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선 북한의 신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장마당 세대'에 관해 살펴봅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이 식량위기를 겪고 나라가 제대로 식량을 배급하지 못하면서 북한 대다수 주민들이 비공식 시장이라 할 수 있는 장마당을 통해 먹고사는 일이 일상화됐는데요. 장마당이 뿌리내리면서 북한에도 이른바 '장마당 세대'라는 것이 생겨났다고 하는데요. 북한의 장마당 세대란 게 존재합니까?
란코프: 저는 소련 사람입니다. 그래서 과거 자라면서 유물론식 역사교육을 받았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마르크스주의 교육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 유물관 이론 중 하나는 사람의 세계관과 역사관 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물질적 조건과 경제상황이라는 주장입니다. 북한도 물론 예외가 아닙니다. 북한에 식량기근이 시작된 1990년대부터 북한 경제는 많이 변화하였고, 북한 사회 역시 완전히 변화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 주민들의 세계관에 많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지난 20년 동안 북한에서는 국가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주의 경제가 무너지고, 시장세력에 의해 움직이는 장마당 경제, 시장경제가 등장하였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식량기근으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북한에서 식량배급 체제가 마비되었을 때, 10살도 안 되었던 사람이 지금 30살이 넘었습니다. 오늘날 식량배급을 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생활하는 장마당 세대는 전체 북한 인구의 거의 절반 정도입니다.
기자: 상당히 많은 숫자에요.
란코프: 네, 지금 30~35세가 다 장마당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국가 보다 자신의 힘을 믿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생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자: 교수님 말씀대로 유물론적인 세계관이 북한 사람들 세계관에 파고들고 있어요. 물질과 경제 상황이 북한 주민들한테 많은 영향을 줬다는 말이군요.
란코프: 맞아요. 물질적인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 그들의 세계관도 바뀔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자: 북한의 경우 시기적으로 1980년대~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을 장마당 세대로 본다면 대략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으로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30대초반인 김정은도 장마당 세대라 볼 수 있겠죠?
란코프: 네, 오늘날 김정은도 어느 정도 장마당 시대 출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완전히 다른 생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어린 시절, 주석궁이나 별장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의 생활을 파악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 후 오랫동안 스위스 등에서 해외 유학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경험은 나이가 비슷한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의 경험과 매우 다릅니다. 그러나 김정은 제1위원장도 장마당 청년들과 세계관과 유사한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특징일까요? 그는 사상을 별로 믿지 않고, 세계를 매우 현실적으로 직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주체사상보다 돈벌이나 개인생활 발전에 더 관심이 많겠죠?
란코프: 네, 그런 입장에서 보면 김정은 장마당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김정은 정권은 장마당을 사실상 묵인하는 정책을 취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장마당 세대의 성장에 대해서도 묵인하고 있을까요?
란코프: 제가 보기에 장마당을 묵인하는 정책이라는 표현 보다는 시장화를 보이지 않게 촉진하는 정책이라고 하면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북한 정부는 중국처럼 개방을 할 수도 없고, 정치를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경제에서의 변화를 많이 장려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개방이 없는 개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김정은과 그의 측근들이 현실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주체 사상 등 별 의미가 없는 선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상 경제 개발을 위해 시장 발전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안이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경제발전을 위해 유일한 방법은 시장화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북한의 신흥 부자 즉 돈주들은 돈을 마음대로 쓸 수도 있고, 이들에 대한 단속도 과거처럼 심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장마당에서 생계를 꾸려나가고, 북한 정권을 이를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택 건설 등 개인 자본을 유치하라는 방침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을 김정은의 현실주의 접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자: 북한은 한때 장마당이 나라의 통제를 벗어나 정권의 안정에 위협을 준다고 판단하자 이를 해체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는데요. 김정은이 현실적으로 장마당의 폐쇄나 장마당 세대의 성장을 가로막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봅니까?
란코프: 이것은 대답하기 매우 곤란한 질문입니다. 제가 보니까 그리 될 가능성이 많지 않습니다.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장마당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원래 장마당의 성장이 조만간 정치 안전과 현상 유지를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북한의 신흥부자, 즉 돈주들은 노동당 간부들처럼 국내 안전을 매우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북한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그들이 장사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이 무너진다면, 돈주들도 심한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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