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신년사 경제계획 구체성 결여”

0:00 / 0:00

기자: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달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올해 해결해야 할 경제 문제가 많다고 했는데요. 하지만 신년사 경제관련 내용을 보면 새로운 부분이 거의 없고, 시장경제가 믿바침되지 않은 국가경제발전5개년 계획이란 것도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데요. 이런 주장에 동의합니까?

란코프: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올해 신년사는 예전에 비해 매우 이상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년사의 내용은 북한경제의 진짜 모습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이번에 김정은이 말한 경제문제 해결방법도 북한경제의 실상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북한 관영언론을 보면, 원래도 신년사는 북한 주민들이 진짜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심사에 대해 절대 보도하지 않지만, 이런 경향은 지난 20-30년 동안 더욱 심화됐습니다. 이번에 김정은은 70일 전투와 200일 전투 이야기를 했고,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 북한 경제를 떠받들고 있는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먼 매우 대표적인 사회주의 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그럼 김정은이 70일 전투니, 200일 전투니 하는 말을 꺼낸 까닭은 무엇일까요?

란코프: 김정은은 70일이나 200일 전투를 언급하면서 이것은 인민들의 마음속에서 당에 대한 믿음,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이 더욱 깊이 뿌리내리게 하는 행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발언은 김정일, 김일성이 과거 했던 말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70일 전투나 200일 전투는 인민들의 마음 속에 당에 대한 믿음을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마 김정은의 할아버지 즉 김일성이 북한이라는 나라를 통치했을 때 100일 전투나 200일 전투와 같은 노동 동원에 투입된 사람들은 당국의 선전을 믿고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것은 옛날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70일전투나 200일전투는 지금 유명무실화 되었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이름만 있고, 내용이 없는 행사 뿐입니다.

기자: 김정은은 작년 5월 7차 당대회 때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처음 언급했는데요. 올해 신년사에서도 또다시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란코프: 5개년 계획은 이미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 된 과거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최근 북한의 경제정책을 보면 사회주의식 계획경제를 빨리 없애버리고 있는 특징을 가졌습니다. 북한이 공장, 기업, 상점 등에 자율권을 부여한 2014년의 5.30 조치는 김일성 시대부터 전해내려온 북한의 시대착오적인 명령식 사회주의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북한에서 국가 계획보다 시장의 힘이 매우 셉니다. 경제를 움직이는 세력은 간부들의 명령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밑바닥 주민들의 노력과 창조입니다. 물론 북한당국은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못 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의 2017년 신년사를 보면 경제문제 해결에 있어 구체성이 매우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선 경제 통계가 전혀 없습니다. 금속공업이든 전략공업이든 화학공업이든 그의 주장은 비슷합니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는 이야기 뿐입니다. 세계 역사에서 나타나듯 정부의 명령은 경제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기자: 경제부문에서 국가 명령이 힘이 없다고 할 수 있나요? 북한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가는 무서운 힘이 있지 않을까요?

란코프: 국가의 힘이 무섭기는 하지만, 경제부문에서 국가가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국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문에서 모든 자원, 노동력과 외화를 집중시킨다면 많은 성공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가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문이 많지가 않다는 점입니다. 북한의 경우 이러한 부분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부문에서 북한은 노력과 자원을 총동원해 아주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치뤄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북한 정부가 중요시하는 몇 개 부문에서 성과를 이룩하기 위해서 다른 부문들의 발전을 희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사회주의 역사를 보면 구소련이나 중국이 특히 무기생산, 군수공업에서 성과가 있었지만 경공업이 그 대가를 치루는 바람에 일반 사람들이 매우 어렵게 살았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자라난 1960-70년대 소련은 탱크나 장거리미사일을 잘 만들 줄 알았지만 세탁기나 자가용 승용차 같은 소비제품을 잘 만들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국민들의 입맛에 맞는 식품생산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그런데 북한 당국은 노동자들을 사상적으로 무장시키고 의식수준을 높이고, 수령과 당에 대한 믿음과 고마움을 고취시키면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사상 때문에, 의식 때문에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아니죠?

란코프: 전혀 아닙니다. 북한당국이 주민들의 사상과 의식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정말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사상 때문에 얼마 동안 고생할 수도 있고,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할 수도 있지만 언제까지나 영원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고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성과가 안 나온다면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국가사회주의 경제 밑에선 열심히 일하는 척만 할 뿐 무책임하게, 게으르게 일하고 있습니다. 일을 잘해도 자신들의 소득과 개인 생활에서 일 못할 때와 차이가 없을 때는 사상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같은 사실이 구소련이나 중국 같은 나라들의 회주의 실험의 실패를 결정한 것입니다. 구소련이나 중국은 경험적으로 이 같은 사실을 깨달아 시장경제로 나갔고, 북한도 이런 사실을 사실상 깨달았습니다.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 대해 여전히 노동당에 대한 믿음이나 노동 열망에 대해서 운운하고 있지만 북한 경제가 굴러가기 위해서라도 사실상 보이지 않게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식 경제 관리 방식을 도입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