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게 문제지요-19] 북한 간부층, 통일 뒤 인권침해 책임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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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이모저모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 대담에는 북한 전문가로 남한 국민대의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입니다. 안녕하세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3대 세습 체제인 북한이 진정한 개혁, 개방을 하지 않고 생존하는 것은 장기적으론 불가능하고, 결국은 망할 가능성이 크다. 또 그 경우 남한에 흡수통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는데요.

란코프

: 제가 볼 땐 사실이 아닙니다. 남한 사회에서도 한때 무르익던 통일에 대한 열정이 많이 식었습니다. 남한 주민 대부분은 겉으론 통일을 바란다고 말하지만, 속으론 통일이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는 입장입니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이 얼마나 어렵게 사는지 알고 있고, 그래서 통일을 무거운 경제부담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통일을 제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은 북한 특권 계층, 북한 고급간부 계층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들만큼 통일을 무서워하는 세력이 없습니다.

변: 북한 공산주의자에 의한 적화통일이 아니고, 남한에 흡수되는 통일이라서 그렇습니까? 왜 그럴까요?

란코프

: 그렇습니다. 북한 주민들과 달리 북한 지배계층은 남과 북의 현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북한 사회와 경제가 남한에 비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남북 국력 격차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통일에 대한 착각이 없습니다. 물론 그들이 두려워하는 통일은 당연히 흡수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한때 주창하던 연방제식 통일도 너무 빨리 흡수통일로 변절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흡수통일의 경우 북한 지배계층은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변: 흡수통일이 될 경우 구체적으로 북한 간부층이 직면하게 될 공포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란코프

: 제일 먼저 그들은 자기들이 지배해온 북한 주민들에 대한 공포가 많습니다. 사실상 지난 50년은 북한 경제의 몰락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원래 동아시아 지역에서 제일 발전된 지역으로 여겼던 북한은 지금 제일 어렵게 사는 지역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와 같은 경제적인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세력은 바로 북한 지배계층입니다. 체제가 무너지면 그들은 이러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더 무섭게 생각하는 것은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지금의 김정은 시대에 벌어진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입니다. 북한에서는 정치범으로 수용소나 사형장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수십 만 명에 달합니다. 그들 가운데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북한 지배계층에서 이와 같은 테러행위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체제가 무너진다면 감옥으로 가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특히 그들은 북한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반동분자가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반동분자 딱지를 붙인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일제시대나 남조선 지배계층 출신들이나 그 가족들입니다. 그들은 다양한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 고급간부들은 체제가 무너진 다음에 이와 동일한 차별을 받을 걸로 생각합니다.

변: 그렇다면 과거 공산주의를 실시했다가 망한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란코프

: 사실상 소련과 동유럽의 경우 국가사회주의 붕괴 때문에 제일 많은 이익을 얻은 사회 세력은 오히려 중급, 고급 간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체제가 무너졌을 때 그들은 자신의 특권을 자본으로 바꾸었습니다. 예를 들면 러시아와 동유럽 기업소들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 대부분은 공산당시대 지배인 출신들입니다. 쉽게 말하면 지배인들은 경영했던 국가 기업소를 자신의 개인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국가 재산을 훔쳤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변: 공산 치하에서 잘 못을 저질렀던 사람들이 어떻게 공산 체제가 무너진 뒤에도 이처럼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해가 안 가네요.

란코프

: 사실상 구 소련에서 시장경제가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간부들은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인맥도 있었고 경험도 있었고 제일 중요하게 국가 재산에 대한 실제 통제가 있었습니다.

변: 구소련이나 동유럽 나라들은 오늘날 남북한처럼 분단 국가는 아니었지 않습니까? 이를 테면 구소련의 경우 ‘남소련’ 혹은 ‘북소련’이란 말은 없었는데요. 그런 점에서 남북한과는 차이가 있겠죠?


란코프

: 그렇습니다. 북한과 동유럽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잘사는 남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분단된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소련이나 동유럽은 체제가 무너진 다음에도 공산당시대 간부계층 출신들을 대체할 수 있는 세력이 없었습니다. 북한의 경우 체제가 붕괴되면 남한에 흡수통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되었을 경우 북한의 특권계층이나 지배계층이 아닌 남한 출신들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북한 간부계층의 우려와 공포는 지나치게 크다고 생각합니다. 흡수통일의 경우에도 그들 대부분은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변: 흡수통일 후에도 북한의 전직 간부들이 북한에서 계속 지배적인 위치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 좀 이해가 안 갑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란코프

: 제 논리는 이렇습니다. 북한사회에서 간부계층은 행정경험 및 현대 지식을 거의 독점해온 세력입니다. 북한에서 경제를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간부일 것입니다. 체제가 무너진 다음에도 북한 경제를 관리할 사람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간부 출신들이 될 것입니다. 간부출신들이 아닌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변: 하지만 북한 간부들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현대적인 경영 기술을 갖춘 남한 관리들이나 기업가들이 그런 역할을 떠맡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란코프

: 그럴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바라건 데 만일 북한에서 세습독재가 흔들리기 시작할 때 남과 북은 연방제식 통일을 추진해보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연방제가 아닌 흡수통일의 경우에도 남한 출신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라를 잘 아는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려야 됩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란 나라를 잘 아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물론 북한 간부들입니다.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봅니다.

변: 북한 간부들 가운데는 주민들을 탄압한 인권 침해자들도 적지 않을 텐데요. 이들은 당연히 통일 뒤 단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또 그런 정서가 남한 주민은 물론 피해를 당한 북한 주민들에게 아주 깊게 깔려 있을텐 데요.

란코프

: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런 간부들의 인권침해를 수사한다 해도 별로 진전이 없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북한 인권침해가 수사하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인권침해의 방대성 때문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인권침해에 대해 직접, 간접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그 사람들의 옛날 잘못에 대한 수사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론 고급 보위원 일부는 재판에 따라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권 탄압에 연루되지 않은 노동당 간부나 경제일꾼은 물론 인민군 군관들은 지나치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변: 글쎄요. 과연 그런 식의 처리를 피해를 당한 북한 주민들은 물론 북한 인권을 위해 투쟁해온 남한 주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란코프

: 물론 김일성, 김정일 시대 고생이 많던 사람들, 특히 당시 수용소에서 죽거나 사형을 당한 가족들은 저의 이런 말을 싫어할 수 있습니다. 윤리적으로 말하면 그분들은 제 말을 좋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볼 때 남과 북의 사회 현실을 감안하면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록 받아들이긴 힘들겠지만, 저는 이것을 불가피한 타협으로 봅니다. 이런 타협이 있게 된다면 북한 체제가 무너진 다음에도 통일된 한국의 북반부엔 과거 구소련이나 동유럽처럼 전직 노동당 간부들이 그대로 힘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좋든 싫든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변: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에선 북한 간부층이 통일의 최대 반대 세력이라는 점, 하지만 통일 뒤엔 북한 주민의 인권탄압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간부들의 경우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란코프 교수로부터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