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경제사업소에 자율권 더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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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서는 김정일 제1비서의 경제 정책과 관련해 북한 농업문제 전문가인 랜들 아이리슨 박사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아이리슨 박사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미국친구봉사위원회의 북한 농업계획 조정관을 지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정은 제1비서가 3년 전 취임 후 농업 부문에 관해 역점을 두고 개선책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2012년 6월28일 시장경제적 요소가 담긴 조치를 취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걸 보면 김 비서가 적어도 경제 문제엔 관심이 있다고 봐야죠?

아이리슨: 김정은이 경제 '개선'에 관심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경제 '개혁'에 관심 있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우린 알 수 없습니다. 개혁이란 말은 여러 가지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기에 북한 사정에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6.28 경제개선조치를 말씀하셨는데 실은 그 내용이 연초 농업 분조장 대회에서 나온 것과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차이점은 많습니다. 우선 6.28 경제개선조치는 결코 광범위하게 실시되지 않았습니다. 일부 시범지역에서만 실시됐고, 얼마나 오랫동안 실시됐는지도 알 길이 없습니다. 또한 6.28 조치에선 국가7, 개인 3이란 비율로 생산물을 배분한다고 했지만 이번 분조장 대회에선 구체적 배분비율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김정은이 보낸 서한엔 구체적 배율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기자: 6.28 조치에 따르면 국가대 개인의 분배 비율을 7:3으로 정해서 개별 농민에게 좀더 많은 인센티브, 즉 동기부여를 하는 것으로 돼 있지 않습니까?

아이리슨: 맞습니다. 그런데 당시 조치에서 언급된 배분비율이 이번 포전담당제와 관련해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김정은이 포전 담당제 분조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구체적인 분배율에 관한 내용이 없습니다. 분배율을 신중히 정해야 한다고만 나와 있을 뿐입니다.

기자: 북한이 이처럼 식량증산을 위해 포전 담당제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실은 이웃인 경제 강국 남한과 협력해 비료라든가 농기계 등을 조달받을 수 있다면 식량난을 언제든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리슨: 당연히 남한과 협력할 여지가 있죠. 과거엔 그랬습니다. 지금도 제한적이긴 해도 아주 소규모로 남북한 경제협력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이런 남북협력은 전반적인 정치적 분위기와 맞물려 부침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현재 남북한 정치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향후 남북간 경제협력의 여지는 분명 있습니다. 남한에는 북한 상황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아주 동등한 협력관계에서 북한을 돕고 싶어합니다. 북한에도 남한의 비정부 기구나 단체들과 일해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과 남한은 물론 국제사회와도 협력할 여지는 분명 많습니다. 미국과 유럽 연합의 비정부 기구들을 통해서도 말입니다.

기자: 북한이 이처럼 만성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는 데는 아무래도 북한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와도 연결돼 있을 것 같은데요?

