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게 문제지요-2] 북한 간부들, 통일 후 보복이 두려워 체제 붕괴 막으려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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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안녕하세요.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들을 차근하게 따져보고 대안을 찾아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 대담에 남한 국민대학교 교수인 안들레이 란코프 박사입니다. 란코프 박사님, 지난주 첫 시간에 북한의 개혁, 개방 문제를 살펴봤는데요. 북한 지도부가 개혁, 개방을 할 경우 무엇보다도 주민들이 외부생활, 특히 부자국가인 남한생활에 대해 많이 알게 되고, 얼마나 잘 사는지 알게 되고, 이는 북한의 체제 유지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고 지적해주셨는데요. 북한 관리들이 왜 그렇게 개혁을 두려워하는 걸까요?

란코프

: 이 것은 조금 어려운 문제입니다. 북한 간부들이 체제 붕괴를 무섭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즉 체제가 무너진다면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 간부로 지낸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논리는 개혁을 실시할 경우 북한 주민들은 외부생활, 특히 부자국가인 남한 생활에 대해 배우고 체제에 대해 불만이 클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체제유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체제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체제가 무너지면 자신들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수십년 동안 저지른 인권침해와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무섭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출신성분을 중시하는 북한에서 과거에 반동적 행위를 했던 사람은 물론 그들의 후손까지 대(代)를 이어 차별 받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북한은 토대, 즉 출신성분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북한 간부들은 세상이 바뀌면, 남한이 주도한 통일이 오면 자신들도, 또 자신의 후손들도 같은 차별을 받을 줄 압니다.

변: 중국은 물론이고 과거 구소련과 구소련 위성국이던 동유럽, 또 구소련을 구성한 15개 나라들을 보면 공산당 간부들이 개혁, 개방이 공산주의가 망한 뒤에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고 건재한 걸 알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북한 당간부들도 개혁, 개방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란코프

: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 제일 중요한 골칫거리는 이웃에 아주 부강한 남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 간부들, 북한 특권계층은 개혁, 개방이 이뤄지면 북한 체제가 붕괴돼 남한과 흡수통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흡수통일이 된다면 남한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북한 간부들은 공포가 많습니다. 북한은 수십년 동안 적화통일, 공산주의 통일을 꿈꾸었습니다. 만일 적화통일이 된다면 남한의 엘리트, 즉 지배층은 미래가 없을 것입니다. 적화통일이 되면 남한 정치인들, 공무원들, 사업가들이 다 숙청을 당할 겁니다. 만일 과거 김일성 시대에 적화 통일이 됐다면 남한 지도층 출신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까지 성분이 좋지 않고, 토대가 좋지 않아 차별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북한 간부들은 적화통일로 북한이 이긴다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는데 남한이 흡수통일로 이긴다면 자신에 대한 차별과 숙청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 말의 논리를 따져보면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을 겁니다. 북한 엘리트는 체제가 무너지면 자신도 미래가 없고 가족도 미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체제유지를 생존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변: 사실 북한 간부들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요. 그들이 갖는 공포심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지요?

란코프

: 제가 보니까 북한 간부들의 이러한 공포는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많이 과장된 것입니다. 북한 체제가 무너지면 분명 그들은 구소련 간부들처럼 힘이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토록 두려워하는 숙청과 차별을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 왜 그렇다고 봅니까?

란코프

: 제가 볼 때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남한 정치를 보니까 소위 북한에서와 같은 출신 성분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대를 이어 차별을 받는다는 건 오늘날 남한에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남한 지식인, 사업가 등을 비롯한 지도자들 가운데는 젊었을 때 한때 사회주의 운동을 해보았던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북한의 경우 간부들만큼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흡수 통일이 된다면 그들은 이 경험 덕분에 불가피하게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단계에서 그들은 통일에 대한 공포가 너무 큽니다. 간부들의 이러한 공포는 북한 생활이 좋아지는 길을 가로막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변: 하지만 흡수통일이 되면 북한 공산당 시대에 인민들을 탄압하고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고, 잔혹하게 다뤘던 공산당 혹은 보위부 사람들을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명 나올 수밖에 없는데요. 즉 나쁜 짓을 한 공산당 간부나 보위부 간부들까지 무조건 용서하고 좋게 대우해야 할 순 없지 않을까요?


란코프

: 제가 보기엔 도덕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그들을 처벌한다고 해도 북한 정치범 관리소나 고문실에서 죽을 사람들을 되살리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통일 한국에서는 남한 사람이나 북한 사람 모두 환영해야 합니다. 옛날 나쁜 짓을 조사하는 일은 아마 역사 학자들에게 맡기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보기에는 아주 중요한 것은 옛날 잘못을 조사하는 것보다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보니까 북한 간부들에게 비상구를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할 때, 남한 정부가 통일에 대한 지원과 함께 대사면을 베풀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한다면 북한 간부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북한 독재정권 시절에 저지른 인권침해 등은 일반사면의 대상으로 한다는 약속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생길 통일한국은 남북한 사람들이 앞으로 자유롭게 행복한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저의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제 입장입니다.

변: 북한 당간부들이나 보위간부들의 경우 이들의 과거 행적을 조사해서 인민들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해 대우하는 건 어떤가요? 이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란코프

: 유감스럽게도 과거 행적을 자세하게 조사할 방법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보위원과 밀정과 같은 사람들의 경우 몇 년 동안 공무원이 되지 못하게 하고 새로운 경찰과 사법기관에 복무할 수 없도록 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런 조치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면 안됩니다. 통일 한국에선 어제보다 내일을 생각하는 게 더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변: 그렇군요. 그게 바로 어떤 면에선 북한의 체제 붕괴를 앞당기고, 체제가 망해도 우리가 반드시 피해를 보진 않겠다, 통일이 돼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북돋을 수 있는 길이겠네요.


란코프

: 그렇습니다.

변: 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에선 북한 지도부가 왜 그토록 개혁, 개방을 두려워하는지 속사정을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