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려면 북 이산상봉부터 응해야”

0:00 / 0:00

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선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남북관계 개선용의와 관련해 브루킹스 연구소 동아시아정책센터 소장인 리처드 부시(Richard Bush III) 박사로부터 그 배경과 의도를 알아봅니다. 부시 박사는 과거 미국 국무부를 포함해 22년 간 공직에 있으면서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문제에 폭넓게 관여했고, 1990년대 중반엔 미국국가정보국에서 동아시아 정보담당관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 개선 용의를 밝힌 뒤 북한이 요즘 남북대화 공세를 벌이고 있습니다. 우선 김 위원장이 밝힌 대화 용의를 어떻게 봅니까?

부시: 글쎄요. 표면적으로 보면 김 위원장이 대화든 회담이든 일단 이런 데 관심을 표명했다는 게 긍정적입니다. 물론 여러 조건을 달긴 했지만 말이죠. 자세히 들여다보면 김 위원장은 오히려 다른 나라, 특히 남한과 미국이 대화의 조건을 만들어주길 기대하는 게 분명합니다. 정작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상황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이 북한인데도 김정은은 거기에 대해선 아무런 책임을 지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김정은의 대화제의를 무조건 거부해선 안 되겠죠. 특히 조건이 붙지 않는 제의는 말이죠. 하지만 북한의 이런 행태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공을 박근혜 대통령한테 던지곤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려 하는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런 유화적 손짓에 속아넘어가진 않을 것으로 봅니다.

기자: 지적하신 대로 최근 북한은 대화를 위해선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할 것과 5.24 조치의 철회를 거듭 요구하고 있습니다. 5.24 조치란 북한이 2010년 3월 남한의 천안함을 폭침한 데 대응해 남한 정부가 취한 대북교역 중단조치이지만 남한 정부는 아직은 철회할 의지가 없다는 반응인데요. 북한의 이런 태도를 어떻게 봅니까?

부시: 북한도 해마다 한미 양국이 합동군사훈련을 해온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여건만 조성되면 훈련을 중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죠. 하지만 그런 여건을 조성하는 책임은 북한에 있습니다.

기자: 이처럼 남북대화를 여는 데 조건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밝힌 대화 용의에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겠죠? 북한은 과거에도 자신들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대화를 거부하지 않았습니까?

부시: 그렇죠. 어떤 면에선 진지한 제의가 아님을 드러내는 겁니다. 물론 제의 자체만큼은 진지해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제가 이해하기론 한미 양국이 연례 합동군사훈련을 하게 되면 이게 북한 체제에 부담을 줍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북한은 이런 식의 합동훈련이 북침을 위한 전쟁연습이라고 생각하고 고도의 경계상태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북한이 한미합동군사 훈련에 대응할 수밖에 없는 부담만 줄일 수 있다면 거기서 가치를 찾을 수 있겠죠.

기자: 그렇다면 김정은이 새해 벽두부터 남한을 향해 이런 대화공세를 펴는 목적은 뭘까요? 혹시 이것도 남쪽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대남전술은 아닐까요?

부시: 제가 보니까 김정은은 이를 통해 자기가 화해와 평화를 선호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정체 상황의 부담을 북한이나 미국 쪽으로 돌리고 싶은 것이죠. 이미 말씀을 드린 대로 김정은은 공을 박근혜 대통령 쪽으로 던지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런 대화제의를 과연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북한의 전술이란 점은 다 알죠. 객관적인 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남북대화와 관련한 아주 진지한 제의는 박근혜 대통령한테서 나왔다는 사실을 이해한다고 봅니다. 북한은 이런 제의에 아직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기자: 사실 북한은 오랜 세월 대남전술 차원에서 대화제의를 이용해왔고, 또 그럴 때마다 남한에선 북측의 제의를 받느니 마느니 찬반 논란이 뜨거웠습니다. 그렇게 보면 김정은의 이 같은 대화제의가 남한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려는 의도는 없을까요?

부시: 글쎄요. 그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대로 우린 북측의 대화 제의를 무조건 거부해선 안 됩니다. 이를 통해 북한이 제시한 조건이 진지한지도 탐색해보고, 북한 측의 의중을 시험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표면적으로 보면 북한이 제시한 조건들은 대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죠. 따라서 남북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진지한 방법은 우선 북한이 남한이 제시한 대화에 응해서 남북이산가족상봉을 실현해보는 겁니다. 이산가족상봉은 어떤 이념에도 얽매이지 않은 구체적인 성과물이요, 인도주의적인 노력이기도 합니다. 남한이 북한에 던진 공이 바로 그것이었죠. 따라서 김정은의 대화 공세는 이런 남측의 제의를 회피하기 위한 역제안일 수도 있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다시 말해 북한이 먼저 남측의 이산가족상봉 제의 같은 걸 먼저 받아들여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말씀이죠? 남한 정부는 오는 2월 19일 설날을 전후해 이산가족상봉을 북측에 제의한 상태이지만 북한은 현재 이산가족상봉에 앞서 남한에 대해 대북교역 중단 해제를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부시: 맞습니다. 그런 진지한 식으로 해야 상호 작용이 이뤄지는 겁니다. 만일 아주 어려운 문제부터 꺼내놓고 대화를 한다면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할 겁니다. 자신감과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은 우선 경제 문제나 인도주의적인 문제처럼 풀기 쉬운 문제들부터 다루고, 그렇게 해서 상호호혜의 방식으로 더 큰 신뢰를 쌓은 뒤 어려운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기자: 일부에선 북한이 현재 처한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해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위급 회담을 성사시켜 남측에게서 대규모 경제지원을 얻어내려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합니다. 그럴까요?

부시: 일리는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지금은 중단된 금강산 관광사업의 경우 북한이 과거 분위기와 환경 개선문제를 얘기하면서 꺼낸 구체적인 요구 사항 가운데 하나였죠. 따라서 그런 전례에 비춰보자면 북한이 이번에도 분위기 얘기를 꺼냈다면 관광사업 재개는 분명 북한 측 의중의 하나일 겁니다. 분명 거기엔 구체적인 경제적 이유가 있을 겁니다.

기자: 김정은은 '분위기와 환경'만 조성된다면 남북정상회담도 응할 수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게 오는 5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2차대전 전승기념일에 김정은이 초대받았다는 점인데요. 보도를 보면 김정은은 이 행사에 참가하기로 결정했지만, 아직 남한의 박근혜 대통령은 참석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만일 남북한 정상이 이런 자리에 참석할 경우 정상회담도 가능하지 않느냐는 조심스런 관측도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은 접어 두고라도 과연 이런 식의 정상회담이 바람직하다고 봅니까?

부시: 글쎄요. 각국의 정상들이 국제 모임에서 서로 접촉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가볍게 얘기할 수도 있고, 악수를 교환할 수도 있고, 한 두 시간 회동할 수도 있겠죠. 정상회담이라고 일컬을만한 대화를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회동한 것은 정상회담이라고 할 만했죠. 당시 두 정상은 전날 만찬을 포함해 하루 일정을 통해 진지한 문제들을 논의했고, 양측 정상회담을 위해 여러 합의문이 미리 준비되고 발표됐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자면 아직은 정상회담을 가질 만한 적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양측 정상이 서로 조우할 가능성이 더 많겠죠. 문제는 과연 남북 양측이 그런 데 가치를 둘 것인지, 만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조건은 무엇인지가 되겠죠. 저도 정상회담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겠지만, 가장 현실적인 가능성은 온건한 수준의 상호 접촉일겁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이 시간에선 김정은 제1위원장의 대남관계 개선용의 문제와 관련해 리처드 부시 부르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