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에서 장마당을 통한 시장화 얘기가 나온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데요. 요즘 들어 북한에서 부쩍 시장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주민들 80% 정도가 시장을 통해 경제활동을 한다는 게 남한 통일부의 추산인데요. 이 같은 시장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란코프: 1990년대 초 북한의 경제상황을 감안한다면, 시장화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북한에서 시장화는 대안이 없었던 말입니다. 사실상 북한식 국가사회주의는 1970년대부터 해마다 심각해지는 침체에 빠졌습니다. 그래도 1990년대부터 북한 정부는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국가에서 많은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1990년대초까지도 다른 사회주의 국가는 원조를 줄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싼 값에 물건을 팔았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되었습니다. 소련이 대북 지원정책을 실시했던 이유는 미국과의 대립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련은 중국과도 사이가 좋지 않아서 북한이 중국 쪽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대북지원을 많이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이후에는 이와 같은 정책을 실시할 까닭이 없어졌습니다. 소련의 원조를 받지 못하게 된 북한 경제는 사실상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배급시대는 끝났고, 공급이 불가능한 시대가 막이 올랐습니다.
기자: 바로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택할 수밖에 없던 생존방법이 바로 장마당이었군요?
란코프: 맞아요.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북한의 경제가 살아남는 방법은 시장화 밖에 없었습니다. 북한 시장화의 특징은 자발적으로 일궈진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북한 정부가 주민들에게 식량과 기본 수요품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장화마저 차단했더라면, 북한에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좋든 싫든 시장경제는 당연한 경제형식입니다. 북한의 주민들은 1990년대 시장경제를 사실상 재발견하였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기자: 시장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북한 같은 나라는 국가의 통제력이 약화될 텐데 시장화를 허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란코프: 제가 벌써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북한 정부는 선택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김일성 시대처럼 시장화를 많이 통제했더라면, 북한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시작된 고난의 행군은 보다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때, 60만명이 굶어 죽었다고 추정됩니다. 북한 주민들이 만일 국가의 배급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 즉 장마당을 통해 기본적인 식량이라도 받지 못했더라면 네 배에서 다섯 배나 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북한의 지배계층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고난의 행군 때 시장화를 사실상 묵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당시 김일성 시대의 고급 간부들은 원래 받던 배급 때문에 시장화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시장화는 반동적인 현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김정일과 그의 측근 대부분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주민들의 생명줄이 된 시장을 사실상 허용하였습니다.
기자: 이런 시장화가 특히 김정은 정권 들어서 심화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란코프: 김정은 정권의 정책은 시장화를 조용하게 격려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인 김일성은 시장을 거의 없애버리고 그나마 남아 있는 시장을 엄격하게 통제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김정일은 시장화를 이따금씩 지원하였지만, 수 많은 경우 시장에 대해 지속적인 단속과 탄압 정책을 실시한 적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정일 정권은 장마당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김정은은 그렇지 않습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된 지 3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볼 때 그 동안 시장에 대한 단속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자: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란코프: 물론 김정은의 마음을 아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말하면 김정은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보다 시장 경제에 대해 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김일성은 공산주의의 환상을 굳게 믿었습니다. 김정일은 공산주의의 환상을 별로 믿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교육 때문에 시장경제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정은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해외에서 많이 살았고, 자신의 경험으로 시장경제의 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시장경제는 반동적인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에게 시장경제는 정상적인 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김정은은 사상문제 때문에 시장화를 방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바로 시장경제의 발전이 나라의 경제를 살려주는 방법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시장을 단속하는 정책을 실시할 이유가 없고, 사실상 시장화를 많이 독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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