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도 대담엔 남한 국민대학의 안드레이 란코프 교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북한이란 나라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라면서 서구 자유민주주의 나라들이 사용하는 '공화국'이란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는데요. 공화국의 핵심은 주권을 가진 국민이 자유 의사에 따라 직접 혹은 간접 선거를 통해 국가원수를 뽑는 제도 아닙니까? 그런 측면에서 북한을 과연 공화국으로 볼 수 있을까요?
란코프: 북한은 공화국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북한은 세습독재 국가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북한은 현대식 절대 군주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김정일이 공식 후계자가 되었을 때 북한 언론은 그가 아버지 덕분이 아니라 능력 때문에 후계자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 언론은 지금 너무 젊고 어떤 경험도 없는 김정은에 대해서도 꼭 같은 선전 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과연 북한에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정일이 북한 최고 지도자가 된 이유, 위대한 영도자가 된 이유는 바로 김일성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김정은이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이유도 김정일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변: 그러니까 김정일이나 김정은 모두 선친이 권좌를 물려줬기 때문에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는 말씀인데요. 말씀하신 대로 중세 봉건시대에나 볼 수 있는 세습체제가 북한의 체제인데요. 북한이 왜 이런 세습체제를 채택했다고 봅니까?
란코프: 이와 같은 세습정치는 김일성부터 시작했습니다. 김일성은 최초 1960년대 김정일을 후계자로 세웠을 때 자신의 사후에도 명예와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김일성은 왜 그랬을까요? 1960년대 당시 국제 상황을 보면 김일성의 우려가 무엇인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은 원래 구 소련 독재자 스탈린을 모방하였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1953년에 죽었습니다. 스탈린이 사망한 지 얼마 후 소련에서 그는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스탈린에 대한 비판을 한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스탈린 시대 고급 간부들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원래 스탈린을 극찬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스탈린이 죽자 그는 갑자기 비판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1960년대 소련에서 벌어진 스탈린 격하운동을 본 김일성이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을 찬양하는 사람들도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일성은 자기 앞에선 하나님보다 극찬 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죽은 후에 자신의 역사적인 유산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변: 그렇군요. 그럼 소련에서 이처럼 스탈린 격하운동이 벌어졌을 때 중국은 어땠나 궁금하네요?
란코프: 사실 1960~70년대 중국을 보면 소련과 아주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스탈린과 달리 중국 모택동 주석도 자신의 후계자를 임명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계자는 모택동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1960년대 후계자가 된 사람은 모택동 총 비서가 제일 믿던 림표란 사람입니다. 그는 당시 중국에서 국방부장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림표는 모택동의 죽음을 기다리지 못하고 모택동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하지만 이 음모가 발각되자 림표는 소련 망명을 시도했는데 비행기 추락 때문에 죽었습니다. 이런 사실에서 김일성이 배운 교훈이 무엇일까요? 바로 후계자가 없으면 안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후계자가 있으면 보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은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비판해도 민중의 지지를 받지도 못하고, 자신이 인기를 초월 할 수도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누구일까?
변: 글쎄요. 그런 사람이 김일성 자신 말고 누가 있을까요? 아마도 자기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혈육인 아들은 믿을 수가 있겠지요?
란코프: 물론 그렇습니다. 당시 김일성 입장에서 보면 아들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싫어할 수도 있으나 아버지 덕분에 권력과 특권을 받은 아들이 아버지 정치를 공개적으로 비판 할 수 없습니다.
변: 흥미롭군요. 아들이 아버지를 싫어할 수도 있다, 이런 말이 새삼스러운 건 아닌데요. 다시 말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요. 김정일도 부친 김일성을 싫어했을까요?
란코프: 글쎄요. 알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김정일의 개인 생활과 성격에 대해서 잘 알려진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자기 아버지인 김일성을 진짜 사랑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닙니다. 1960년대 아들을 후계자로 임명한 김일성의 논리는 개인 감정과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의 논리는 아들이면 개인 감정과 무관하게 아버지를 비판해봤자 자신의 권력기반을 약화시킬 수 밖에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은 세습정책을 시작한 것입니다.
변: 그러니까 설령 아들이 비판하더라도 그래 봤자 자신의 권력기반만 약화되기 때문에 그러지 못할 것이란 논리 때문에 김일성이 아들을 후계자로 정했다는 말인데요. 그런데 김일성과 김정일이 이런 세습정책을 통해 뭘 지키고 싶었을까요?
란코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제가 볼 때 지키고 싶은 것은 두 가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김일성이 만들어놓은 정치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김일성의 역사적인 역할과 위치입니다.
우선 당시 김일성은 자기가 만든 북한 식 사회주의가 우월하고 우수한 체제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1980~90년대 역사에서 잘 볼 수 있듯이 김일성식 사회주의는 든든한 근거가 없는 비합리주의적인 경제, 정치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스스로 올바르다고 착각했던 체제가 그대로 남아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일성 자신의 역사적인 역할에 대한 우려입니다. 소련과 다른 다른 공산권 국가의 역사를 본 김일성은 스탈린과 같은 사후 운명을 피하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죽은 다음에도 공격과 비판의 대상이 되기보다 하나님과 같은 흠모와 극찬의 대상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정도로 아들을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한 것입니다.
변: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에서는 북한의 전근대적인 세습체제를 만든 장본인은 김일성이었다는 사실을 란코프 교수로부터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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