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 진행에 변창섭입니다. 오늘 순서에서는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 나타난 국내외 국정 방향과 관련해 플레처 국제대학원(Fletcher School of Law and Diplomacy) 의 한반도 전문가인 이성윤 교수로부터 들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올해 김정은 신년사를 보면 앞 부분에 장성택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종파오물'을 언급하며 1인 영도체제에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는데요. 그럼에도 장성택을 숙청한 게 김정은의 권력이 더 공고해진 것을 말한다 혹은 불안감에서 나온 숙청이다 하는 얘기가 아직도 분분한데요. 어느 쪽이라 봅니까?
이성윤: 저는 전자라고 봅니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숙청한 것은 불안감의 발로가 아니라 자신의 영도체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도전하는 인물이나 종파는 무차별로 숙청하겠다는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심어줬다고 봅니다. 실제로 북한 같은 전체주의 체제에선 제2인자가 위태로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북한에선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이 형식적으론 2인자이지만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 왕가에 도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반면 장성택은 너무 영향력을 갖고 있었고 주변 세력도 형성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숙청당하리라고 저는 지난 수년간 주장했습니다.
기자: 김정은이 집권 2년 만에 숙부였던 장성택을 전격적으로 숙청한 것은 그만큼 권좌에 자신이 있다는 방증일까요?
이성윤: 김정은이 제2인자를 잔인하게 처형했기 때문에 단기적으론 북한 체제 안에서 제2인자 꿈을 꾸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단기적으론 김정은의 권력이 공고화됐다고 봅니다. 반면에 장기적으로 볼 때 김정은이 다른 한국, 그러니까 세계적으로 거의 전례 없이 산업화,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이라는 국가의 바로 옆에 있으면서 북한 주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탈북해서 더 살기 좋고 자유가 보장된 한국으로 가는 추세가 이어지는 한 김정은 체제가 10년, 20년 후에도 계속 남아있을지는 회의적입니다. 게다가 한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김가 왕가에는 굉장히 큰 심리적 부담이 되죠. 남한에 흡수통일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 장성택이 숙청된 뒤 지금 김정은의 혈육이라곤 고모인 김경희, 친여동생과 이복 형제들뿐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최룡해나 김원홍 등 새로 부상한 실세들이 힘을 합쳐 김정은을 제거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이성윤: 쉽진 않습니다. 물론 어느 체제나 쿠테타(정변)이 일어날 가능성은 있습니다. 북한 내에도 있다고 봅니다. 그 가능성은 특히 김정은이 장기 집권할수록 10년 후, 20년 후 더 증가할 걸로 봅니다. 남북한의 경제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질 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북한 내부에서도 김정은 체제의 성격이나 정책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바꿔보자는 용기를 가지고 도박을 할만한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반면에 만일 김정은을 없애고 나서 김씨 왕조가 아닌 다른 인물이 등장해 집권했을 때 그 이후가 문젭니다. 김일성 시대로부터 쌓아온 지난 70년 간의 치적이나 이념 등 북한 체제의 기반을 완전히 없애야 하는데 그 과제도 보통 일은 아닐 겁니다. 북한이란 체제가 김일성 왕조인데요. 김일성의 우상물들을 없애고 나면 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북한 주민들에게 제시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 등장한 집권자는 한국과 협조하는 게 유일한 살 길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따라서 어느 누군가가 10년 뒤, 20년 뒤 김정은을 제거하고 집권한다면 그 인물 밑에서 북한 체제가 장기적으로 지속하기 보다는 한국과 결합해 통일이 이룩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기자: 그런 날이 언제 올지 궁금한데요. 문제는 김정은 체제 아래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주민들 아닙니까?
이성윤: 북한 주민들은 지금 삶의 어려움과 배고픔 등등을 뼈저리게 느끼곤 있지만 외부세계와 비교해서 북한이 어느 정도의 전체주의 체제인지, 어느 정도로 기본권, 그러니까 이동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기본적인 자유를 북한 체제가 어느 정도로 탄압하는지 잘 모를 걸로 봅니다. 미국에선 진보적인 인사건 보수 인사건 이 점 하나는 동의합니다. 즉 북한이란 체제는 인류 역사상 제일 극심한 전체주의 체제라는 사실입니다. 그만큼 기본권을 탄압하는 극심한 폭정 국가라는 점에선 다들 동의합니다.
기자: 그런 점에서 김정은이 자생적인 지도력을 갖추려면 경제를 발전시켜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이성윤: 그런 기대를 좀 걸었죠.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한 뒤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김정은은 어려서 유럽에서도 살았다. 반면에 김정일은 외부세계와 등을 돌리고 살지 않았습니까? 또 집권 후에도 러시아와 중국만 방문했지 해외 여행을 즐긴 사람도 아니고 해서 대조적이었습니다. '김정은이 어려서 스위스에서 살았다는 그 이유 하나 가지고 넒은 세계를 어려서 봤으니 좀 다르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년간 김정은 체제를 평가해보면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두 번 했죠, 핵 실험을 한 번 했죠, 탈북자의 이동 자유를 제한하고 여러 번에 걸쳐 숙청을 자행했지요. 나아가 정치범 수용소를 확장했습니다. 이게 지난 2년간 김정은 체제의 기록입니다. 이런 점을 놓고 볼 때 김정은이 등소평처럼 개혁, 개방을 할 것으로 보긴 힘듭니다. 파리에서 4년이나 살았던 폴 포트 독재자나 어려서 10년 넘게 영국에서 유학한 시리아의 아사드 독재자는 10만이 넘는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았습니까? 이걸 볼 때 김정은이 유럽에서 좀 좋은 생활을 체험했다고 독재성향이 표출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근거가 없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서구 자유주의 나라에서 해외생활을 했다고 해서 김정은이 독재성향을 감출 순 없다는 것이군요?
이성윤: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려서 봐서 정책으로 반영된 것은 인민의 생활과는 동떨어진 호화로운 마식령 스키장 건설이라든가 공원, 놀이터, 극장, 고급식당 아니면 미국 프로농구선수였던 데니스 로드먼 같은 사람과 어울리고 전혀 인민의 삶과 관계가 없는 호화 시설만 짓고 있습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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