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선 올해 북한과 미국 간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에 관해 러시아 출신의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로부터 들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지금 북미 관계는 오바마 행정부가 5년 전 출범한 뒤로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이 2012년 12월부터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를 장기 억류하면서 두 나라 사이는 더욱 나빠졌는데요. 우선 북미 관계의 걸림돌을 꼽으라면 단연 북한 핵 문제가 아닐 수 없는데요. 그런데도 미국은 요즘 과거처럼 북한 핵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란코프: 핵 문제에 관심이 없습니다. 현재 미국은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미국이 당초 북한에 관심을 가진 것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 입니다 .지금 미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핵개발이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북한 언론은 이제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다, 뉴욕과 워싱턴을 공습할 수 있다"고 하는데 미국은 이런 선전이 거짓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술적으로 그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미국 입장에서 보면 핵확산 자체가 더 문제입니다. 북한처럼 작은 나라가 핵을 만드는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은 미국에 위협은 아닙니다. 거듭 말하자면 미국은 당초 북한 핵개발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북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방법이 없습니다.
기자: 사실 과거 부시 행정부 때를 보면 북한이 1, 2차 핵 실험을 한 뒤엔 미국은 부랴부랴 핵 협상단을 파견했고, 결과적으로 북한이 요구한 사항을 들어주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는 북한의 핵도발에 대해 어떤 보상도 하지 않고 있는데요. 만일 내일이라도 북한이 또 다시 핵실험을 한다면 오바마 행정부도 결국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대처하지 않을까요?
란코프: 물론 얼마 동안은 시끄러울 겁니다. 아마 2~3달 정도 북한은 화젯거리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다시 잊혀질 겁니다.
기자: 미국이 이처럼 북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데는 북한 핵 문제에 진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일부에선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욱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열중할 것이란 얘기도 있는데요?
란코프: 그렇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의 장거리 로켓도 위험한 것입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여러 번 발사했지만 성공한 것은 하나뿐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앞으로 더 몇 차례 성공적인 발사를 한다면 진짜 미국의 관심을 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 단계에선 미국은 북한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기자: 북한이 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관심을 끌려면 그런 것보다는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부터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란코프: 그건 미국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니까 북한은 미국이 보기에 진정성을 담보한 정책을 펴지 않을 겁니다. 왜 그럴까요? 북한의 핵 정책의 기본은 무엇입니까? 핵을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21세기에 사는 이 시대에 핵은 위험한 것입니다. 따라서 핵을 가진 국가는 적을수록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도계층의 입장에서 보면 핵 개발은 합리주의적인 방책입니다. 그들은 핵을 억제 수단으로도, 압박 수단으로도 외교수단으로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사실상 미국 외교관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지금 북미 관계를 가로 막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2012년 12월부터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인 케네스 배 씨의 문제인데요. 북한은 배 씨의 석방문제와 관련해 로버크 킹 미국대사를 두 번씩이나 초청해놓고 막판에 취소해 실망을 안겼는데요. 미국 정부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죠?
란코프: 이 문제는 사실 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북한 정치구조나 사상을 보면 북한 정부는 인간의 생명, 개인의 생명을 전혀 무시합니다. 북한에선 김일성의 아들 딸이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생명의 가치가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민주주의 나라이니까 아주 다릅니다. 그래서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체포된다면 미국 정부 입장에선 큰 일입니다. 현재 북한은 케네스 배를 통해 미국 정부에 압력을 가할 정도로 심하게 나오진 않고 있지만 그래도 미국 정부에겐 무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북한에서 어떤 사람들은 케네스 배를 통해 미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케네스 배가 억류돼 있는 동안은 북미 관계가 개선되기 어렵습니다. 배 씨를 풀어주지 않으면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배 씨의 석방 문제는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충분한 조건은 아니지만 필요한 조건이긴 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배 씨가 풀려나기 전까지 북미관계의 개선을 희망할 순 없습니다.
기자: 그런 점에서 당장 미국의 더 큰 관심사는 핵보다는 케네스 배의 석방 문제가 되겠군요?
란코프: 물론 그건 아닙니다. 사실상 케네스 배 문제건 핵 문제건 둘 다 주변적인 문제입니다. 미국이 지금 북한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느끼는 케네스 배 문제는 북한이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합니다.
기자: 북한 핵 문제가 벌써 5년째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2012년 한때 북미 양국이 진전을 보기도 했는데 이게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깨졌는데요. 북한이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경우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란코프: 제가 보니까 합리주의적인 태도는 북한의 핵무기를 관리하는 겁니다. 북한은 사실상 2012년 2월29일 합의서를 통해 한편으론 핵개발을 중단하고 추진하지 않는다는 조건아래 미국에서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경우 북한은 이미 개발한 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북한은 말로는 비핵화를 할 것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그 경우 이건 비핵화가 아닌 핵무기를 관리하는 방법입니다.
기자: 하지만 북한이 말로만 비핵화를 주장하고 기존의 핵을 유지하는 방식을 미국이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란코프: 물론 이런 전략을 미국은 현 단계에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2~3년 뒤에는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핵 문제도, 케네스 배 석방문제도 쉽사리 풀릴 전망이 없는데요. 북한이 이런 문제들과 관련해 무엇보다 미국에 진정성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란코프: 북한은 미국에 압력을 가할 수 있지만 별 의미가 없는 도발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국가보위부는 케네스 배가 북한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활동을 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북한 측은 당초부터 케네스 배에게 입국 비자를 발급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북한은 또 미국의 킹 대사를 두 번씩이나 초대했다가 취소했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북한은 이상한 나라요, 김정은은 믿을 수 없는 지도자라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북한이 이런 불필요한 도발을 피하고 북한이 조성 중인 인위적인 위기를 만들지 않으면 좋을 겁니다. 북한이 긴장을 고조해서 얻을 게 지금 없습니다. 예전엔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기자: 그렇게 보면 올해도 북미관계의 개선 전망이 희박하다고 볼 수밖에 없네요?
란코프: 제가 볼 때 지금 미국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도 없고 실망도 큽니다. 그래서 두 나라가 관계를 개선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두 나라 관계는 많이 어려워질 수도 없지만 많이 좋아질 수도 없습니다. 원래 미국은 북한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가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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