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 순서에서는 북한의 위장평화 공세 문제에 관해 미국 터프츠대 산하 플레처 국제대학원의 한반도 전문가인 이성윤 교수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이 새해 벽두부터 남한에 대해 이런 저런 대화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김정은은 작년 신년사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을 희망하지 않았습니까?
이성윤: 그렇습니다. 김정은이 이번에 신년사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사실은 작년에도 똑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불과 한 달 후에 제3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2월, 3월, 4월 중순까지는 핵 공갈과 위협도 하고 전쟁직전이라는 식으로 계속 남한을 위협했습니다. 그래서 신년사를 하나의 지표로 본다면 올해도 비슷하게 위협하고 공격도 하리라고 판단하는 게 더 논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렇게 보면 김정은의 통치 방식도 선친 김정일 때와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는 말인가요?
이성윤: 기본적인 전략은 달라질 수 없다고 봅니다. 김정은이 통치한 지난 2년을 평가할 때 그렇습니다. 오히려 김정은은 더 짧은 기간에 더 많은 도발을 했지 기본적으로 달라진 건 없습니다. 전술적인 측면에서 달라진 게 있다면 근래 들어 소위 평화공세를 펼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지난 10여년 북한의 행동을 놓고 평가해볼 때 좀 다릅니다. 예를 들어 2002년 이후에는 북한이 매해 상반기에 도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6, 7월로 들어서면서 하반기엔 평화공세를 펼쳤습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2006년 10월9일, 그러니까 노동당 창건일 바로 전 날 1차 핵실험을 했죠. 그리고 2010년 11월에 연평도 포격을 단행했고, 2012년 12월12일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이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2006년 당시엔 미국의 금융제재로 북한이 많은 위협을 느꼈습니다. 북한으로선 1차 핵실험이란 상징성도 있었죠. 그리고 2010년부터는 김정은을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김정은을 2인자로 옹립하는 측면에서 도발을 했다고 저는 봅니다. 그리고 2012년에는 남한과 일본, 러시아,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최고 지도자가 바뀌지 않았습니까? 미국에선 오바마 행정부 2기가 시작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북한은 도발을 안 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판을 벌려놔야 우리가 말썽을 부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놔야 상대방으로부터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기자: 북한은 과거 남남갈등을 유발하기 위해 평화공세로 나온 적이 적지 않았지 않습니까?
이성윤: 북한은 대외정책으로 연막, 위장술을 아주 잘 씁니다. 전례가 많죠. 1950년 6월25일 한국전 도발 바로 전 주에도 통일을 위한 회담을 하자는 평화공세를 펼쳤습니다. 1983년 10월9일 노동당 창건일 바로 전 날에는 버마 랑군에서 남한 정부요인들을 상대로 테러를 감행했습니다. 당시 17명의 남한 정부 인사가 사망했습니다. 당시에도 바로 전 날인 10월8일 북한이 중국한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미국과 양자회담을 하고 싶으니 우리의 희망을 미국에 전해달라'는 부탁을 말입니다. 그래서 당시 등소평이 아주 흡족해했습니다. 그런데 기꺼이 그런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하고 나서 랑군 폭탄테러가 터졌습니다. 그래서 등소평이 아주 분노해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중국을 방문하지 못 하게 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등소평 집권 시기에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북한은 이런 식의 평화공세를 통해 상대방의 경계심을 낮추고, 북한을 위협대상으로 판단하지 않게끔 연막전술을 쓰면서 도발을 강행했지요.
기자: 그렇군요. 사실 북한은 2012년 12월에도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기 앞서 위장 평화전술을 썼죠?
이성윤: 그렇습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실험한 2012년 12월12일 바로 전 날에도 '위성발사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변명했고, 그 때문에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이를테면 '중국이 압박을 가해서 미사일 실험을 안 하려는 모양이구나' 하는 얘기가 나왔고, 그러면서 긴장이 좀 느슨해졌습니다. 특히 백악관과 국무부 관리들은 물론 미국 워싱턴의 대북전문가들도 북한을 유심히 관찰하기 보다는 워싱턴의 주일 대사관에서 칵테일 파티에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12월12일 워싱턴 시각으로 밤 10시에 장거리 로켓을 쐈습니다. 이런 식으로 북한은 위장술을 펼치는 데 아주 노련한 체제입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이번에 한미 양국이 1970년대부터 매년 해온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고 나면 그걸 이용해 도발하고 한국과 미국을 탓할 것으로 봅니다.
기자: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연초부터 이런 저런 제의를 남측에 내놓고 있지만 진정성은 없다는 뜻이군요?
이성윤: 북한이 진정성이 없다는 점은 지난 10여년 북한의 행동을 볼 때 거의 확실한 겁니다. 예를 들어 2003년도에는 1월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하고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면서 분위기가 무척 안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 8월 6자회담이 처음으로 열렸죠. 하반기에 북한이 대화공세를 펼친 겁니다. 그리고 2009년 9월 공동성명에 핵 합의가 나왔지만 이듬해 10월 1차 핵실험을 강행했고 2007년 들어서 하반기에 외교 접촉이 있었고, 다시 2009년 12월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평양을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3월에 천안함 폭침, 11월엔 연평도 포격으로 북미관계, 남북관계가 무척 어려워졌죠. 그러나 2011년 7월엔 김계관 부상이 뉴욕에 와서 보스워스 대사를 만났고, 같은 해 10월엔 제네바에서 북미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런 행동을 놓고 보면 북한은 늘 '선도발 후보상'이란 목표를 가지고 움직여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이 과거엔 통했습니다.
기자: 하지만 그런 방식이 과거 부시 행정부 때는 통했지만 지금의 오바마 행정부 때는 그렇지 않죠?
이성윤: 오바마 행정부 들어선 큰 보상은 안 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월 임기를 시작할 때 '과거의 실책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새로운 도발을 할 때마다 더 큰 보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죠. 이런 악순환은 내가 끊어버리겠다'고 말입니다. 그런 목표는 달성했다고 볼 순 있습니다. 반면에 지난 수 년 동안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계속 발전하고, 북한의 극심한 인권유린은 계속되고 북한의 위협도 점점 커졌는데요. 그런 점에서 보면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과히 성공적이라곤 할 수 없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여러 번 협상은 시도했지만 데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을 회의적으로 보고 믿을 수 없다고 보는 겁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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