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 순서에서는 북한의 농업개혁 문제 등에 관해 농업개발 분야 전문가인 랜들 아이리슨(Randal Ireson)박사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아이리슨 박사는 1998년부터 2007년까지 비영리단체인 '미국친구봉사위원회'(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가 주도하는 대북 농업개발 계획의 조정관을 지냈고,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북한의 농업실태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로 꼽힙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정은 제1비서가 신년사에서 농업분야를 유독 강조한 뒤 지난 2월 초 평양에선 '전국 농업부문 분조장 대회'가 열려 비상한 관심을 모았는데요. 우선 당시 회의를 평가해주시죠?
아이리슨: 이런 회의가 열렸다는 건 뭔가 중요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걸 시사하는데요. 당시 회의에선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그런 점에서 농업정책도 뭔가 달라질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에 논의된 변화 사항 가운데 주목할 만한 점은 협동농장의 분조관리제에서 분조원을 줄이고, 분조에게 일정한 농지를 할당해서 경작 책임을 맡긴다는 겁니다. 북한에서 이걸 포전담당제라고 하는 데요. 이는 과거 중앙통제 형태로 돼 있는 협동농장제가 다소 완화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포전담당제로 넘어가면 분조원들이 좀 더 자율성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또 한가지 눈 여겨 볼 것은 수확 할당량과 국가에 어떤 곡물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 등등 종전의 규칙에서 벗어나 분조원들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더 많은 인센티브, 즉 동기부여를 주는 해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김정은 제1비서가 이번 회의에 참석해서 "분배에서 평균주의는 사회주의 분배원칙과 인연이 없다"고 지적했는데, 이 말은 작업 계획이나 임금이라든가 생산량 등과 관련해 똑 같은 분배를 강조하는 건 의무 사항이 아니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분조가 더 많은 생산량을 확보하면 자기들이 소비하고 남는 건 시장으로 가져갈 수 있는 양도 많다는 겁니다.
기자: 방금 포전담당제를 언급하셨는데요. 포전, 그러니까 일정한 면적의 논밭을 농민 3~5명에게 맡긴 뒤 생산물에 대한 처분권을 줘서 생산의욕을 높이자는 것 아닙니까? 북한에선 농촌의 최말단 근로공동체 조직으로 지금까지는 분조 형태로 이끌어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2012년 6월 '새경제관리체계'를 선언하면서 농업부문 개혁과 관련해 10~25명 정도의 분조 인원을 작게는 2명, 많게는 6명 규모로 줄이는 가족단위인 포전담당제를 황해도 재령군 삼지강협동농장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한 적이 있는데요. 이걸 다시 도입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이리슨: 그 이유를 저도 알 리가 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과거 북한은 다른 시기에 이번과 같은 포전담당제를 도입한 적이 있지요. 즉 분조원을 줄이고 분조에 할당된 생산량 가운데 초과 생산물을 장마당에 내다팔 수 있도록 한 조치를 말하지요. 어떤 경우 이 같은 방침은 일부 지역에 한정해 시행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엔 도 지역의 마을 단위에서 시작해 점차 확대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침은 단기간 시행돼다 갑자기 중단됐습니다. 이런 제도가 일정 기간 시행되면서 북한 당국은 이게 국가의 식량배분 정책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폐지한 것이지요.
기자: 사실 이번 분조장 대회를 열게 된 이유도 포전담당제의 성과적인 정착을 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은 제1비서까지 나서 참가자들에게 포전담당제의 시행을 강조했다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과거 폐지됐던 포전담당제가 이번 전국 분조장 대회를 계기로 다시 도입됐다는 게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요.
아이리슨: 그렇습니다. 이번 회의가 과거와 다른 점은 포전담당제가 전국의 분조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정은 제1비서뿐 아니라 고위 관리들의 분명한 지원을 받으면서 확정됐다는 점입니다. 과거 이 같은 제도가 특정 지역에서 아주 조심스럽고도 제한적인 방식으로 시행됐다면 이번 회의에서 나온 결과를 보면 북한 최고위층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포전담당제가 이제부턴 전국적으로 시행될 것임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건 구조적으로도 과거완 아주 다른 양상입니다.
기자: 말씀하신 대로 이번 분조장 대회엔 박봉주 총리를 비롯해 당, 정부, 군부의 주요 인사들이 모조리 참석했습니다. 그만큼 포전제 확대를 위해 북한 정부가 전면에 나선 느낌을 주는데요. 과연 이 같은 포전담당제를 확대하면 북한이 식량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봅니까?
아이리슨: 분명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북한이 그러기 위해선 몇 가지 풀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은 생산 구조부터 개조해야 하는데요. 그런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생산력을 증대하기 위해 과연 해당 농장이나 분조 관리원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농사자원을 다 확보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비료라든가 좋은 종자가 그것이죠. 여기에 더해 농업의 기계화도 중요합니다. 아다시피 북한의 농업기계화는 대부분 천리마 트랙터, 즉 뜨락또르에 국한돼 있습니다. 지난 5~10년간 북한에 소규모 트랙터가 도입되긴 했지만 그 수가 모든 사람들이 활용하긴 충분치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협농농장들도 여러 분조팀과 트랙터를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상황에선 땅을 갈거나 농사준비를 할 때 농기계를 모든 사람이 공평한 사용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됩니다. 논밭을 경작할 때도 그렇지만 추수기 때는 특히 문제가 있습니다. 쌀이며 밀, 옥수수 등은 대규모 수확이 필요한 작물인데요. 이런 작물을 수확하려면 기계를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문제가 따릅니다.
기자: 말씀을 들어보면 과거엔 협동농장들이 주가 돼서 농기계 사용 같은 것도 지시를 했는데 이제부턴 포전담당제의 분조원들이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군요?
아이리슨: 지적하신 대로 지금의 차이점은 이렇습니다. 즉 포전담당제에 속한 분조원들이 이젠 자기들의 생산활동에 대해 협동농장 간부들의 행정지시에 따르기 보다는 직접 더 많은 책임을 맡는다는 겁니다. 나아가 협동농장들이 비료라든가 디젤 기름, 종자 등을 할당받게 되면 보통은 충분치가 않아서 이걸 포전담당제의 분조원들과 공동으로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게 아주 어려운 도전이죠. 하지만 포전담당제의 현실은 다릅니다. 만일 이들 분조원들이 내년에 초과 생산물을 거둬서 이윤을 얻게 되면 이걸 장마당에 내다 팔아서 더 많은 비료를 살 수가 있기 때문이죠. 물론 지금은 이런 일을 할 순 없습니다. 그런 시장이 없기 때문이죠. 비료만 하더라도 이건 국가에서 지급되는 것이지 장마당에선 볼 수 없습니다.
기자: 혹시 북한이 당국차원에서 비료나 농기계 같은 것들도 장마당에서 파고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요?
아이리슨: 글쎄요. 북한의 국가 시책이 바뀔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만일 포전담당제의 분조원들이 초과 생산물을 거둬서 이걸 팔아 남은 돈으로 이를 테면 디젤 연료로 모는 바퀴가 두 개인 소규모 트랙터를 구입해 경작하는 데 활용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겁니다. 물론 지금은 그런 트랙터 같은 농업용 소형 기계제품들을 살 수 있는 시장이 없지요. 이번 전국 분조장 대회에서도 생산력을 증대하기 위해선 산업, 화학 공장들에서 농업기계나 비료들을 더 많이 만들어 공급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가 많았습니다. 만일 이런 일만 가능하다면 농업 생산력이 크게 증대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뭔가를 만들어낼 순 없는 일이니까요.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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