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을 만병통치약으로 보는 게 문제

지난 2월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제3차 지하 핵실험의 성공을 축하하는 '평양군민연환대회'가 열렸다.
지난 2월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제3차 지하 핵실험의 성공을 축하하는 '평양군민연환대회'가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0:00 / 0:00

기자: 안녕하세요.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선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국가로 기능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약속 위반 및 신뢰 회복 문제와 관련해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David Straub) 씨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은 흔히 대외 전략을 추구하는 데 있어 이른바 '벼랑끝(brinkmanship) 전술을 선호하는 경향입니다. 즉 군사 도발행위 등으로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은 뒤 막판에 타협을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북한이 '벼랑끝 전술'을 가장 많이 활용한 분야가 바로 핵 문제 아닙니까? 그 의도를 뭐라고 봅니까?

스트라우브: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즉 북한은 지난 20여년 간 핵 협상을 하는 기간 내내 핵 프로그램의 일정 부분은 계속 유지할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죠. 북한의 최근 행동을 봐도 그렇고 지난 20여년간 해온 행태를 다시 분석해봐도 그렇습니다. 북한은 현재 자신들이 아주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이웃인 남한은 경제적으로, 정치 외교적으로 아주 성공한 나라입니다. 반면 북한은 이 모든 분야에서 실패한 나라이죠. 제가 볼 때 북한은 현재 아주 어려운 처지 속에서 핵 장치와 장거리 마사일 프로그램을 만병통치약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한반도에서 전략적 장기판을 다시 짜려는 수단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즉 북한은 미국을 위협해 핵을 제거하겠다는 구실로 대북제재를 해제하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재가 풀리면 경제를 살리면서 다른 한편으론 한국과 미국은 물론 한국인들끼리 분열시키는 남남분열전술을 쓰는 겁니다. 다시 말해 경제도 살리면서 남남갈등과 한미 갈등을 조장하겠다는 것인데 이건 북한 측 입장에서 보면 잘 들어맞는 논리죠. 하지만 현실 세계의 관점, 특히 미국과 한국이 어떻게 나올지를 감안한다면 이런 북한의 전술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기자: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해 한편에선 미국을 위협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정권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스트라우브: 제가 볼 땐 양쪽 다 들어맞습니다. 북한은 현재 사정이 너무 어렵다 보니 국내외적으로 양쪽 다 활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죠. 즉 미국을 위협해서 대북제제를 해제하길 바라고, 그래서 제제가 풀어지면 경제도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제재가 아니라는 점이죠. 제재가 경제발전의 걸림돌이긴 하지만 실은 북한의 경제, 정치 제도 때문에 국제 투자자들이 북한에 오길 꺼려하는 겁니다. 이 점을 북한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북한은 단순히 제재가 풀리면 경제도 성장하고, 핵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데 이는 착각입니다.

기자: 사실 북한이 제재 해제를 통해 경제를 살리고 싶어하지만 지금처럼 핵 포기하지 않는 한 국제사회에서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 경제회생도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 아닙니까?

스트라우브: 맞습니다.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이죠.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을 이용하기로 하고 상당 기간, 심지어는 1~2년까지 강하게 버티면 결국 미국과 한국이 겁을 먹고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용인"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인도를 핵 무기국으로 용인하고, 역시 핵무기를 가진 파키스탄과 전략적 관계까지 맺었듯이 말입니다. 미국과 한국은 앞으로도 결코 북한을 핵 무기국으로 용인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북한이 계속 핵무기를 추구하는 한 고립과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입니다. 북한은 결국에 가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그런 생각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북한이 절망에 빠진 나머지 되지도 않는 꿈만 꾸는 거죠. 북한은 인도도 파키스탄도 아닙니다. 동북아시아는 남아시아가 아닙니다. 상황적으로도 지역적으로, 또한 미국의 이해관계 측면에서도 두 지역은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을 핵 무기국으로 결코 용납하지도 않을 것이며 북한이 설령 제한적인 핵 프로그램을 갖는다고 해도 관계정상화를 꾀하지 않을 겁니다.

기자: 북한이 최초 핵개발 움직임을 보인 게 20년 전인데요. 만일 그때 북한이 일찌감치 핵을 포기하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관계를 개선했다면 지금쯤 훌륭한 경제성장국으로 변해있었겠지요?

