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도 대담엔 북한 전문가로 남한 국민대 교수인 안드레이 란코프 박삽니다. 안녕하세요. 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은이 올해 들어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김정은이 현지 시찰에 부인까지 대동해 그 배경을 놓고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사실 과거 공산권 국가의 지도자들은 부인을 거의 동행하지 않았지요?
란코프: 북한뿐만 아니라 구 소련을 비롯한 거의 모든 공산권 국가들은 공산당 고급 간부들의 경우 부인들이 수행하지도 않고 동석하지도 않도록 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서양과의 문화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들 정권은 권력의 신비성을 보장하려 노력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공산당 고급 간부들, 특히 공산당 최고 책임자들은 사람처럼 보이면 안 되었습니다. 그들은 개인생활도 없고 일상생활도 없는 신처럼 등장해야 했습니다. 김일성뿐만 아니라 그가 많이 모방하는 스탈린도 부인과 같이 공개적으로 등장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변: 북한의 김일성도 그랬습니까?
란코프: 북한 역사를 보면 아주 비슷한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극찬을 받고 있는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은 살아 생전 북한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김일성의 둘째 부인은 김성애입니다. 김일성과 김성애는 50년대 초 결혼했지만 65년까지 김성애에 대한 보도가 절대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은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 엄격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개인의 생활을 외부로 노출하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은 애인이 많지만 그들과 같이 국민들 앞에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변: 그런데 조선중앙텔레비전을 보면 김정은이 자신의 부인 리설주를 당당하게 현지 시찰에 대동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남한 언론도 이를 크게 보도했는데요. 조부인 김일성, 선친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이 이처럼 부인을 왜 대동했을까요?
란코프: 물론 알 수 없지만, 김정은에 대한 두 가지 가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권력의 신비성을 깨뜨리려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가 알려주고 싶은 것은 김정은이란 사람이 독재자가 아닌 인간이라는 것이란 점입니다. 즉 자기는 사랑하는 여자도 있고 경음악도 좋아하고 춤추는 만화 영화의 주인공도 보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변: 권력의 신비를 깨려고 노력하는 게 사실이라면 상당한 변화로 볼 수 있죠?
란코프: 네, 자신이 신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하나의 가설은 김정은 위원장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영향을 많이 받은 서양 문화입니다. 서양국가는 최고지도자가 부인이 수행하거나 동석하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반대로 부인을 국민들 앞에 보여주지 않는 정치 인물은 의심을 삽니다.
변: 네, 그런 점에서 김정은이 리설주라는 여인을 조선중앙방송TV를 통해서 처음 공개한 것은 의미가 있는데요. 문제는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의 이와 같은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점인데 어떻게 봅니까?
란코프: 물론 세계에서 북한 사람들만큼 말조심을 할 줄 아는 민족도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최고 영도자의 행동을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람들은 김정은의 이러한 태도를 이해하는 모릅니다. 나는 의심이 있는 이유가 바로 구 소련에서 얻은 경험입니다. 소련 마지막 지도자의 고르바초프는 자기 부인과 같이 많이 등장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면 국민들의 동감을 받을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희망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소련 사람들은 이와 같은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사실상 그의 위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북한도 비슷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방정책은 무조건 주민들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근거가 없습니다.
변: 아무튼 김정은이 취임한 뒤 이영호가 전격 해임됐다는 점은 김정은의 지도력 장악 차원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인데요. 앞으로 이영호 해임이 김정은이 지금과 같은 변화의 정책을 계속 이끌어갈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란코프: 쉽게 말하면 결과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그대로 계승하면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변: 그대로 계승한다는 것은 과거 할아버지 김일성, 아버지 김정일이 추구하던 정책을 그대로 추진해선 안된다는 것이죠?
란코프: 벌써 말씀드린 대로 김정은은 변화를 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북한 국내외 정책에서 바꿀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원로들로부터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문화 정책, 상징정책을 보면 앞으로 북한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희망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사실상 오래 전부터 북한 정부가 변화를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에 의심이 생겼습니다.
변: 제일 큰 문제는 교수님이 지적하셨듯이 개혁, 개방을 결사 반대하는 원로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문제인 것 같은데요.
란코프: 이것은 첫 단계에서 가장 큰 문제입니다. 다음 단계에서 개혁, 개방을 하면서 국내 안정을 유지할까 말까가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래도 요즘 김정은 제1위원장 정책을 보니까 조금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조금 이런 저런 희망이 보이고 있습니다.
변: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에서는 최근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괄목할만한 변화, 특히 김정은이 주도하고 있는 문화정책의 변화에 관해 란코프 교수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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