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핵문제 진전없이 북미관계 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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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의 올해 대외정책과 관련해 러시아 출신의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Andre Lankov) 국민대 교수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올해 김정은의 신년사를 보면 경제 문제 등에 주로 많은 부분을 할애했어도 대외정책에 관해선 특기할 만한 내용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대남관계와 관련해 김정은은 남한에 상호중상을 중지하자면서 관계개선에 대한 희망을 나타냈는데요. 그런 배경이 뭘까요?

란코프: 북한은 지금 중국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남한에서 지원을 받고, 남한을 후원국가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북한 입장은 중국에만 의존하지 말고 남한과 관계를 개선한다면 남한에서 지원을 다시 받기 시작하고, 그런 지원으로 중국의 지나친 영향력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희망합니다. 사실상 그들의 희망대로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 외교관들은 훌륭한 외교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북한의 대외정책과 관련해 또 하나 눈 여겨 볼 점은 미국과의 관계일 텐데요. 김정은은 이번 신년사에서 미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고, 대신에 '적대세력'을 쓰고 있습니다. 특히 예년처럼 북한의 핵 무장력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주목할 만한데요. 대미관계 개선의 최고 걸림돌인 핵 문제가 올해도 풀릴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요?

란코프: 제가 볼 때 북한이 지금까지 여러 차례 다음과 같은 의지를 표현한 적이 있는데요. 그게 뭐냐 하면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지가 전혀 없지만 미국과 회담은 바람직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보니까 북한이 현재 가진 핵은 한편으론 억지력 수단이자 외교압력 수단으로 충분합니다. 북한이 더 많은 핵무기를 개발할 경우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 보면 억제수단으로 필요한 핵무기를 유지하면서 앞으로 핵 개발을 더 추진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지원과 양보를 얻어내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이런 신호를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기자: 문제는 북한의 희망대로 일이 풀릴 수 있을까 하는 점 아닙니까?

란코프: 장기적으로 말하면 북한의 희망대로 풀릴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이와 같은 타협, 즉 북한이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타협을 국내 정치적인 이유와 비확산 전략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물론 몇 년 후에 미국도 기존의 입장을 바꿀 순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미국은 그런 식의 타협에 관심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올해 북미관계가 풀릴 가능성은 어렵겠습니다.

기자: 북한은 사실 지난해 봄 아무런 조건 없이 고위급 핵 회담을 제안했다가 미국으로부터 거부당하지 않았습니까? 현재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구체적인 다짐을 다시 공약하지 않는 한 핵 협상에 임할 수 없다는 입장 아닙니까?

란코프: 미국이 추진하는 비핵화는 북한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핵을 가져야 체제를 지킬 수도 있고 외부에서 필요한 양보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이것은 좋아하든 싫어하든 북한 입장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북한 입장이라기 보다는 북한 지도부, 북한 극소수 지배계층의 입장인데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생각은 합리주의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미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을 핵 국가로 인정한다면 무슨 의미입니까? 이것은 다른 나라에게 아주 위험한 전례가 될 수 있습니다.

기자: 금방 '위험한 전례'를 말씀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란코프: 만일 북한이 핵 국가로 인정을 받을 경우 북한을 모방해 핵을 개발할 나라가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북한은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처럼 사실상의 핵 국가로 인정받기를 희망합니다. 하지만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의 공통점은 이들 세 나라가 1960년대 비확산 조약을 처음부터 체결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들 국가는 비확산 조약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은 핵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이 약속을 악용해서 핵 기술을 얻고 그 다음엔 약속마저 포기했습니다. 아주 위험한 일이죠. 바로 그 때문에 북한은 이스라엘이나 인도와 같은 나라가 아닙니다.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과 이런 나라들 사이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기자: 문제는 북한이 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오늘날과 같은 상호의존적인 세계에선 김정은이 아무리 그럴 듯한 경제 계획을 세워도 허사라는 점 아닙니까?

란코프: 그렇지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외국에서 지원을 받기도 어렵고 무역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핵 무기가 없을 경우라도 무역을 비롯해 경제 협력을 할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아요. 사실상 중국, 남한, 일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북한은 수출할 수 있는 물건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기 위해 필요한 외화도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북한 시장 자체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 입장에서도 북한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느냐 여부와 상관없이 북한에 관심이 있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다만, 중국 같은 경우는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어도 관심을 가진 나라지요.

기자: 방금 중국의 입장을 말씀하셨는데요. 사실 장성택은 북한 고위 인사들 가운데 누구보다 중국과 가까웠고, 그래서 중국도 장성택을 소중히 생각해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장성택이 숙청되면서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도 소원해지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불편합니다. 제가 보니까 그럼에도 중국은 북한에 대한 지원을 갑자기 중단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불만이 큽니다. 특히 장성택 사건 때문에 중국은 불만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필요악입니다. 북한은 아주 중요한 완충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 북한과 중국은 더 이상 동맹 국가가 아니지만 중국에게 북한은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 지정학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사상적으로 보면 북한과 중국은 더는 동맹 국가가 아니지만 지정학적인 이유 때문에 할 수 없이 중국은 북한이란 나라가 필요합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에선 올해 북한의 대외 정책과 관련해 란코프 교수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