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최근 중국이 향후 비핵화 논의 시 평화협정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해서 주목을 끌었습니다. 1953년 끝난 한국전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정전상태로 남아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한국전의 완전 종식을 위한 평화협정은 필요하다고 봅니까?
란코프: 1953년 이후 한반도에 정전협정이 지금까지 60년 이상 유지돼온 현실을 감안할 때 평화 협정 문제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 협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한에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들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남북 분단이란 현실입니다. 대체로 말하면, 평화 협정은 주권 국가 당사국간에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북한은 남조선을 독립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고, 남한 역시 북조선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참된 평화 협정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물론 극복할 수 있는 장애물도 있지만 남북 서로가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평화 협정을 이룩하기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북한은 1974년부터 미국에 대해 평화협정의 체결을 끈질기게 요구해왔습니다. 이어 북한은 작년 10월 노동당 창건일을 앞두고도 평화협정 체결을 제의했는데요. 그 목적은 무엇일까요?
란코프: 북한이 평화 협정을 주장하는 이유는 평화 협정을 통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평화 협정 논의를 미국하고만 하자고 고집하고 있는데 이는 남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정책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북한은 평화 협정을 논의할 때 남한을 동등한 참가 국가로 인정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자: 북한이 제의한 평화협정은 1953년 발표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건데요. 북한은 정전협정 하에서도 그간 정전협정을 많이 위반하지 않았습니까? 북한이 정전협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데 과연 평화협정이 성사돼도 지킬 수 있을까요?
란코프: 평화 협정이든 정전 협정이든 별 다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협정은 둘 다 참가 국가들이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어야 실현이 가능합니다. 북한이든 다른 참가 국가이든 이러한 약속을 진실로 지키려는 마음이 없다면, 어떠한 협정도 가치가 없는 종이조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자: 그런 점에서 평화협정 논의가 시작되려면 먼저 남북한 화해교류, 나아가 군사적인 신뢰구축이 먼저 이뤄져야 하지 않을가요?
란코프: 물론 그렇습니다. 저는 평화 협정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평화 협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회담을 가져야 하고, 이러한 회담을 통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협정은 목적인데 그 목적으로 가는 과정이 가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군사적 신뢰 문제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북한이나 한미 양국이 군사 훈련을 할 때, 사전에 서로 군사 훈련의 성격과 규모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면 상대국에 대한 우려감이 많이 사라지고 군사 훈련을 침략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는 근거가 많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런 식의 군사적 신뢰구축의 필요성은 유럽에서 1970년대부터 존재했습니다. 그 결과 냉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는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많이 감소하였습니다.
기자: 북한은 현재 평화협정 체결의 상대로 미국을 주장하는데요. 당사국인 한국을 배제하려는 까닭은 뭘까요?
란코프: 북한이 남한을 배제하려는 명분은 남한이 정전 협정에 참가하지 않은 국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우스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한은 한국 전쟁에 직접 참전한 나라입니다. 사실상 한국 전쟁은 김일성 북한 정권이 남한에 대한 침략을 감행하면서 시작된 전쟁입니다. 그러니까 남한은 직접 당사국입니다. 따라서 북한은 평화협정에서 남한을 배제하고, 한미 동맹을 파괴시킨 후, 한반도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한이 오래 전부터 꿔 온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미미한 경제력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꿈은 근거가 없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북한 집권 계층은 이러한 환상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 평화협정 체결되면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예상됩니까? 주한미군은 당연히 철수해야겠죠? 또한 한반도 핵우산도 철거 대상인가요?
란코프: 물론 평화 협정 시, 북한 측은 미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북한이 아니라 남한 국민들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북한은 세습 독재 국가입니다. 북한에선 권력자의 마음대로 나라의 정치를 하루 아침에도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한은 민주 국가입니다. 국민들이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는 정책을 결정하는 세력입니다. 10~15년 전, 남한에서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도 미군 철수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은 남한 전체 인구의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이러한 목소리들은 2000년대 초보다 더 작아졌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뀔 수도 있지만, 현 단계에서 남한 사람 대부분은 미군 철수를 많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평화 협정이 체결된다 할지라도 이 같은 인식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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