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차근차근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도 대담엔 북한 전문가로 남한 국민대 교수인 안드레이 란코프 박삽니다. 지난 시간에 김일성이 생존 시 절대권력을 쥐고도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경제 개혁에 사용하길 거부했다는 점을 지적하셨는데요. 그 뿐 아니라 김일성은 독재권력을 위해 자신의 정적들도 철저히 숙청했죠?
란코프: 그게 바로 김일성의 사례입니다. 1945년에 북한 지도자가 된 김일성은 자신의 권력유지와 강화를 최고로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걸 위해서1930년대 항일 투쟁에서 공헌한 사람들마저 숙청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공산주의 운동가들은 숙청을 당했습니다. 조선공산당의 창시자인 박홍련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중국에서 김일성보다 항일 투쟁의 선봉으로 훨씬 더 유명했던 무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 현대 언어학 창시자와 대표적인 진보지식인인 김두봉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사람들은 모두 외국 간첩이란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쓴 채 고문을 받고 마침내 김일성에 의해서 학살되었습니다. 그들은 물론 간첩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아마 김일성보다 미국과 일본을 더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김일성이 그들을 죽인 이유, 나아가 수 만 명의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들을 죽인 이유는 권력 유지 때문입니다. 김일성은 이 다툼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이겼습니다. 최초 혁명가이자 항일 독립운동가로 시작한 김일성은 권력을 잡은 뒤엔 독재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독재자는 범죄 행위를 저질러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변: 북한의 철저한 독재자였던 김일성이 1994년 사망하고, 아들인 김정일도 아버지 이상의 독재자로 군림하다가 지난해 사망했는데요. 두 사람을 독재 행태를 비교해주시죠.
란코프: 여기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독재자 김일성의 정치적인 유산인 독재자 김정일에게 미친 영향입니다. 그 입장에서 보면 1970년대부터 후계자로 낙점된 김정일은 어린 시절 부 터 자기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공산 체제의 포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이 설령 1990년대 초까지 김일성 제도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불만을 절대 표현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1994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에도 아무 것도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김일성 시대의 다양한 실정이 90년대 들어, 특히 94년 이후 많이 두드러진 까닭은 단순히 김일성 사망 때문만은 아닙니다. 당시 북한의 국내외 사정과 사태 변화 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변: 구체적으로 왜 그런지 설명해주시죠.
란코프: 김일성 시대 경제구조는 효율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은 소련과 같은 외부세계의 지원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런 국가가 된지 50년이나 됐습니다. 김일성은 1990년대 초까지 소련과 중국에서 이러한 지원을 얻어내는 방법을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소련과 중국이 북한을 지원한 이유는 지정학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국제 전략 때문입니다. 소련과 중국은 북한을 중요한 완충지대처럼 생각하였습니다. 미국을 억제하기 위해서 필요한 완충지대가 바로 북한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공산권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80년대 말에 들어와 소련도 중국도 많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냉전시대가 끝나자 소련도 중국도 북한을 더는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결국 1990년대 초 두 나라는 대북 지원을 단절했습니다. 두 나라에 의존하던 북한 경제도 결국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경제 위기를 본 북한 사람들은 이게 모두 김정일의 잘못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냉전체제가 무너진90년대 초 북한 경제에 몰아 닥친 위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김정일 보다 김일성입니다. 북한 경제가 소련과 중국 지원 없이 생존할 수 없도록 만든 원인은 바로 김일성의 경제 정책이었기 때문입니다.
변: 김일성이 경제를 망친 까닭은 무엇일까요?
란코프: 이것은 복잡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김일성 자신의 무식함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일성은 탁월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는 외교를 아주 잘했습니다. 소련이든, 중국이든, 미국이든 김일성은 외교적으로 너무 잘 관리할 줄 알았고, 잘 활용할 줄 알았습니다. 국내에서도 김일성은 반대세력을 쉽게 고립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생명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아주 쉽게 죽일 수 있었습니다. 완벽한 독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김일성이란 독재자가 경제를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몰랐습니다. 김일성은 그냥 소련 식 경제사회를 복사했고, 이 경제의 문제점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습니다.
변: 김일성의 경제정책에 문제가 있었다면 옆에서 그를 지켜본 김정일이 상황을 바꿀 수도 있었을 텐데요?
란코프: 부친이 사망한 뒤 실권을 장악한 김정일은 많이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여러 번 중국의 개혁-개방 현장을 답사하기도 한 김정일은 중국식 개혁을 시작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식 개혁과 개방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권력기반을 위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은 개혁을 하기 보다는 그대로 김일성 체제를 유지하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정권유지를 위협하지 않는 해결책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런 효율성이 없는 옛날 경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 노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 경제 체제는 흔들리거나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 김정일의 책임이라기 보다는 김일성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유를 들어보지요. 설계가 나빠 건설이 잘못된 건물이 무너진 이유는 설계자와 건설자의 잘못입니다. 그 건물을 관리한 사람도 책임이 없지 않지만 설계자와 건설자만큼 심하진 않습니다. 북한의 경우 김정일이 관리인이었다면 김일성은 설계자이자 건설자였습니다.
변: 네,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이 시간에는 오늘날 북한 경제가 엉망이 된 구조적인 원인이 따지고 보면 김일성의 잘못된 경제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말씀을 란코프 박사로부터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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