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식량난 완전 극복 아직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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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서는 북한의 식량문제와 관련해 북한 농업전문가인 랜들 아이리슨(Randall Ireson) 박사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아이리슨 박사는 1998년부터 2007년까지 비영리단체인 '미국친구봉사위원회'(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가 주도하는 대북 농업개발 계획의 조정관을 지냈고,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북한의 농업실태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로 꼽힙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의 식량문제를 얘기하자면 우선 1990년대 북한 역사상 최대의 대기근을 꼽지 않을 수 없는데요. 당시 대기근의 원인을 뭐라고 봅니까?

아이리슨: 1990년대 북한의 식량위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식량 위기가 가장 심했죠. 나중에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완전히 식량위기를 회복하진 못했습니다. 제가 볼 때 식량난을 일으킨 주된 원인은 구소련에서 연료와 비료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공산권에서 서구식 농법에 따라 농사를 했는데 그건 품질이 좋은 농사 자원을 투입해서 다수확을 거두는 화학농법 모델입니다. 이게 1960년대, 1970년대 다수확을 안겨준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의 핵심이죠. 그런데 이런 농법이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많은 연료뿐 아니라 농사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북한의 농법도 그런 식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농사에 필요한 연료와 비료 등을 대부분 구소련과 중국 등에서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구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의 대북 정책이 바뀌면서 연료와 비료 수입이 단기간에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농사에 필요한 연료도 비료도 없었죠. 이후 북한은 수입선을 다시 개척하고 외국의 지원을 받는 한편 유기농법으로의 전환을 통해 예전만큼의 연료와 비료를 필요하지 않게 됐습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지난 10~15년 북한 농법은 아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뤄졌는데요. 이 기간에 식량생산도 점차 늘기 시작했고, 특히 지난 5년간 비료 투입량은 일정한데도 식량생산은 늘었습니다.

기자: 지난해 북한은 풍년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만큼 식량사정이 좋아졌다는 뜻인데요. 혹시 북한이 식량난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봅니까?

아이리슨: 북한의 식량사정이 개선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취약합니다. 과거에도 경험했지만 북한의 식량 작황은 언제든 뚝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비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거나 병충해로 인한 피해가 생긴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주 취약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식량상황은 안정적이거나 만족할 상황이라기 보다는 개선되고 있다 정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난번 분조장 대회에서 나온 포전담당제 확대와 같은 정책에 힘입어서 식량 생산성이 계속 개선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기자: 김정은은 지금 권력 공고화 막바지 단계에 와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인민을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면 자신의 정통성 확립에도 차질을 줄 것이란 지적도 나옵니다. 혹시 이런 불안감 때문에 김정은이 유독 식량 문제의 중요성을 환기시킨 것은 아닐까요?

아이리슨: 사실 그 문제를 논의하기엔 정보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복리 혹은 국민의 정치적 지지를 의식하는 정부치고 식량 문제에 신경 안 쓰는 정부는 없습니다. 사실 이번에 나온 포전담당제는 북한 정책당국자들이 다년간 논의해온 것인데 하필 왜 이 시점에 이 문제가 제기됐는지 저로선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조치는 긍정적인 것입니다. 이 제도가 왜 6개월 전에 실시되지 않았고, 왜 내년이 아닌 지금 실시되고 있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한가지 긍정적인 차원에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이 조치가 시기적으로 올 연초에 나왔다는 점입니다. 결정이 일찌감치 나온 덕분에 포전담당제 분조원들이나 협동농장에서 실천하기에 딱 알맞은 시점이란 것이죠.

기자: 그렇다면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는 말씀인가요?

아이리슨: 그렇죠. 과거 북한 당국이 농사 부문에 어떤 정책 변화를 마련하면 결정 시점이 농사하는 시점과 제대로 맞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책 변화나 결정이 6월이나 7월처럼 한 해의 중간쯤에 나왔는데 그 때쯤이면 이미 모든 작물을 심었을 때입니다. 농사와 관련한 결정 사항들도 이미 농사가 끝난 다음에 나오기 일쑤였죠. 다시 말해 정책 변화가 발표되어도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이죠. 작물에 비료도 주고 싹도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결정을 시행해도 농작물 수확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곤 이듬해에 가선 결정사항을 반영해도 작황엔 별 차이가 없다고 투덜대고, 똑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올해의 경우 포전담당제와 관련한 결정 사항이 연초에 명확하게 나왔다는 점은 시기적으로 아주 적절했고, 농민들도 이에 반응할 시간이 충분합니다.

기자: 북한에서 지금 실시 중인 포전담당제를 포함한 일련의 농업 조치가 과연 식량증산을 가져올 수 있는 농업 개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아이리슨: 그건 저도 정말 모릅니다. 앞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개혁'이란 말을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개혁'이란 말이 북한에선 정치적으로 민감한 용어이기 때문이지요. 북한은 '개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서구적 용어라는 말이죠. 즉 바깥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한다,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제가 볼 때도 북한의 정치, 경제 체제엔 바꿔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바꾸면 산업 분야와 농업, 그밖에 다른 분야에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죠. 이 정도 조치는 기존의 정치, 경제체제를 완전히 뒤바꾸는 걸 필요로 하진 않습니다. 몇 가지 규칙을 바꿀 필요는 있죠. 그렇다고 북한 정권을 바꿔야 하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시장 활동의 확대를 위해 환경을 바꿔야 할까요? 그건 맞습니다. 분권화의 핵심 요소가 시장 환경을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분권화 구조에선 포전담당제 분조원들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도 있고, 그에 따라 초과 생산물을 처분할지 여부와 관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죠.

기자: 포전담당제에 따라 자율권을 준다면 북한 당국 입장에서 보면 국가로 귀속되는 할당량이 적으니 꺼려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리슨: 북한 당국이 포전담당제 사람들에게 할당량을 부과하지도 말고 이들이 생산한 작물을 환수하지 말라는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우린 이런 걸 세금이라고 하는데요. 세금은 전적으로 합법적인 것이죠. 북한 사회에선 세금이란 말 대신에 이를 산업 혹은 정부, 군사 부문 일꾼들에 대한 국가의 배급을 위해 연간 할당량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북한 당국이 일정량의 곡물을 환수하는 일은 전적으로 합법적입니다. 하지만 당국이 포전담당제 분조원에 대해 일정량만 납부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이는 진짜로 생산량을 증대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셈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장비와 작물투입 요소를 활용해 생산성을 늘리려 할 겁니다. 일종의 자본화 과정인데요. 물론 농사 장비를 구비하고 훌륭한 토질에 비료라든가 종자의 확보, 나아가 망가진 장비를 보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지금 같은 북한 농업체제에선 완전한 해결이 의문시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기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