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대남관계 개선 기대 안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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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러시아 출신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남한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북한엔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지 3년이 흘렀지만 남북관계는 현재까진 별 진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최근엔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북한을 방문해 뭔가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가 트이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었는데요.

기자:란코프: 제가 보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희호 여사가 북한을 방문한 것은 참 좋은 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희호 여사의 방북만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북한이 이희호 여사의 방북을 관리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현 단계에서 남한과 관계 개선에 별 관심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희호 여사가 북한에 있었을 때 김정일 제1위원장과 만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김 위원장은 이희호 여사를 초대하였지만 사실상 간단한 이야기조차 나누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태도는 중요한 신호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현단계에서 북한은 남한과 관계를 개선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신호입니다. 문제는 북한측은 현 단계에서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중요한 과제로 보지 않습니다. 남한도 전혀 관심은 없지만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기자: 이처럼 남북관계가 지금처럼 경색된 원인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란코프: 쉽게 말하면 현 단계에서 남북 양측은 남북관계 개선을 시급한 과제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한도, 북한도 그렇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북한은 현재 개선된 식량 상황과 경제상황 때문에 과거보다 남한의 지원이 덜 필요하게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남한에서 보수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동안에는 북한이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조건으로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지금 남한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보수 정부가 아닙니까?

란코프: 바로 그 때문에 북한은 좋은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남한에서도 북한 관계개선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많이 가라 앉은 것 같습니다. 15년 전 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엔 사람들이 남북관계 개선에 지나치게 큰 희망을 걸었습니다. 이것은 2000년대 초 얘기입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비교적 단시간 안에 민족분단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한도 북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남한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반대하진 않지만 중요한 정치과제로 여기진 않는 것 같습니다.

기자: 사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남북간에는 몇 차례 대화도 있었고, 최고급 대화제의도 있었지만 별 진전을 보지 못했고 오히려 성명전을 통한 비난이 오갈 정도로 악화일로인데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해주시죠.

란코프: 남한이 북한에 대한 태도는 빨리 변화하고 있습니다. 남한 주민들의 태도가 그렇습니다. 10~15년 전 남한 사람들은 북한과 회담, 협력을 통해서 남북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통일이 무조건 좋은 일이라 가능한 한 빨리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생각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1990년대말보다 많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한 국민들 대부분은 예전과 그대로 통일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하루빨리 이뤄야 할 시급한 과제라곤 이제 생각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년 동안 남한이 일방적으로 식량이나 다른 지원을 제공한 형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남한은 주기만 하고 북한은 받기만 했습니다. 남한 사람들 가운데 그대로 일반적인 지원을 지속하는 것은 돈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게 올바른 태도는 아니라고 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감안하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바람직하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많은 투자를 할 의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과거처럼 너무 많은 지원을 일방적으로 북한에 제공할 의사가 없는 것 같습니다.

기자: 사실 남북관계가 이처럼 악화된 데는 북한도 책임이 큰데요. 김정은 정권이 3년전 출범한 이후 혹시 대남정책이나 기조는 무엇이고,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란코프: 김정일 시대 대남정책의 기본목적은 남측의 지원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1990년대부터 북한은 군사압력 아니면 무모한 외교를 동원해 남측으로부터 대규모 지원을 받아내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햇볕정책, 별 조건이 없는 원조는 북한 국가수입의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습니다. 남한 원조가 없었더라면 북한은 2000년대초 기근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는 다릅니다. 김정일 시대의 경우 북한은 외국 지원 없이는 살기가 어려웠지만 지금 김정은 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곡물 수확량도 좋았고, 소비 상황도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물론 북한이 지금도 살기 어려운 나라이긴 하지만 옛날보다 덜 어렵게 삽니다.

기자: 그러니까 남한이 주면 좋지만 안 주어도 상관없다는 느긋한 태도란 말이죠?

란코프: 그렇습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좋다는 태도입니다. 남한이 지원을 해주면 좋지만 안 주어도 괜찮다는 태도입니다. 동시에 북한은 남한과의 가까운 접촉을 신경 쓰고 문제를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한 관계가 활발해지면 북한 주민들이 잘 사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 개선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않기 때문에 북한은 남북관계 정상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