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게 문제지요] 북한, 경제 개혁 앞서 사회개혁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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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도 대담엔 북한 전문가로 남한 국민대 교수이신 안드레이 란코프 박삽니다. 안녕하세요. 북한 지도자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올해 육성 신년사를 보면 유독 경제 부문에 관한 언급을 많이 했는데요. 이런 신년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하네요.

란코프: 솔직히 말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주장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 말은 올해 북한의 경제가 그대로 어려워질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난 10여년동안 북한 경제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배가 고픈 사람은 많지만, 굶어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경제가 개선된 것은 김정일, 김정은 정권의 노력과 큰 상관이 없습니다. 북한의 경우 경제 발전은 압도적으로 북한 정부의 조치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변: 자발적이라면 당국의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경제가 발전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다소나마 북한의 경제상황의 개선을 초래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란코프: 제가 보니 북한 경제가 개선된 이유는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자발적인 시장화 때문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1990년대 들어 나라에서 배급을 받을 수 없자 장마당으로 나가 장사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순수한 장사뿐만 아니라 개인 생산, 개인 봉사까지 많이 하게 됐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경제상황의 개선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간부들의 사고방식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기업소 지배인을 비롯한 북한 간부는 단순히 중앙에서 나오는 지원을 기다리지 않고 필요한 부속품 또는 재료를 독자적으로 찾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떤 공장은 지금도 가동하고 있습니다.

셋째 이유는 중국과의 경제협력과 무역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북한은 중국에 광산 채굴권을 팔아 어느 정도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 드린 세가지 이유는 김정은이 펼치는 정치와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사실상 북한 지도부가 현재 추진하려는 경제 정책은 경제복구를 초래할 수 없습니다.

변: 북한 지도부가 현재 추구하려는 경제 정책을 무엇이라고 봅니까?

란코프: 북한의 정책 결정자들은 구소련과 비슷한 경제체제, 즉 국가사회주의 경제를 선호합니다. 대부분 북한 고급 간부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경제 체재에 다른 대안이 있다는 점을 잘 모릅니다. 그들은 또한 이 같은 국가사회주의 경제가 북한의 체제유지를 많이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 간부들이 가진 이념은 스탈린 식 소련경제입니다. 스탈린 식 경제에선 국가는 생산계획을 결정하고 자본과 노동력을 배전시키고 주민들에게 배급을 줍니다. 세계에서 과거 이러한 체제를 시도한 나라는 많았지만 북한에선 1980년대 이 체제가 극에 달했습니다. 쉽게 말해, 스탈린 식 경제는 김일성 시대의 경제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제 체제는 북한 원로 간부들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경제구조 입니다.

변: 그렇군요. 그런데 사회주의권이 멸망한 이유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효율성이 없는 국가사회주의 경제 아니겠습니까?

란코프: 맞습니다. 소련이든 중국이든 동유럽이든 세계 역사가 잘 보여주듯 이와 같은 경제구조로는 오랫동안 경제성장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북한 경제가 1970년대부터 점차 어려워지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국가 사회주의 경제 때문입니다.

변: 그렇다면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가 국가사회주의 경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경제를 살릴 희망은 없습니까? 도대체 그들이 추구하는 계획은 무엇일까요?

란코프: 제가 보니까 현 단계에서 북한이 품을 수 있는 희망은 기적과도 같은 기술뿐입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오래 전부터 CNC (컴퓨터 수치제어) 기술을 도입하려는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올해 신년사를 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반복해서 하는 말이 '시설이 조금 더 많이 갖춰있고 전력이 조금 더 잘 나오고 노동자들이 조금 더 열심히 일했을 때 경제가 조금 더 개선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북한과 같은 나라는 기술과 노동만 추가한다고 해서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물론 고급기술이 있으면 경제발전과 생활수준 향상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기술 자체는 경제 성장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현대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기 위한 필요한 조건은 다름 아닌 사회적 환경 입니다.

변: 그렇군요. 그러니까 사회적인 환경이 먼저 마련돼야 북한의 경제 개혁도 가능하다는 말씀이네요?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경제적 성공을 이룩한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1970년대 말 중국이 개혁을 통해 나라를 바꾸기 시작했을 때 중국 정부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지도 않았고 많은 돈을 투자하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바꾼 것은 중국의 사회구조뿐 이었습니다. 그들은 농민들이 수확을 다 국가에 바치지 않고 남는 것은 마음대로 시장에서 팔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공장 지배인이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보다 자유롭게 경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결국 중국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소득이 높아졌고 잘 살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게으른 사람이나 생산을 관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소득이 적고 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고 시간낭비와 재료낭비 등을 피하고, 있는 시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에 결국 중국은 전례 없이 빨리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기업소도 새로운 현대 기술을 많이 들여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면 중국의 경제 성장을 초래한 것은 새로운 기술 투입이 아니라 사회구조 변화였습니다.

변: 그렇군요. 중국에서 사회적 환경을 먼저 개선해 경제 개방, 개혁을 이뤄낸 사실을 북한의 간부들도 알고 있을까요?

란코프: 물론 북한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사회구조의 변화 없이 경제성장은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와 같은 정책변화를 제안하는데 따른 공포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변: 왜 그럴까요?

란코프: 제가 볼 때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북한은 세습독재국가입니다. 북한체제는 김일성이 만든 체제입니다. 그 때문에 북한 체제에 잘못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김일성에 대한 비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일성의 손자이기 때문에 자기 할아버지가 만든 체제를 바꾸기도 어렵고 이 체제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북한의 경우 중국식 개혁과 개방은 외국 생활, 특히 남한 생활에 대한 지식을 확산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식의 확산은 국내 안전을 위한 체제유지를 위협할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 결정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그들은 사회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기적과 같은 현대 기술에 대해서도 희망이 많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면 북한의 경우 사회의 구조 변화 없이 기술은 북한 사회를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변: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에서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북한 개혁을 위한 선결 조건이라는 말씀을 란코프 교수로부터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