날론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김일성 주석은 비날론을 발명한 이승기 박사를 내세워주고 그가 비날론을 발명했을 때는 ‘주체섬유’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김 주석이 세상을 떠나면서 비날론 공장은 원료부족과 전기부족 등 원인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업적이 깃든 비날론 공장을 다시 살리는 것이 ‘유훈관철’로 된다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항상 김일성 주석의 후광을 받아 북한을 통치해왔습니다. 즉 수령의 유훈을 관철하는 것이 ‘전사의 도리’라는 명분으로 주민들을 규합했습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이번 함흥시 군중대회에 보낸 특별 감사문에서 “(비날론 공장 가동은)새로운 원자탄을 쏜 것과 같은 특대형 사변”이라고 치켜세운 것입니다.
MC:
김 위원장이 이렇게 민생현장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화폐개혁으로 혼란스러워진 민심을 다독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 않습니까,
정영:
지난 11월에 있은 화폐개혁으로 북한은 큰 실책을 범했습니다. 그때 100대1로 높인 화폐가치는 3개월 만에 100대1로 하락해 제자리에 돌아왔습니다. 물가는 화폐개혁 이전과 같아졌고 그 와중에 적대세력, 체제불만자만 양산시켰습니다.
때문에 김영일 내각총리가 직접 나서 주민들 앞에서 사과한 상황에서 지도자가 직접 나서 경제를 살린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이번 행사를 극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MC:
그래서 비날론 공장 가동에 동원됐던 수십 명에게 노력영웅칭호를 주고 명함시계를 안겨주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었군요.
- 신화폐와 구화폐가 악수했다?
MC:
화폐개혁 이후 북한에서 상승하기 시작한 물가가 결국 화폐개혁 이전과 같아졌다는 소식이 있는데 어떤 소식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정영:
최근 며칠 새에 물가 폭등으로 북한 주민들이 아주 어리둥절했다고 합니다. 지난 2월 말 회령시, 청진시, 혜산시 장마당들에서 쌀 1kg당 520~550원에 거래되었지만, 3월 2일 들어 갑자기 1천 원대로 뛰어올라 지금은 1,500원까지 올랐습니다.
물가는 전반적 수준에서 올라 일본제 자전거는 10~15만원에 거래되고, 텔레비전 등 가전제품들도 화폐개혁 이전과 같은 가격에 팔려 사람들은 “구화폐와 신화폐가 악수하게 되었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MC:
“구화폐와 신화폐가 악수하게 되었다? 이건 무슨 소린가요?”
정영:
물가가 화폐개혁 이전과 같아졌기 때문에 결국 실패했다는 소립니다.
돈을 교환해줄 때 100:1로 낮추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물건 가격도 100대 1로 낮아졌는데, 3개월 만에 신화폐가 기존 구화폐의 가격을 따라잡았다는 것입니다.
MC:
그러니까 당국의 화폐정책에 대한 비난이 되겠군요? 북한에서 왜 물건 가격이 자꾸 올라가는 겁니까,
정영:
북한 식량 가격이 안정되지 못하고 오르는 것도 쌀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마당 쌀 가격이 하도 불안해 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1,000원을 하다가도 내일은 또 1,200원이 됩니다. 그러니 쌀을 가진 사람들은 좀 더 비쌀 때 팔려고 내놓지 않고, 식량을 사려는 주민들은 많으니 가격이 올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북한에서 식량분배를 다 받은 농민들은 좀 괜찮고 도시 주민들은 야단났다고 합니다.
MC:
식량이 부족하면 앞으로 가격이 계속 상승할 텐데요, 얼마 전 한국의 농촌경제연구원이 북한의 식량상황을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정영: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8일 발표한 ‘2010년 북한의 식량수급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가을부터 올 여름까지 북한의 곡물생산량이 380~400만 톤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는 북한 주민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최소 수요량을 523만 톤으로 볼 때 100~120만 톤이 모자란다고 이 연구보고서는 밝혔습니다.
이는 북한 주민이 하루 먹는 식량이 1만 톤 가량 된다고 볼 때 약 3개월 분이 부족한 것으로 된다고 탈북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MC:
3개월이면 지금부터 봄철에 가장 어렵겠는데요, 국제사회에서 식량 지원이 이뤄질 것 같습니까,
정영:
현재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은 불투명합니다. 식량지원은 크게 한국과 미국, 중국 등 국가들이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매해 30만 톤 이상 식량을 제공했지만, 지금은 거의 중단된 상태이고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과정이 진전되지 않고 있어 대규모 식량지원을 유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유엔식량계획(WFP)은 북한에 전달된 식량의 분배 감시를 놓고 북한과 마찰을 빚는가 하면 회원국들의 기부가 줄어들어 대북식량 지원이 중단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유일하게 남은 것은 중국인데, 중국은 매해 30만 톤 가량의 식량을 유무상 지원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그만한 수준으로 지원될 것으로 보입니다.
MC:
그렇군요. 북한에서 봄철에 먹는 문제가 가장 심각한 시기인데, 국제사회의 지원도 줄어들면 쌀 가격이 또 오르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북 국경봉쇄 탈북자 줄어들어
MC:
북한의 양대 보안기관인 보안성, 국가안전보위부가 나서 국경을 봉쇄한 이후에 탈북자들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는데 어떤 소식입니까,
정영:
지난 8월 인민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부가 국경봉쇄를 철저히 한 결과 탈북자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함경북도 회령시 보안서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주민은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50일 전투 총화 결과 회령시에서 적발된 탈출자들이 14건으로 드러났고, 행불자도 19명에 달한다면서 작년에 50여명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총화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MC:
북한에서 국경봉쇄는 계속 돼왔는데 이번 봉쇄는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정영:
북한 권력기관의 연합성명 이후에 국경지역에는 국경경비대 외에 보안서와 규찰대가 합동으로 봉쇄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국경경비대는 1선을 맡고, 노동당 민방위부 산하 노동적위대는 기본 탈출 통로인 길목을 맡고, 보안성 규찰대는 국경으로 통하는 산 고갯길과 골목길 등을 막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경지역에는 국경경비대, 국경보위원, 보안서, 노동적위대 등 4겹의 그물망을 형성했다고 합니다.
MC:
90년대 중반에는 주민들이 배가 고프면 중국으로 달아날 수 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말 물샐틈없이 막고 있어 넘을 수도 없겠군요. 그 안에서 굶주릴 주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영기자, 오늘 소식 잘 들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오늘 ‘북한들여다보기’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