스트라우브: 가능하다고 봅니다. 북한이 진정으로 핵을 포기하고 중국식 경제개혁을 채택했다면 북한의 정치, 경제적 발전은 분명 중국의 궤적을 따랐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핵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만일 북한이 중국식 경제개혁을 채택했을 경우 북한은 상당히 외국에 개방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는 점입니다. 그 경우 북한 지도부가 주민들에게 지난 70년 간 해온 엄청난 거짓말이 있기 때문에 모르긴 해도 북한정권의 전복 혹은 교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그런 점에서 북한 지도부는 개방에 따른 위험을 인지하거나 이미 인지했다고 봅니다. 북한이 지난 20여년간 추구한 행동이 이를 방증합니다.

기자: 북한이 설령 핵무기를 포기해도 중국식 개방 노선을 채택하는 건 별개의 문제 아닌가요?

스트라우브: 그렇죠.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했다면 미국도 이에 상응해 상당 부분 제재를 완화했을 겁니다. 또한 미국은 북한과 대사를 교환하고 외교관계를 맺었겠죠. 설령 그런 상황이 온다 해도 미국과 북한 관계는 그다지 친밀하진 않았을 겁니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문제 때문이죠. 미국은 당시 만일 북한이 핵을 포기했더라면 아마도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고 제재를 완화하며 경제원조를 제공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선 북한이 중국식 경제개방을 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일이 훨씬 쉬웠을 겁니다. 허나 그 경우에도 개방에 따른 북한 주민의 욕구와 기대를 어떻게 관리해나갈지도 문젭니다. 주민들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거짓말을 해왔고, 남한이 얼마나 성공한지를 알게 되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지요.

기자: 북한의 신뢰성 문제를 살펴봤으면 합니다. 북한은 핵 협정을 맺고도 번번히 파기해 빈축을 샀고, 특히 지난해 2월 하순 북한이 미국의 식량지원을 대가로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고 핵, 미사일 실험을 유예하기로 합의했지만 두 달 뒤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해서 이 합의도 깨지 않았습니까? 그런 점에서 미국 측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신뢰성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스트라우브: 이미 말씀 드린 대로 북한은 핵무기를 국내외 문제를 모두 치료할 수 있는 일종의 만병통치약으로 봅니다. 그래서 북한은 핵무기를 정권생존의 문제로 보는 겁니다. 북한에겐 아주 중대한 일이죠. 북한은 앞으로도 핵 능력을 증대할 수 있도록 협상에서 계속 거짓말하고 오도할 태세가 돼 있는 겁니다. 돌아보면 북한은 지난 20~30여년간 작심하고 그런 행동을 했다고 봅니다. 북한은 핵개발에 관한 한 거짓말로 드러난 게 한 두 건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북한은 제네바 기본합의문을 포함해 지킨 약속도 많다는 겁니다. 북한이 상당기간 비교적 작은 협정을 지킨 것은 사실입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북한도 부수적인 약속은 늘 깨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적어도 핵 프로그램을 지속하고 유지하는 일에 관한 한 계속 거짓말을 해왔습니다. 이건 자신들에게 본질적인 사안이었기 때문이죠. 즉 북한은 자신들이 지켜도 될만한 것만 지킨 것이죠.

기자: 북한이 이처럼 핵 합의를 하고도 지키지 않았다면 미국도 북한과 협상하면서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겠죠?

스트라우브: 그런 지적에 동의합니다. 지난 20여년간 미국 관리들은 북한과 핵 협상을 하면서 많은 경험과 기술을 숙지했기 때문에 지금은 북한이 자국의 이익을 어떻게 보는지, 북한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더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미국 관리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도가 없다는 걸 압니다. 또 북한이 설령 합의를 한다 해도 지킬 의도가 없다는 점도 압니다. 미국은 지금 북한에 별로 신뢰가 없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과 합의를 하면 아주 철저한 검증체제가 중요합니다. 북한은 철저한 검증체제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현재로선 북한과 어떤 협정을 맺어도 과연 검증이 가능한지조차 상상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북한이 그토록 오래 영변 지역에서 농축 우라늄 활동을 해왔어도 미국은 이를 감시할 능력이 없지 않습니까? 해커 박사 같은 분은 북한이 영변 외 지역에서도 농축 우라늄 시설을 갖고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언젠가 미국과 북한이 핵 협정을 맺는다 해도 그런 협정이 지켜진다고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무척 힘들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오늘 시간에선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신뢰성 문제를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씨로부터 들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