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도 대담엔 북한 전문가로 남한 국민대 교수인 안드레이 란코프 박삽니다. 안녕하세요. 앞서 이 시간을 통해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북한을 개혁하려 해도 결국은 수구 원로의 반대로 인해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해주셨는데요. 결국 김정은이 만일 개혁, 개방으로 나가려 할 경우 바로 이들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겠군요?
란코프: 제가 보기에 김정은 정권이 정말 개혁을 시작한다면 극복해야 할 세력이 두 부류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개혁 정치를 반대할 세력은 늙은 원로와 인민군 장성을 비롯한 보수파입니다. 그들은 북한이 중국식 개혁과 개방을 받아들일 경우 북한의 기반을 파괴하고 심각한 위기를 야기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김정은과 그 측근들의 개혁시도를 반대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큰 위험이 있습니다. 이 위험은 개혁과 변화 때문에 생겨날 반정부 사회세력입니다. 반체제 세력입니다. 지금 김정은과 그 측근들은 설령 나라가 바뀌기 시작한다 해도 국내에서 통제를 유지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나라의 경제구조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주민들이 그의 말을 잘 듣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일하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순조롭지 않을 겁니다.
변: 과거 1970년대 후반 개혁, 개방을 시작한 중국을 보면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중국 공산당은 개혁, 개방을 하면서도 국내안전을 유지하지 않았습니까?
란코프: 맞습니다. 중국에서는 국내 안전문제가 그리 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즉 중국 주민 대부분은 오늘날 중국의 고도 경제성장과 생활수준 향상을 가져온 공산당의 정치노선을 환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 사실상 북한에서 김정일 제1위원장이 개혁과 개방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이유는 바로 중국의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고급 간부 일부는 중국에서 가능한 것이 북한에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원로 보수파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수파의 공포와 우려는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 북한에서 원로 보수파가 개혁, 개방에 반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북한체제의 안전 외에도 자신들의 운명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요? 중국과 베트남은 문제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란코프: 물론 중국의 경우 문제가 별로 없습니다. 중국 공산당 간부들은 개혁, 개방이 된 뒤에도 권력과 특권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커졌습니다. 지금 중국 대기업을 보면 절반 정도 고급 간부들이 가족들과 관계가 있는 사업입니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은 너무도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중국과 달리 북한은 분단 국가입니다. 그래서 북한 정부가 개혁을 시작한다면 북한에서 남한에 대한 소식이 크게 퍼지기 시작 할 것입니다. 중국 안에서 해외 생활에 대한 소식은 주민들에게 정치적인 문제가 되지 못합니다. 설령 중국 사람들이 중국보다 미국이 더 잘 산다는 것을 안다 해도 미국과 통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다릅니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더 잘 산다는 걸 안다면 북한 주민들은 잘사는 남한과 통일하면 모든 문제를 하루 아침에 해결 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변: 문제는 김정은이 앞으로 개혁을 한다면 그와 동시에 국내 감시와 통제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인데요?
란코프: 그게 바로 북한특권 계층의 희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한편으로 경제를 살리며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동시에 반체제, 즉 체제를 반대하는 세력을 진압하고, 또 북한 체제를 비방한 사람을 수용소로 보내거나 죽이면 자신의 특권과 체제 안전을 유지하리라 희망합니다. 물론 그들의 희망대로 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북한 특권계층은 운이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경제 성장은 거의 불가피하게 지식의 확산, 정보의 확산을 초래합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경제 성장이 시작한다면 북한 사람들은 컴퓨터, 전화, 휴대폰 즉 손전화 등을 더 쉽게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 그들은 거의 불가피하게 모든 사람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위의 지시를 기다리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며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제도입니다. 이럴 경우 북한 사람들은 세상 소식에 대해 서로 잘 알고 지식과 소문을 훨씬 더 쉽고 빠르게 확산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북한 정권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고 김정일 위원장은 이 같은 위험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김정은은 이 위험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변: 그렇군요. 북한 주민입장에서 보면 현재 김정은이 보여주는 상징 정치는 좋은 것일까요?
란코프: 제가 보기에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은의 정치는 좋은 소식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중국식 개발독재를 북한에도 안정화시킨다면 이것은 좋은 소식입니다. 중국과 북한에서 인민들의 생활을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북한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보다 너무 어렵게 삽니다. 물론 중국사회는 이런저런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정치 자유가 별로 없고 노동 운동에 대한 당국의 탄압도 엄격하고, 경제성장에 따른 빈부격차도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국에서 개혁과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김정은 제1위원장이 중국식 개혁, 개방으로 나갈 경우 성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개혁의 시도는 결국 불안정과 체제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북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도 그리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북한의 체제 붕괴는 곧 남북통일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통일 한국도 하루아침에 지상낙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을 이룬 동서독처럼 남북한이 통일돼도 경제, 사회 부문에서 심각한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한국에서 북한 사람 대부분의 생활은 많이 좋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개혁, 개방으로 체제가 붕괴되든, 또는 체제 붕괴로 남북통일이 되든 어느 쪽도 좋다는 상황입니다.
변: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에서는 북한 김정은의 상징정책의 이모저모와 그 한계에 관해 란코프 교수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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