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안녕하세요. 북한이 안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도 북한 문제 전문가인 남한 국민대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님 나와 계십니다. 란코프 교수님, 오늘은 어떤 주제를 살펴볼까요?
란코프
: 네, 오늘은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은 왜 주민들을 외부세계로부터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비밀을 고수하려 하는지에 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변: ‘비밀’이라고 하면 뭔가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 아닌가 싶은데요. 사실 그런 점에서 북한은 비밀주의가 워낙 팽배한 나라 아닙니까?
란코프
: 그렇습니다. 북한은 참으로 비밀이 많은 나라 입니다. 북한 정권은 외부 사람들이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 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점은 북한 주민들이 외부생활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어렵다는 점인데요. 북한 주민들은 외부정보에서 사실상 완전히 차단된 상태입니다.
변: 사실 같은 공산국인 중국이나 베트남의 국민들은 외부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외국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훤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 당국이 이처럼 철저한 주민 고립정책을 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란코프
: 제가 볼 때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고립정책이 모든 공산권 국가의 사회주의 칙령에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다른 이유는 북한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제입니다. 우선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이 왜 주민들을 고립시키려고 했는지부터 살펴봅시다. 공산주의 운동이 시작됐을 때 공산주의 사상가들이 내놓은 제일 중요한 약속은 무엇일까요?
변: 란코프 교수님이 지난 시간에 지적해주신 대로 공산주의 사상가들은 착취가 없는 이상주의 사회를 건설하겠으며, 평등한 사회와 물질이 풍부한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약속을 했지 않았습니까?
란코프
: 그렇습니다. 100년 전에 공산주의 사상가들이 희망했던 공산주의는 평등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 풍부한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꿈은 그들의 희망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시장경제가 아니면 경제가 잘 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시도한 국가들은 공산주의 이론가들이나 선전일군들의 주장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세운 공산주의 경제는 짧은 기간만 빨리 성장한 다음에 극복하기 어려운 만성적인 위기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중국이든 소련이든 동유럽이든 어디에든 볼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공산주의 국가들은 시장경제 국가를 따라 잡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뒤떨어 졌습니다.
이러한 경제적인 실패는 공산주의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큰 실망일 뿐만 아니라 크나큰 위협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의 기본 약속은 바로 고도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풍요였지만, 공산당이 통치한 나라들은 이러한 풍요와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원래도 그다지 잘 못살던 공산주의 진영은 자본주의 나라를 따라잡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세월이 갈수록 시장경제 나라에 뒤쳐졌습니다.
변: 이처럼 시장 경제 나라들에 뒤떨어지는 상황에 대해 공산당 지도자들은 어떻게 변명했습니까?
란코프
: 공산주의 국가 지도자들은 자신의 경제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소련이든 동유럽이든 쿠바이든 해당국 통치자들은 여러 가지 구실과 명분을 이용하여 국가 사회주의 제도의 실패를 오히려 정당화하려 노력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사회주의 경제가 겪는 문제가 일시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아니면 어려운 국제 환경과 제국주의 세력의 압력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습니다. 처음엔 해당국 주민들도 어느 정도 이러한 주장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믿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일시적인 어려움이 10년후에도 계속되고, 또 30년 후에도 계속된다면 도대체 이런 일시적인 어려움이 언제 끝날까? 이게 바로 그들이 물어보는 불가피한 질문이었습니다.
또 공산주의 시대 공산당 선전 일군들은 외부생활, 시장경제 나라 생활에 대해서 거짓말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면 소련의 어용 언론은 미국에서 노동자나 농민들이 어렵게 산다고 주장했습니다. 1960년대 소련 신문, 방송 등을 보면 미국 노동자들은 집도 없고 먹을 것이 없다는 식의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았습니다.
변: 그런 새빨간 거진 선전을 소련 국민들은 믿었습니까?
란코프
: 처음엔 많이 믿었습니다. 그들은1950년대, 60년대 까지도 그런 선전을 많이 믿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소련 국민들이 이런 거짓선전을 믿을 수 있으려면 필요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건 소련 주민들이 외부 생활에 대한 사실을 몰라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은 외부와의 교류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주민들을 외부 정보로부터 고립시키려 노력했습니다.
당국은 외부에서 반동 사상이 나올 수 있거나 외국 정보기관이 간첩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고립 정책을 펼친다는 식으로 국민들에게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외부와의 교류를 통제, 제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외부 생활에 대한 지식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상 공산주의 체제가 유지되려면 그에 앞서 필요한 조건 중 하나는 주민들의 무식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고립정책, 쇄국정책은 체제유지를 위한 필요 조건이었습니다.
변: 그렇군요. 란코프 박사님은 소련 사람으로서 소련붕괴를 체험한 당사자이신데요. 소련이 어떻게 체제가 붕괴하게 됐는지 경험담을 들려주시죠?
란코프
: 제가 보기에 1990년대초 소련 체제가 무너진 이유는 세가지 입니다. 첫째는 민주화, 자유화에 대한 요구입니다. 둘째로 민족주의 입니다. 셋째는 만성적인 경제위기에 대한 불만족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본주의 국가를 능가하지 못한 데 따른 소비 생활의 불만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세가지 이유 중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경제입니다. 소련과 동유럽 주민들이 공산당 정권을 반대하거나 전복한 이유는 권위주의 정치에 대한 불만족 보다 어려운 소비생활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었습니다. 소련 사람들이 이러한 불만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의 소비 생활을 미국이나 일본 국민들의 소비생활과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외부 생활에 대해서 잘 몰랐더라면 공산주의 체제는 더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변: 북한의 통치자들도 동유럽 공산권과 구소련의 붕괴를 직접 목격했을 텐데요. 그들이 이런 붕괴에서 배운 교훈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란코프
: 북한 상황을 별개의 문제로 보면 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경험을 잘 배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날 북한 정권의 상황은 구 소련보다 더 어렵다는 점인데요. 이 문제에 관한 얘기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변: 네,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에서는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나라가 주민을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이유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라는 점을 란코프 교수로부터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