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식량생산 늘리려면 인센티브 필수”

중국과 접경한 북한 황금평에서 영농 준비를 하는 북한 농민들의 모습.
중국과 접경한 북한 황금평에서 영농 준비를 하는 북한 농민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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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선 북한이 근래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농업생산 증대문제와 관련해 북한농업전문가인 랜달 아이리슨(Randall Ireson) 박사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아이리슨 박사는 과거 미국의 민간단체인 미국친구봉사위원회(AFSC)가 다년간 북한에서 주도한 농업개발프로그램을 주도한 바 있는 농업전문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이 2012년 농업개혁의 일환으로 6.28조치를 발표한 데 이어 지난해5월30일엔 김정은 제1비서의 담화형식으로 경제개선 조치를 내놓는 등 농업생산 증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요. 이 같은 농업우선 기조는 올해 신년사에서 엿볼 수 있지 않습니까?

아이리슨: 사실 김정은 제1비서가 신년사에서 농업문제를 언급했지만 한 단락 정도이고, 그다지 구체적이지도 못했습니다. 그것도 현지 실정에 맞게 연간 농업생산을 증대하겠다는 일반적인 내용으로 압니다. 연설내용을 보면 구체적으로 생산된 작물의 이윤의 몫이나 추수작물을 어떻게 시장에 내놓을 것인지, 농산물 생산에 필요한 자재공급 등과 같은 정책적인 문제에 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습니다.

기자: 북한은 2002년부터 농업개선을 위해 이런 저런 조치를 취해왔습니다. 이를테면 2002년 7월1일엔 '경제관리개선조치'라고 해서 수익에 따른 분배 차등화라든가 배급계획 폐지, 임금인상 등 개선조치를 취했고 2004년엔 포전담당제라고 해서 협동농장의 분조단위를 대폭 줄여 농지를 할당해 경작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지요. 이어 2013년과 지난해에도 나름의 경제개선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까? 우선 이런 일련의 조치들에 대해 평가해주시죠?

아이리슨: 우선 말씀하신 것 가운데 2002년 7.1 경제개선관리조치부터 말씀 드리지요. 당시 조치는 단순히 농업부문만 거론한 게 아니라 일반적인 경제부문의 정책변화이기도 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임금과 가격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죠. 그런 발상을 하게 된 배경은 북한의 원화 가치를 당시 환율 상황에 맞게 내리는 대신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폭 올렸습니다. 또한 농장에서 나오는 생산품에 대한 가격도 올리는 한편 이런 물건이 상점에서 거래되는 가격도 올리는 것이었죠. 즉 시장 상황에 맞게 가격을 올려서 농부들의 생산의욕을 높이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치의 문제점은 농부들이 생산물을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있는 원자재가 없었다는 점이었죠. 당시 북한 경제는 1990년대 대기근의 후유증에 따른 난국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장엔 비료도 충분하지 않았고, 농기구를 운용할 연료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뜨락또르 (트랙터)라든가 모심기 기계, 추수기계 등 농기구는 작동할 수 없거나 관리가 아주 형편없었죠. 이런 상황에서 농부들이 목표량에 맞게 생산성을 높이고 싶어도 그러질 못했습니다.

기자: 말하자면 당시 북한이 처한 경제 여건을 보면 농민들이 수확물을 더 생산하고 싶어도 이를 뒷받침할 만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말씀이군요?

아이리슨: 그렇지요.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7.1 조치의 후유증이 나타났습니다. 이 조치가 시행된 직후 물가가 급등했습니다. 식량 등에 대한 수요는 변하지 않았는데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겁니다. 수요와 공급 차원에서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다 보니 물가가 계속 오른 것이죠. 게다가 설령 농부들이 돈이 있어도 비료를 구입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에서 생산하는 비료가 부족한데다, 비료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농민들이 더 많은 생산물을 수확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도 이듬해 생산성 향상을 위해 돈을 쓸 데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농민들은 꿈쩍도 안 하고 농업생산도 정체가 된 겁니다. 그렇게 보면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습니다. 당시 조치는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고취해서 뭔가 발전을 이뤄보겠다는 국가차원의 최초의 조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기자: 그 뒤로 주목할 만 한 조치는 2012년에 들어서 북한 당국이 6.28 농업개혁 조치를 취할 때까지 별다른 조치는 없었나요?

