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제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최근 북한 뉴스를 보면 유달리 숙청에 대한 보도가 많아 충격을 던졌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북한 당국이 지난 5월 초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반혁명 분자로 몰아서 공개처형한 사건입니다. 그 원인을 두고 여러 관측과 소문이 돌고 있는데요. 일부에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부를 다스리기 위한 공포정치를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또 이런 식의 공개처형은 북한 역사에서 전례가 거의 없는 잔인한 숙청 방식이라고도 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란코프: 솔직히 말해서 그런 의견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김정일 시대 보다 고급 간부들이나 장성급 군인들을 겨냥한 숙청이 많이 일어난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장성택 사건, 이영호 사건, 현영철 사건 등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와 같은 정치를 '공포 정치'로 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숙청과 테러의 대상자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에서 숙청된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인민군이나 보위부에서 힘과 인기가 많았던 사람들입니다. 바꿔 말해서 숙청된 사람들은 별도 달았고, 총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제 일꾼들을 보면 숙청당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평범한 북한 주민들의 경우도 김정일 시대 보다 정치범으로 체포될 가능성이 많이 높아지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앞으로 이런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만, 현 단계에서 테러 정치의 기본 대상은 북한 군대와 보위부 사람들입니다. 가끔 노동당과 외교부에서도 숙청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숙청은 아직은 제한적입니다.
기자: 김정은이 유독 인민군 장성들을 겨냥해 숙청을 왜 하고 있다고 봅니까?
란코프: 제가 볼 때는 김정은 정권이 쿠데타 정변이 발발할 가능성을 심각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김정은과 그 측근들은 분명히 인민군을 믿지 않습니다. 인민군은 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사시 김정은 정권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김정은 정권이 인민군을 믿지 않는 증상이 많습니다. 가장 최근의 현영철 숙청뿐 만 아니라 다른 징조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김정은 시대에 인민 무력 부장이든, 총 참모장이든 이들의 평균적인 임기가 많이 짧아졌습니다. 김정일 시대에는 이런 고위직에 있는 사람은 평균 5년이나, 7년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 등장 후 사정은 달라졌습니다. 총 참모장이든 인민 무력 부장이든 매년 한, 두 번 정도 교체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인민 군대에서 총 정치국의 역할이 옛날보다 커졌다는 점입니다. 황병서나 최룡해와 같은 사람들은 인민군을 감시하고 있지만, 이들은 원래 군인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노동당 일꾼 출신들입니다. 다시 말해 숙청의 주대상이 인민군 장성임을 감안하면, 김정은 정권은 군인들의 쿠테타 가능성에 대해서 공포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자: 사실 김정일이 집권했을 때만 해도 군부의 쿠테타 같은 것들에 대한 공포심은 없었다고 봐야죠? 그런데 김정은 시대 들어서 이런 쿠테타 공포심이 생길 정도로 북한이 불안전한 나라가 되었을까요?
란코프: 글세요. 정확한 원인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대규모 숙청을 보면 지금 김정은 정권이 불안한 게 아니냐는 느낌도 주지만 실제론 불안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계 역사를 보면 공산주의 나라에서 고급 간부들이나 군인들을 많이 숙청한 독재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잔인한 숙청작업에도 불구하고 독재자들은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한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1930년대 말 소련 독재자인 스탈린도 군대를 겨냥한 공포 정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소련에서 소장 이상 계급을 갖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무려 3/4 정도가 숙청 때문에 처형되거나, 옥사했습니다. 스탈린이 당시에 이와 같은 공포 정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실권이 많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기자: 그러니까 스탈린이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있어 가능했다는 말이군요?
란코프: 맞아요. 스탈린은 예를 들어 사법기관, 경찰, 정보기관에 대해서 거의 절대적인 통제를 가졌습니다. 김정은도 비슷할 수 있습니다. 만일 김정은의 힘과 통제력이 많이 부족했더라면 인민군 장성들을 많이 죽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자: 그렇다면 지금 김정은은 스탈린 식의 공포정치를 감행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란코프: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스탈린 시대의 테러정치의 기본대상은 소수 고급군인이 공산당 일꾼보다 수많은 민중들이었습니다. 1937년 스탈린 정부는 60~70만명을 처형했습니다. 북한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북한에선 이런 대규모 숙청이 이뤄지진 않습니다.
기자: 최근 일본 산케이 신문보도에 따르면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원홍 국가보위부 부장 간에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두 사람이 김정은에 충성경쟁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까?
란코프: 제가 보니까 이것이 사실인지 여부 알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일본 언론보도를 조금 비판적으로 봐야 합니다. 북한 지도부, 내부 정치를 잘 아는 방법이 없습니다. 지난 20년간 보도를 보면 그런 보도는 대부분은 믿을 만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사실상 북한 내부정치, 북한 지도부의 정파 다툼에 대해 정확히 알 길이 없습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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