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게 문제지요-40] 북한, 돈의 힘 커지면서 부패도 급속히 번져

평양 고려호텔 앞의 군밤,군고구마 판매대.
평양 고려호텔 앞의 군밤,군고구마 판매대.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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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차근차근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대담엔 북한 전문가인 남한 국민대학교 안드레이 란코프 교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북한의 부정부패 문제를 다뤄봤으면 합니다. 북한의 부정부패 문제는 사실 새로운 얘기는 아닌데요. 실례로 독일에 본부가 있는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가별부패인식지수를 보면 북한은 183개국 가운데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와 함께 가장 낮은 점수인 1점, 다시 말해 가장 부패한 국가로 낙인이 찍혔는데요. 북한이 정말 이렇게 부패합니까?

란코프: 네, 북한은 부정부패의 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엄밀히 말하면 북한은 서구식 개념의 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부정부패 왕국'이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지금 북한에서 뇌물을 주면 뭐든지 할 수 없는 일이 없습니다.

: 북한이 원래도 이렇게 부패한 나라였나요?

란코프 : 아닙니다. 물론 김일성 시대의 북한은 잘못이 많았습니다. 김일성 시대의 북한을 보면 국가 감시와 통제가 너무 엄격하였습니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자유가 없는 나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시대의 북한은 부정부패문제, 뇌물문제가 그리 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본적인 이유는 김일성 시대 북한 사회는 배급제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북한 사람들 대부분은 배급을 받아 생활했습니다. 1970~80년대 북한에는 귀국 교포들을 비롯해 돈이 많은 부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시 북한에서 돈의 힘은 미약하였습니다. 장마당에서 팔리는 것도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살만한 물건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간부들의 입장에서 보면 뇌물을 받기보다는 법대로 하는 것, 법칙을 잘 지키는 것이 오히려 합리주의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법을 잘 지키지 않을 경우 그들은 감옥에 갈 수도 있고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리에서 물러난 간부는 좋은 배급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생활이 많이 어려워 졌을 것입니다.

: 당시엔 부정부패를 하려 해도 감시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맞습니다. 김일성 생존 당시 북한 사회에서는 감시가 엄격하여 간부들 조차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그들이 불법행위를 하면 잡힐 가능성도 훨씬 높았습니다. 그렇지만 제가보기에 준법에 대한 공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돈의 힘입니다. 이미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김일성 시대 북한에서 돈은 힘이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 힘을 주는 것은 돈보다 지위였습니다. 말하자면 돈 때문에 지위를 위협하는 행위를 할 생각이 별로 없던 상황이라 간부들은 뇌물을 그리 많이 받지 않았습니다.

: 그렇다면 김일성 시대의 북한에선 부정부패가 전혀 없었다는 말인가요?

란코프 : 물론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김정일, 김정은 시대만큼 심하지 않지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부정부패의 형식은 대부분 뇌물을 주고 받는 것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친구, 친족, 가족들 불법적으로 도와주는 행위였습니다. 돈이 없는 사회에서는 인맥이 중요합니다. 저는 소련에서 자라난 사람으로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자란 1970년대까지도 소련은 뇌물이 많은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그 때 소련에선 인맥이 중요했지만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이처럼 김일성 시대까지만 해도 별로 찾아보기 어렵던 부정부패가 왜 김정일, 그리고 그의 뒤를 이은 김정은 시대에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까?

란코프: 쉽게 말하면 김일성 식 사회주의가 무너져서 바뀔 수 밖에 없었습니다. 1990년대 중엽에 식량기근이 몰아 닥친 고난의 행군 때 북한에서 굶어 죽은 사람들 가운데는 소련과 노동당을 믿던 간부들까지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의무를 잘 지키고 불법행위를 전혀 하지 않고 주민들에게 어떤 뇌물도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배급이 나오지 않는 당시 북한 현실에서 그들은 다 굶어 죽었습니다. 당시 살아남은 간부들은 1990년대의 이 교훈을 잘 보았습니다. 그 교훈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부정부패 행위를 통해 뇌물을 많이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돈의 힘입니다. 1990년대 들어와 북한 사회는 그대로 사회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사실상 자본주의 사회로 보면 더 정확합니다. 오늘날 북한은 김일성 시대와 달리 시장에 가면 팔리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 북한 장마당에서 살 수 없는 것은 ‘고양이 뿔’뿐이라고 합니다. 돈이 있으면 오토바이도 살 수 있고 컴퓨터도 살 수도 있고 선풍기도 살 수 있고 다 살 수 있습니다. 이건 다시 말해 배급으로 나온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북한에서 고급 간부는 지금까지는 배급으로 좋은 물품을 받고 있지만 중급이나 하급간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간부들은 잘 살고 싶으면 뇌물을 받아야 합니다.

: 보통 공산주의 나라에서 부정부패가 심해지면 망하는 징조가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데요. 북한에서의 부정부패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란코프 : 제가 보기에 북한의 부정부패는 모순이 많고 역설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부정부패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부정부패 때문에 북한 간부들은 불법으로 돈을 벌고 간부와 서민들간의 소득격차도 더욱 심해졌습니다. 또 부정부패 때문에 북한에서 나쁜 일이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면 마약 매매를 꼽을 수 있습니다. 지금 북한에서 '얼음'이나 '빙두'라고 부르는 마약은 크나큰 사회 문제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부정부패가 없었더라면 마약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간부들과 보안원들은 뇌물을 받고 마약 생산을 눈감아 주기 때문에 북한에서 마약이 많이 퍼져나가, 중독자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인민건강, 인민 보건을 고려하면 이것은 참 크나큰 위협이라 생각합니다.

: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에서는 북한에 갈수록 퍼지고 있는 부정부패 현상에 관해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