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차근차근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도 대담엔 북한 전문가로 남한 국민대의 안드레이 란코프 교숩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김일성이 북한에 남긴 유산에 관해 살펴보지요. 해방 후 김일성은 소련의 국가사회주의 경제를 도입해 인민 생활이 더 나빠졌는데도 이걸 감춘 채 반대파 세력을 무자비하게 축출하고 주민들에 대해선 우민화 정책을 펼치지 않았습니까?
란코프
: 북한 경제가 1960년대에 어려워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김일성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 같은 사실을 숨기려 노력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쇄국정책, 고립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일성은 북한 주민들이 외부생활에 대해서 알 수 없어야 나라를 통제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사실상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김일성 시대의 북한 주민들은 북한이 세계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라고 주장하는 국가의 선전을 많이 교육받았습니다. 그들은 외부생활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비교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라의 선전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사실과 거리가 먼 주장입니다. 1960년대 말부터 북한의 이웃인 남한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비교적으로 말하면 북한 경제가 많이 뒤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의 정치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이 사실을 잘 몰랐습니다.
김일성은 철저한 쇄국정책, 고립정책을 실시한 덕에 주민들을 우민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김일성만큼 자기 나라를 철저하게 고립시킨 통치자를 현대사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쇄국정책은 김일성 개인 정권을 강화해주긴 했지만 위험한 부작용을 가져왔습니다. 김일성은 좋았을지 몰라도 북한 주민들은 그 때문에 세계의 흐름을 전혀 모르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고 만 것입니다.
변: 그런데도 북한 주민들이 그토록 김일성을 따랐던 것을 보면 나름대로 주민들한테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봐야 합니까?
란코프
: 문제는 김일성 정책의 성공이 무엇이냐 하는 것인데요. 이 질문의 대답에 따라 성공이나 실패에 대한 평가도 다르게 됩니다. 김일성 정책이 만일 북한을 현대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한 정책으로 생각한다면 실패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김일성이 1946년 북한에서 정권을 잡았을 당시 북한은 남한보다 중국보다 대만보다 경제, 사회 발전 수준이 더 높았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이 1994년 사망했을 때 북한은 이런 이웃나라들에 비해 크게 뒤쳐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김일성의 목적이 자신의 개인 권력 유지라고 생각했다면 그의 정책은 눈부신 성공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20세기 역사에서 김일성처럼 거의 5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통치자는 드문 일 입니다. 사실 1945년 해방 뒤 북한에 들어온 김일성은 권력 기반이 약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당시 조선 공산당 최초지도자는 박헌영이며 북조선 최고 지도자는 김두봉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나중에 김일성에 의해 숙청을 당했습니다. 박헌영은 미국 간첩이라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북한 선전을 믿으면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노동당 창시자 대부분은 미국간첩들 입니다. 그러나 원래 권력기반이 취약한 김일성은 반대파를 물리치고 마침내 권력을 잡고 유지하였습니다. 그는 소련과 중국 압력을 무시하였습니다. 1950년대 북한의 일부 세력이 소련과 중국의 지지를 받아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김일성은 이를 성공적으로 진압했습니다. 그 뒤 그는 공산주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세습 정권을 세웠습니다. 그런 점에서 김일성의 목적이 정권유지와 강화였다면 김일성은 성공한 정치인으로 봐야 합니다.
변: 김일성이 이처럼 주민들의 복리와 생활개선은 무시한 채 철저히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데 있었다면 그건 성공한 정치인이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김일성은 자신을 어떻게 봤을까요?
란코프
: 이런 말이 있습니다. 권력은 통치자를 파괴합니다. 절대적인 권력은 절대적으로 권력자를 파괴합니다. 원래 김일성은 공산주의란 고상한 이름을 믿었고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영웅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에 흡수된 김일성은 많이 바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숙청해야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김일성이 박헌영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박헌영이 김일성을 죽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독재 국가 역사, 특히 공산주의 독재 국가 역사를 보게 되면 어디에서나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미래를 희망했던 젊은 김일성은 마침내 공포와 진압을 통해서 정권을 유지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독재자로 바뀌었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김일성은 자신을 나라와 인민을 위해서 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사람은 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잘못과 자신의 도덕적 부패를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말하면 김일성 통치는 비극적인 시대였습니다. 북한 사회와 북한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력과 능력을 낭비하는 시대였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한 뒤 김정일이 정권을 잡으면서 북한 사회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김정일 시대의 북한 사회는, 특히 2000년 대 이후는 국가사회주의라기 보다는 자발적인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북한 사람 대부분은 장마당을 통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일성 시대에 만들어진 사회 감시망과 통제구조도 점차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뒤 김일성이 창립한 왕조가 지금까지 북한을 통치합니다. 북한 지배계층은 압도적으로 김일성 시대 출신들입니다. 이것은 김일성 시대의 나쁜 유산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심각한 나쁜 유산은 북한 경제입니다. 북한 경제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문제의 기원은 바로 김일성 시대의 정치에서 비롯됐기 때문입니다.
변: 네,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김일성 시대의 나쁜 유산에 관해서 란코프 교수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