아이리슨: 별로 획기적인 조치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있다면 2004년경 북한 당국이 북한 지역 일부에서 2012년 조치와 비슷한 조치가 있었죠.

기자: 혹시 2004년 북한 당국이 협동농장 분조원을 15명에서 5명 정도로 줄인 뒤 농지를 할당해 경작하게 한 '포전 담당제'일 텐데요. 하지만 이 조치는 제대로 시행되지도 못하고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아이리슨: 그렇습니다. 기존의 생산물 할당 단위를 농장이 아닌 분조 개인에게 위임한 겁니다. 당시 그런 조치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조치도 국가 지령에 따른 것이었죠. 이 조치는 북한 일부 지방에서만 실시돼다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2012년 6월28일 농업개혁 조치가 나온 겁니다. 6.28 조치도 과거 7.1 조치와 본질은 같지만 전에 비해 효율성은 더 높았습니다. 제가 알기론 6.28 조치는 양강도를 포함해 3개 지방에서 처음 실시됐고 이후 2013년 더 많은 지역으로 확대 실시됐습니다. 이와 관련 남한 언론보도를 보면 2013년에도 6.28조치는 그다지 많은 지역에서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기자: 2012년 7.1경제개선관리 조치에 비해 6.28 농업개혁조치가 효율성은 더 높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6.28 조치의 주요 특징은 생산의욕을 주자는 건데 그런 목적을 이뤘나요?

아이리슨: 말씀하신 대로 생산의욕 고취가 당시 조치의 주된 배경이었죠. 협동농장 생산분조 단위가 종전엔 10~12명에서 4~6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또 분조는 가을 추수 수확량에서 과거 10%에서 이번엔 30%를 가져가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동기를 부여하자는 것이었죠. 하지만 일선 지방당국의 반대로 실제로 30%가 배분됐다 혹은 안 됐다는 엇갈린 보고가 있습니다.

기자: 그럼 6.28 농업개혁조치도 북한에선 전국적이 아닌 일부 지방에서만 시행됐다는 건가요?

아이리슨: 전국 단위에서 일관되게 시행되진 않았습니다. 이게 2014년 들어서 좀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실시됐다고 하는 데 확인되지 않은 겁니다. 100% 확실하진 않아도 2013년보다는 더 많은 곳에서 실시됐습니다. 내용적으로도 30% 수확을 생산분조가 가져가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생산물을 장마당에 팔 수 있는 건지 아니면 나라에 의무적으로 팔아야 하는 건지 등등 확실치 않습니다. 그에 따른 처리 방법도 지역마다 다를 겁니다.

기자: 지난해 2월 포전제를 통한 생산상 고취를 위한 전국 분조장 대회가 평양에서 열린 까닭도 6.28 조치의 관철을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을까요?

아이리슨: 맞습니다. 기본적으로 6.28 조치를 재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죠. 내용적으로 새로운 것은 없지만 제가 볼 때는 6.28 조치를 관철하자는 뜻이었죠. 9천명에 달하는 분조 책임자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여서 정치강좌를 비롯해 일주일 동안 집중 학습을 가진 겁니다. 이 자리엔 김정은 제1비서의 서한도 전달돼서 행사가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 생산현장으로 돌아간 분조 책임자들은 6.28조치에 따른 지령을 실천하는 겁니다. 그게 작년 2월 전국분조장대회의 핵심이었습니다. 비록 100% 확신할 순 없지만 제가 듣기론 이 조치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이 시간에선 북한의 농업개혁, 경제개선 조치 등과 관련해 랜들 아이리슨 박사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