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신년사, 개혁 청사진 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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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은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내용을 중심으로 러시아 출신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Andrei Lankov) 국민대 교수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정은 위원장이 권력을 세습받은 지 2년째를 맞이해 지난 1일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는데요. 신년사를 보면 장성택 숙청과 관련한 종파 문제와 경제 문제, 대외 문제 등에 대해 나와 있지만 특별한 내용이 없어 밋밋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번 신년사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란코프: 제가 보니까 특징이 있긴 있지만 별로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개혁 의지를 피력할 걸로 생각한 게 사실입니다. 저도 이번 신년사에 어떤 변화에 대한 암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신년사를 보면 개혁이나 변화, 경제구조의 변화에 대한 암시조차 없습니다. 기본적인 내용은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별 의미가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신년사를 보면 농업이든 공업이든 중요한 변화에 대한 공개적인 지시가 없습니다.

기자: 한 마디로 특기할 만한 내용이 없는, 기대 이하의 신년사라는 말씀이군요?

란코프: 그래도 주목할 만한 내용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은 남한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의지입니다. 신년사를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제가 보니까 지금 북한 상황을 감안하면 북한은 지금 남북관계 개선을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북한은 요즘 중국 의존도가 너무 높습니다. 장성택 사건 때 북한은 이 같은 의존도에 대해서 중국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시하였습니다. 당시 북한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중국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장성택과 그의 측근들은 중국에 석탄을 비롯한 자원을 헐값으로 팔아먹었다는 주장까지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생각은 후원국가가 적어도 2~3개는 있어야 합니다. 특히 서로 대립하며 다투는 후원국가가 있으면 더 좋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그런 나라들의 경쟁을 잘 이용할 수 있고, 양측에서 양보와 지원을 얻으면서도 정작 이런 나라들이 필요한 양보는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에겐 지금 중국밖에 없으니까 한국이나 미국으로 하여금 다시 지원을 제공하도록 해야 합니다.

기자: 이번 신년사를 보면 김정은이 작년 12월 숙청한 장성택을 언급해 '종파오물'이란 표현까지 써가면서 당의 단합을 강조한 대목이 있는데요. 왜 그럴까요?

란코프: 신년사에 장성택과 측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단결'이란 말은 숙청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종파오물'이란 표현이 있는 데 이것은 경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에 도전할 수 있는 세력에 대한 경고입니다. 현 단계에선 북한에 장성택 종파가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1950년대 김일성 시대 종파 문제는 진짜 심각했습니다. 당시 조선노동당에는 서로 경쟁하며 대립하는 종파는 4 개였습니다. 하나는 조선반도에서 지하활동을 했던 국내파로 그 중 박헌영은 1920년대부터 공산주의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소련에서 파견된 사람들로 사실상 한국인이 아닌 소련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 속한 박창옥, 허가이는 원래 소련당 간부였습니다. 셋째론 중국 출신의 연안파입니다. 김두봉과 최창익과 같은 중국 출신들은 1920~30년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중국과 아주 가까웠습니다. 마지막은 김일성을 비롯한 만주 빨치산 출신들입니다. 그들은 중국 동북연대에서 빨치산 유격활동을 하다가 1940년대초 소련으로 들어가 소련군복을 입고, 소련군에서 근무도 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내부 경쟁이 아주 심했다는 점입니다.

기자: 그러니까 오늘날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에선 김일성 시대와 같은 종파는 없다는 말이죠?

란코프: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사실상 장성택을 비롯한 고급간부, 정치인들은 서로 관계도 있고 만날 수도 있겠지만 1940~50년대 종파들처럼 별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북한에서 최근 많은 고급 간부들이 배제된 것과 관련해 '장성택계'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장성택과 가까운 사람들이 있긴 있지만 그들은 종파로 보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최근 숙청된 사람들 가운데 장성택과 가깝지 않은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기자: 김정은은 이번 신년사에서 다른 어떤 분야보다 농업 부문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란코프: 제가 보니까 북한은 원래도 경공업, 무역, 농업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북한은 1990년대부터 경공업, 무역, 농업을 제일 중시해 제일 많이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북한 농업을 보면 '6.28방침' 때문에 북한에서 농가를 중심으로 하는 영농을 시범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농업개혁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북한의 작년 작황을 보면 진짜 풍년입니다. 5백만톤 이상입니다. 지난 20년간 보지 못한 수확입니다. 이는 6.28 방침 때문에 생긴 게 아닐까요? 물론 이게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세계 역사가 잘 보여주듯이 농가를 중심으로 한 농업은 효율성이 아주 높습니다.

기자: 그런 점에서 올해 김정은의 중점 국정방향은 결국 경제가 되겠군요?

란코프: 제가 볼 때 김정은 정부 입장에서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경제입니다. 옛날 방법으론 김정은이 북한경제를 살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북한 식 개혁을 해야 합니다. 물론 개혁이란 말을 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개선이란 말을 쓰면 됩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시대에서 남아 있는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식 경제체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시장을 중심으로 한 경제관계를 개발해야 합니다. 물론 개혁 때문에 국내정치가 불안정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설령 개혁을 하지 않아도 영원히 현상을 유지할 순 없습니다. 개혁은 정치적으론 너무 불안하지만 김정은과 고급 간부들 입장에서 보면 대안이 별로 없습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이 시간에선 김정은 북한 제1위원장의 신년사와 관련해 안드레이 란코프 박사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