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 도 대담엔 남한 국민대 학교의 안드레이 란코프 교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날 북한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면 경제라고 할 수 있는데요. 남한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1년 북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이 남한의 1970년대 중반 수준인 약 720달러에 불과합니다. 같은 해 남한의 1인당 국내 총생산이 2만3천749달러에 비하면 3%에 불과합니다. 북한은 중국은 물론이고 베트남, 라오스 같은 다른 사회주의에 비해서도 경제가 상당히 뒤쳐져 있는데요. 북한 경제가 이처럼 뒤쳐진 원인을 뭐라고 봅니까?
란코프 : 북한 경제는 문제가 많습니다. 이들 문제는 주로 김일성 시대부터 그대로 남아있는 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북한 상황을 보니까 제일 어려운 문제가 농업이지만, 제일 쉽고도 제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개혁은 바로 농업 개혁입니다. 다행히 이 문제를 쉽게 해결 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은 가설적인 이야기라기 보다 중국과 베트남 경험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변: 금방 북한의 농업개혁을 말씀하시면서 이걸 쉽고도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하지만 북한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협동농장을 고집하고 있는데 개혁이 쉽게 되겠습니까?
란코프 : 말씀하신 대로 북한은 1950년대 말부터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역사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세계 어디에서나 국가 소유가 된 협동농장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농민들은 다른 사람의 땅에서 일하는 것보다 자기가 소유한 땅에서 훨씬 더 열심히 일합니다. 김일성은 협동농업을 구 소련에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구 소련에서 집단 농업,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은 실패였습니다.
변: 구 소련에서 협동농장이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북한보다는 더 잘 살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똑같이 협동농장을 해오고 있는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아직까지도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란코프 : 1960~70년대 구 소련을 방문한 북한 사람들은 소련을 부자 국가로 생각하였습니다. 당시 소련에선 배급도 별로 없었고, 누구든지 빵과 쌀, 강냉이 등을 많이 구매 할 수 있었습니다. 우유나 설탕과 같은 식품은 북한에서 보기 드물었지만, 당시 구 소련에선 작은 마을에서도 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련 농업 역사를 보면 협동 농장을 중심으로 하는 소련 식 사회주의 농업의 잘못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잠깐 그 역사를 살펴봅시다. 1917년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식량 수출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협동농장시대가 1930년대 시작된 다음에 러시아는 심각한 기근을 경험했습니다. 농업 집단화 직후 1930년대 초 소련에서 수백 만 명의 농민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한때 식량 수출국으로 유명했던 러시아는 1960년대부터 대규모로 식량 수입을 시작했습니다. 소련 공산당은 이것을 큰 문제로 생각했고 식량생산을 늘리기 위해 노동 동원을 많이 했습니다. 비료 생산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식량 소비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소련은 더 많은 식량을 수입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1991년 소련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구 소련을 이어받은 새로운 러시아 정부는 농업에 대해 신경을 그리 많이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구소련 시절처럼 노동동원은 물론 없습니다. 비료나 농업 기계 생산도 특별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 생산은 많이 높아졌고, 특히 곡식생산은 그랬습니다. 그 결과 지난 10여년 동안 러시아는 다시 한 번 식량 수출국이 되었습니다.
변: 지금 금방 러시아가 예전처럼 다시 식량 수출국으로 전환했다고 하셨는데요. 그 비결은 어디에 있었다고 봅니까?
란코프 : 간단하게 말하면 원래 협동농장이 없었을 때 농민들이 자기 땅에서 일했을 때 곡식을 많이 생산했을 뿐 아니라 외국으로 많이 팔았습니다. 협동농장시대는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식량을 많이 생산하지 못하고 해외에서 많이 수입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사라지고 국가가 경영하는 협동농장이 없어지자 러시아에서 곡식생산이 많이 높아지고 러시아는 다시 한번 수출국이 된 것입니다. 지금 러시아에선 수많은 농민들이 그대로 협동농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협동농장은 옛날처럼 국가가 엄격하게 통제했던 협동농장이 아닙니다. 오늘날 협동농장은 농민들이 진정 함께하는 협동농장입니다.
변: 그러니까 협동농장이 국가 소유가 아니라 자율적인 협동농장이라는 말씀인데요. 이처럼 러시아는 한때 극심한 기근을 경험했다가 오늘날 식량 수출국이 된 나라도 있는데요. 중국과 베트남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란코프: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 이와 같은 경향은 러시아보다 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1970년 대까지 기근을 자주 경험한 국가였습니다. 중국에서도 배급제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픈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식량생산은 갑자기 빨리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뒤 7~8년 동안 곡식 생산은 1.5배나 증가하였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주민들은 모두 100%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77년에 중국의 1인당 곡식 소비는 290킬로그램이었지만, 1999년에 와서는 410킬로그램에 달했습니다. 소고기와 양고기, 돼지고기를 보면 더 현저한 사례가 있습니다. 1977기준으로 중국에서 매년 소고기와 돼지고기소비는 평균 4킬로그램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1999년 들어서 고기 소비는 47킬로그램에 육박했습니다. 고기 소비가 20여년 동안 10배나 늘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변: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에서는 북한이 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안전한 경제개혁은 협동농장과 같은 농업개혁이라는 점을 란코프 교수로부터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