아이리슨: 앞서 말씀 드렸지만 1990년대 북한이 식량위기를 겪고 경제가 무너진 까닭은 외부세계로부터 다른 무엇보다도 석유 연료 공급이 갑자기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북한은 국내 전력생산을 위해 석탄 이나 수력 자원은 있습니다. 하지만 트럭이나 농기구 등에 필요한 연료의 경우 북한 국내에 석유 공급선이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외부에서 수입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비료도 석유화학이나 천연가스에서 만듭니다. 따라서 구소련의 갑작스런 붕괴와 중국의 경제정책 변화로 인해 북한의 대외 교역환경이 변하면서 더 이상 구소련 경제권이나 중국한테서 석유를 수입할 수게 없게 됐습니다. 오늘날 현대 국가들 대부분의 경제는 에너지 집중 산업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캐나다 등 서구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죠. 이런 나라들에서 에너지에 의존한 산업이 많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북한은 구소련에서 보조 방식으로 에너지를 지원받았기 때문에 무료로 제공받거나 아주 낮은 가격으로 제공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용자인 북한은 그런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기자: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아이리슨: 한가지 예를 들어보죠. 천리마 트랙터를 봅시다. 아무리 작은 트랙터라도 작업을 하려면 아주 많은 기름을 먹습니다. 북한의 구식 트랙터는 현대식 트랙터에 비해 기름을 4배나 더 먹습니다. 오늘날에도 실정은 비슷합니다. 에너지 효율이 아주 안 좋습니다. 당시 북한은 불과 4~5년 동안 에너지 수입량의 70%를 잃었습니다. 그런 상태론 어느 나라도 생존할 수 없습니다. 에너지 공급원 상실이 북한에겐 그만큼 상당한 충격이었죠. 여기엔 중앙경제든 시장경제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정도 에너지 공급이 끊기면 경제 위기가 초래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이 당시 에너지 위기를 겪은 뒤 더욱 우려한 점이 바로 에너지 효율성이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북한 농업부문의 연구자들과 일하던 때에 있던 일인데요. 이들이 쌀과 옥수수 신품종을 개발할 때 곡물이 잘 자라면서도 비료는 예전만큼 많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곡물 생산에 효율성을 가미한 결과입니다. 같은 곡물 량을 생산하면서도 비료는 절반만 사용한 것이죠. 다시 말해 과거처럼 분뇨 같은 자연퇴비가 아닌 대단히 현대적인 퇴비라고 할 수 있는 생물학적 비료를 더 많이 사용하되 생산량을 늘린 겁니다.

기자: 북한은 지난해 대풍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늘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북한이 풍년을 거뒀다는 게 놀랍지 않습니까?

아이리슨: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품종을 개량하고 복합비료와 생물학 비료를 더 많이 활용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날씨도 좋았습니다. 적기에 비가 적절히 내렸습니다. 과거 같은 가뭄도 없었죠. 확실하진 않지만 농민들에 대한 인센티브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 겁니다. 6.28조치는 일부 지역에선 여전히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북한이 풍년을 이룩한 데는 어느 한 가지 요소가 아닌 이처럼 다양한 요소가 작용한 겁니다.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해마다 북한의 식량난을 덜어주기 위해 대규모로 식량을 지원해오지 않았습니까?

아이리슨: 맞습니다. 아직도 북한을 위해 세계식량계획은 아직도 지원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지금은 소규모이고 훨씬 특정 부문에 국한돼 있습니다. 지난해 북한이 풍년을 거뒀다고 했는데 잘 생각해보면 여전히 곡물 생산량은 최소 필요량보다 훨씬 못 미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략 4~5만 톤 가량이 부족합니다. 북한 정부가 볼 때 이 정도 부족분은 굳이 국내에서 생산할 게 아니라 수입하면 됩니다. 하지만 기준이 되는 건 세계식량계획이 정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보급률인데요. 그건 건강한 영양을 위해 필요한 식단도 아니고 다양한 단백질이 포함된 식단도 아닙니다. 북한이 작년에 풍년을 거둔 곡물은 북한 주민들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양일뿐 다른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물론 과거보다 나아진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적정량엔 아직 멀었습니다.

기자: 그런 점에서 김정일의 경제 고문이라면 어떤 충고를 하겠습니까?

아이리슨: 여러 가지가 있지만 두 가지만 말씀 드리면 이렇습니다. 하나는 경제 문제와 관한 결정을 일선 사업소로 분산시키라는 겁니다. 북한 경제 전반을 위해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단일 화폐교환 제도를 확보하라는 겁니다. 즉 북한의 원화가 북한 내 다른 나라 화폐에 비해 어떤 값을 가져야 하는지 등등 말입니다. 그럴 경우 북한의 정치제도를 위협하지 않고도 산업과 농업에 종사하는 북한의 생산업자들에게도 대외 교역과 관련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런 일이 정착되면 언젠가는 개별 생산업자들도 분산된 권력 덕분에 국가가 제공하는 자원 없이도 독자적으로 투자할 수 있고 생산물에 대한 결정도 내릴 수 있을 겁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