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 순서에서도 김정은 체제 들어서 북한경제가 직면한 이런 저런 문제점에 관해 북한 경제 전문가인 브래들리 뱁슨 씨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날 북한의 진짜 인민경제는 장마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이 혹시 이런 장마당 식 시장경제를 발전시켜 중국 식 경제개혁 모델을 채택하진 않을까요?
뱁슨: 꼭 그렇진 않습니다. 북한은 오히려 북한 식으로 갈 것 같습니다. 북한은 중국 식 경제개혁보다는 베트남 식을 더 본받을 것 같은데요. 왜냐하면 북한은 베트남처럼 소규모 경제를 가졌기 때문인데요. 중국은 한마디로 너무나 큰 경제라 북한처럼 작은 경제를 가진 나라엔 중국 모델이 잘 들어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국의 변두리에 있는 나라이면서 중국의 성장 모델을 본받아 성공한 베트남과 몽골이 북한 경제엔 더 적합합니다. 베트남과 몽골은 경제 개혁을 하면서도 당이 정치제제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북한은 비무장 지대 너머로 남한이 있고, 한국전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나라여서 상황이 좀 다르긴 합니다. 따라서 북한이 어떤 경제 모델을 추구하던 그건 북한 식이 될 겁니다.
기자: 문제는 김정은 정권이 과연 이런 시장화를 어느 정도까지나 허용할 것이냐 하는 점 아니겠습니까?
뱁슨: 북한이 직면한 기본적인 고민은 앞으로 이 나라의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이 어떤 식으로 발전해나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북한이 구축한 경제체제는 평양의 엘리트층의 충성으로 유지돼온 일종의 '후원조직'에 상당히 의존하는 체제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최고 집권층은 돈이 생기면 이걸 엘리트층에 분배해서 집권층은 물론 체제에 대한 충성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거나 교역을 해서 개인적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이들의 돈은 엘리트층처럼 충성심 대가로 위에서 돈을 받은 게 아니라 직접 자기들이 번 것입니다.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돈을 벌어 갖게 되는 경제적 힘은 북한 체제의 작동원리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정치경제학이 시장으로 이동하게 되면 북한 집권층도 주민 경제의 힘이 계속 굴러갈 수 있어야 하고 결국은 민간 경제가 각 사람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대안이란 점을 인정하게 돼 통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데요. 바로 여기에 북한 정권의 진짜 고민이 있지만 해결 방법을 찾은 것 같지 않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사실 북한에선 일반 주민을 위한 인민 경제 말고도 특권층을 위한 궁정경제가 존재해 많은 폐단을 낳았지 않았습니까?
뱁슨: 맞습니다. 장성택은 김 씨 일가와 평양의 엘리트를 위한 궁정경제를 이끌던 핵심 인물이었죠. 아마도 지난 몇 년 동안 장성택은 바로 이 같은 궁정경제를 통해 특권층이 외화를 벌어들이고 호사스런 생활을 유지하며, 애국심을 유지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죠. 그래서 장성택은 일반경제를 관리하는 내각과도 경쟁을 벌였는데 한 예로 그가 주도해 만든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은 내각의 통제 밖에 있었습니다. 즉 이런 기업은 북한의 일반경제 체제 밖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도록 고안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장성택은 경제전반에 대한 운영과 관련해 내각의 역할을 약화시켰습니다. 장성택은 자기 파의 사람들을 심어서 외화획득을 전담했지만 내각은 이런 행위를 보다 정상적인 체제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최고 권력층과 너무도 가까웠던 장성택이 경제 자원을 주무르다 보니 경제관리에 혼란을 초래했고, 내각의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기자: 그런 점에서 앞으로 북한 경제가 정상을 되찾으려면 내각이 인민경제를 제대로 이끌어가야 하겠네요?
뱁슨: 그렇죠. 문제는 내각이 경제관리를 개선하고 외국투자 등의 업무를 처리할 때 앞으로 종전보다 더 많은 권위와 지지를 확보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죠. 만일 김정은 정권이 그런 힘을 내각에 위임한다면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과거처럼 특정 그룹이 생겨나 그런 일을 떠맡는다면 상황은 예전으로 되돌아갈 겁니다. 또 하나 문제는 장성택을 공개 처형한 게 향후 경제개혁과 관련해 위험을 감수하려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는 점인데요. 만일 누군가 무슨 경제 조치를 주도하다 다른 사람이 잘 못됐다고 비판한다면 그 사람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고, 이는 경제 모험가들의 사기를 꺾는 일이죠. 그런 점에서 북한에서 새로운 기술관료 그룹이 등장해 경제개혁과 옳은 경제관리를 을 위해 과감히 모험을 택할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장성택의 퇴장이 좋으냐 나쁘냐는 숙청에 따른 영향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자: 궁정경제가 퇴색할 경우 북한 경제가 진짜 인민을 위한 경제로 새롭게 탈바꿈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요?
뱁슨: 제가 볼 때도 좋은 기회입니다. 지금은 북한이 과거 해보지 못한 경제 개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죠. 특히 금융분야가 그렇습니다. 북한에선 물가나 실업문제 등을 다루는 거시경제 관리가 안 돼 있는 건 금융부문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은행도 없으니 주민들이 은행구좌도 없고, 그나마 구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가 받은 사람은 극히 일부입니다. 그러니 금융부문에 대한 감독도 없고, 경제자료도 있을 리 없습니다. 북한 같은 나라에서 통화정책을 운용한다는 게 아주 어려운 거죠. 따라서 지금 북한은 시장경제를 운용하고 자금 흐름을 관리하기 위해서도 금융부문부터 조치를 취해야 하고, 그래서 통계자료도 얻고 인플레, 즉 물가인상 문제 같은 경제문제를 다루기 위한 거시경제 도구도 만들어야 합니다.
기자: 북한 당국이 혹시 이런 거시경제 같은 금융분야를 몰라서 조치를 취하지 못한 건 아닐까요? 뱁슨: 북한은 과거 여러 이유를 들어 이런 조치를 취하길 꺼려했는데 제가 보기에도 북한 당국이 이런 문제에 무지해서 그렇다고 봅니다. 과거 김정일과 측근들은 시장경제에서 화폐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몰랐다고 봅니다. 그나마 해외에서 시장경제와 재정분야를 공부한 소수의 사람들은 귀국해도 폭넓은 권한을 위임받지 못했을 겁니다. 따라서 이제 장성택이 제거됨으로써 이들은 북한 경제개혁과 관련한 문제들에 관해 좀 더 개방적으로 나와 의견을 개진해야 하는 데 문제는 과연 이들이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제가 볼 때 금융분야, 금융통계, 거시경제관리 등에 대한 북한 당국의 무관심이 북한 경제전반에 대한 접근에 있어 거대한 공백으로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기자: 그렇군요. 결국 북한 경제가 장마당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화 불씨를 살리고 더욱 개혁적으로 나가기 위해선 김정은의 지지도 중요하지만 박봉주처럼 개혁적인 사람들이 각 경제 부문에서 적극 나서는 게 중요하겠군요?
뱁슨: 그렇습니다. 중요한 점은 40대의 좀 더 젊은 기술관료들이 등장해 김정은의 정치적 지지를 받으며 북한의 경제 변화를 선도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죠. 제가 볼 때 세상 소식도 알고 동기부여가 있는 젊은 기술관료들은 과거보다는 미래 지향적이라 새로운 방식을 내놓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지도층에게서 격려와 지지를 받을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죠.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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