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북한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이모저모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 대담엔 북한 전문가인 국민대학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숩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 동서독의 통일 후 문제점을 얘기하시면서 남북한이 통일되면 북한 주민들이 겪게 될 경제적 격차에 대한 소외감이 동독 주민들보다 더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란코프: 그 까닭은 남북한의 1인당 소득 격차가 동서독 격차보다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서독 사람의 평균소득은 동독 사람의 평균소득보다 2배 정도 높습니다. 남북한을 보면 이러한 격차는 적어도 15배, 많게는 40배로 추산됩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김정은 세습 독재정권에 도전하면서 통일에 대한 희망이 동독 사람들 보다 더 클 것입니다.
변: 북한 주민들도 통일되면 남한 주민들처럼 금새 잘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란코프: 네, 북한 주민들은 통일 직후 곧 남한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소문이나 연속극을 통해서 배운 남한 생활을 알게 된다면 통일 직후 서울 사람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순 없습니다. 물론 통일 덕분에 북한 주민 절대 대다수는 생활이 많이 좋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이 훨씬 더 높은 남한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확실히 알 수 없지만 15년이나 20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변: 말씀하신 15~20년이라면 상당히 오랜 세월인데요. 왜 그렇다고 봅니까?
란코프: 독일 통일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정치 때문에 북한의 경제 구조와 기술은 많이 낙후되고 있습니다. 핵 개발이나 미사일 개발이 아닌 북한의 일반 경제는1960년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 대부분은 통일이 돼도 좋은 남한 공장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능력과 기술을 감안하면 북한 사람 대부분은 간단한 미숙련 노동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남한에서도 미숙련 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북한 하급 간부보다 더 잘 삽니다. 그래서 통일 후 미숙련 노동을 할 북한 주민들의 생활도 많이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남한과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점입니다. 통일 직후 남북 격차가 빨리 좁아지긴 하겠지만 얼마 동안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변: 통일 후 북한 노동자들의 능력과 기술이 떨어져 남한 주민과의 생활 수준은 여전히 떨어질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주시죠.
란코프: 예를 들면 북한 기술자를 생각해봅시다. 북한 기술자 대부분은 컴퓨터 설계를 잘 모를 뿐 더러 지난 20~30년 동안 세계에서 발전해온 새로운 기술을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 기술자를 무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북한 기술자 대부분은 기본 지식이 너무 튼튼합니다. 그들은 물리학이나 수학을 한국이나 일본 기술자보다 더 잘 알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구체적인 기술, 정보 기술 지식의 부족입니다. 컴퓨터를 잘 모르고 새로 발명한 기술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술자 대부분은 통일 이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자로 남아 있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이 다니고 있는 공장 대부분은 사실상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기술 역사 박물관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변: 하지만 북한 기술자들도 새로운 교육,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이들에 대한 재교육이 가능하다는 말인데요.
란코프: 물론 그럴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 사람, 또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40세가 넘은 사람들이 어려울 것입니다. 능력이 조금 부족한 사람들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 기술자 대부분은 통일 경제에서 장사꾼이 되거나 그냥 숙련 노동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절대적인 소득을 보면 통일된 나라에서 노동자는 지금 북한 공장 지배인보다 더 잘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술자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고 어느 정도 불만을 품게 될 것입니다.
변: 기술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란코프: 제가 볼 때 단지 기술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지식인들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의사들입니다. 지금 한국 병원의 의술은 뛰어납니다. 그러나 북한 의사들은 남한에서 사용하는 약품의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 고급 치료방법을 잘 모릅니다.
변: 북한에서 의학기술을 배워 의사가 된 사람들이라도 통일 후엔 활용할 여지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란코프: 역설적인 사실은 북한 병원시설, 의약시설이 낙후 하였지만 북한 의사들은 어느 입장에서 보면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았더라면 90년대 말 아사자들이 더 많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들은 고급 기술에 익숙한 남한 의사들 보다 진단을 더 잘할 줄 압니다. 그들은 의학이론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술자와 같은 사람들의 문제는 지식의 부족입니다. 고급 약품도 모르고 치료시설을 이용할 수도 없는 사람은 의사로 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그들 가운데 기술자처럼 새로운 교육을 받고 성공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객관적인, 주관적인 이유 때문에 이렇게 하지 못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문제 입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이와 비슷합니다. 수학이나 물리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은 아마 남한 선생님들 보다 수업을 더 잘할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나 사회학, 조선역사, 아니면 김일성 김정일 혁명활동 교원들은 어떨까요? 북한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김정일 혁명역사나 혁명활동의 내용을 보면 100% 정부 왜곡과 거짓말입니다. 그 거짓말 밖에 모르는 학교 교원은 어떻게 될까요?
변: 그런 사람들은 통일 후 아무런 활용 가치가 없지 않을까요?
란코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수 천년 한국 역사를 생각해보면 20~30년 과도기는 짧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장기적으로 말하면 통일은 진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입니다. 문제는 과도기입니다. 통일 직후의 상황은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분단의 유산, 세습독재의 유산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 동안 북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남한 사람들도 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이후 과도기는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통일 이후 과도기에 대한 지나친 희망이 없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또 그들은 통일을 위해서 바로 지금 준비를 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변: 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에선 남북 통일 뒤 북한 주민들의 재교육 문제와 관련해 란코프 교스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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