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차근차근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도 대담엔 북한 전문가로 남한 국민대 교수인 안드레이 란코프 박삽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순서에서도 북한의 부정부패 문제에 관해 좀 더 살펴봤으면 합니다. 부정부패는 당연히 나쁜 것이지만,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공산국가에선 부정부패가 오히려 순기능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를테면 일선 간부에게 뇌물을 주면 곡식 같은 것을 장마당에서 불법으로 팔 수도 있지 않나요? 이런 행위는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할 수도 있는 순기능이 되지 않을까요?
란코프 : 그렇습니다. 이미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북한의 특성을 감안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북한과 같은 경우 사회에서 부정부패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본적인 이유는 북한 정부의 정책 때문입니다. 북한 정부는 간부들의 권력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금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경제, 사회체제를 개혁하지 않기를 결정하였습니다. 오늘날 북한 사람들이 생계를 꾸리는 방법은 압도적으로 장마당, 장사를 비롯한 개인 경제활동입니다. 그러나 북한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이와 같은 활동은 다 불법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법을 보면 장사를 하는 것은 압도적으로 불법이 아닐까요? 북한의 법을 보면 쌀을 비롯한 곡식 매매는 불법행위가 아닐까요? 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이처럼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북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활동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성행했기 때문입니다.
변 : 네, 그러니까 간부들한테 뇌물을 주고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는 것도 다 부정부패 때문에 가능하다는 말씀이신데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란코프 : 그러지요. 예를 들어 북한에서 보안원과 간부들은 법대로 한다면 장마당 활동을 거의 다 단속해야 했습니다. 법대로 한다면 개인은 장마당에서 쌀과 강냉이를 팔지 말았어야 했을 겁니다. 법대로라면 장마당에서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이 다른 지방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 했을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북한간부가 법대로 한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살아남기가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북한 간부들은 법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의 부정부패입니다.
변 : 참 역설적인 현상이네요. 그러니까 간부들의 부정부패가 존재했기 때문에 평범한 북한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입니까?
란코프 : 맞습니다. 북한 정부는 옛날식 규칙을 바꾸지 않고 있는데 이런 규칙은 인민이 굶어 죽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뇌물에 욕심이 많은 간부들은 이런 규칙을 위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지금 자신의 힘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측면에선 부정부패 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북한 정부가 개혁과 개방을 하고 시대 착오적인 제도를 바꾸었더라면 부정부패 없이, 뇌물 없이도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을 이렇게 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
변 : 북한의 상황을 보면 정말 평범한 북한 사람들이 뇌물에 취약한 간부들 덕분에, 다시 말해 이들의 부정부패 때문에 살아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는 게 교수님 견해인데요. 그런 점에서 북한에서 부정부패는 필요악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란코프 : 네, 그렇습니다. 개혁과 개방이 없는 북한에서 부정부패를 필요악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저는 벌써 부정부패와 뇌물 문화가 초래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를테면 북한에서 마약의 확산은 아주 좋은 사례이지만 유일한 사례가 아닙니다. 또 하나의 사례는 골동품입니다. 1990년대 말에 북한은 대규모 골동품 밀수출시대였습니다. 개성근처에서 불법으로 골동품을 많이 발굴했고 귀중한 역사 유산을 많이 훔쳤습니다. 이것은 한국 민족, 조선민족의 자랑스런 문화에 대한 본질적 약탈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골동품 약탈행위는 아마도 마약만큼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유감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골동품 밀수출도 북한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마약과 골동품뿐 만 아니라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북한의 부정부패는 단기적인 후과 보다 장기적인 후과가 더 중요합니다.
변: 금방 단기적인 후과보다는 장기적인 후과가 더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이런 부정부패가 북한사회에 미칠 장기적인 후과는 무엇일까요?
란코프 : 제가 보기에 조만간 북한은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 물론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이와 같은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은 김씨 왕조의 세습 독재의 붕괴라고 생각합니다. 고생이 많은 북한 사람들의 생활도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처럼 남한처럼 좋아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지금은 몰라도 훗날 다른 동아시아 국가처럼 고도 경제 성장의 길에 접어들 때 부정부패가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감스럽지만, 지난 20년 동안 부정부패는 북한의 일상 문화에 깊이 파고 들어갔습니다. 북한에서 간부거나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뇌물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북한 체제가 바뀐 다음에도 이런 현상은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북한에서의 규칙 대부분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규칙입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향후 북한에 합리적인 사회체제가 찾아 온다면 여러 가지 규칙과 법칙을 잘 지키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가서도 뿌리 박힌 된 부정부패는 두고두고 문제로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설령 북한 간부들은 소득이 너무 높아도 여전히 뇌물을 달라고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은 물론 당장 내일 일어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수많은 북한 사람들을 돕고 있는 북한의 부정부패는 나중에 나라의 경제 발전의 길을 가로막을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게 바로 북한의 부정부패가 안고 있는 커다란 위험입니다.
변: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에서는 부정부패가 북한에선 어떤 측면에선 역기능 뿐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에 순기능을 하는 필요악일 수도 있다는 점을 란코프 교수로부터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