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안녕하세요.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선 북한 경제문제 전문가인 루디거 프랭크 (Rudiger Frank)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 교수로부터 근래 북한 사회의 변화 문제에 관해 들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지난해 9월, 그리고 지난 5월 북한을 각각 방문하셨는데요. 우선 두 번의 방문을 통해 느끼신 점이나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프랭크: 북한은 상당 기간 변화를 해왔다고 봅니다. 북한은 1990년대 후반 대기근이 몰아 닥친 뒤 경제 개선의 길로 나갔고, 그로 인해 북한 사회에도 불가피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제가 두 번의 방북을 통해 받은 인상은 최근 변화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고, 어떤 면에선 더 성숙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상거래는 전보다 세련됐으며, 특히 평양에는 레스토랑이나 상점 등 소비자 지향적인 상거래가 더욱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또한 북한에 중산층이 성장하면서 사회에 미치는 효과가 훨씬 눈에 띈다는 점이죠. 그런 모습은 사람들이 입는 옷이나 가지고 다니는 기술제품 등을 통해서도 느낄 수도 있지만 몸짓이나 자신감 같은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또 김정은 정권에서 이념과 선전 분야에서도 차이점을 느꼈습니다.
기자: 지금 말씀을 들어보면 김정은이 지배하는 북한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맞습니까?
프랭크: 원칙적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방북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변화들은 김정은이 정권을 잡기 이전에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는 어떤 면에선 선친 김정일이 시작한 것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새로운 차원에서 김정은 때문에 뭔가 됐다는 눈에 띄는 변화의 영향은 아직 없습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그렇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김정은이 시도한 게 있다면 그건 이념 분야의 조정일 겁니다. 쉽게 말해 김일성과 김정일 사상을 합해 좀 더 느슨한 형태로 만든 것인데요. 김정일은 생전에 자신이 김일성 사상의 최고 추종자라서 스스로를 김일성과 같은 수준으로 취급하지 않도록 했죠. 하지만 김정은은 다릅니다. 그는 지금 김정일을 김일성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차이가 없도록 말입니다. 김일성 사상과 나란히 김정일 사상을 늘어놓고, 두 사람의 동상을 똑같이 만수대 의사당에 세운 게 그렇죠. 크기도 같고, 구호도 같습니다. 그런 구호들은 대부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 동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돼 있습니다. 즉 두 사람을 같은 수준으로 취급합니다.
기자: 그렇다면 어떤 측면에선 김정은의 지도 아래에서 경제 개혁이 이뤄지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표면적 변화일 뿐입니까?
프랭크: 아직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김정은이 하고 있는 것은 그냥 경제개혁을 방해하지도 않고, 개인 경제활동이나 상업활동을 방해하지도 않는 겁니다. 또한 무역이나 투자 등 대외경제활동을 장려하긴 하지만 아직까진 그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한 중대한 조치를 취하진 않았습니다. 제가 볼 때 김정은은 경제개선 조치를 취하고 싶어하지만 좀 더 적절한 여건이 마련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자: '적절한 여건'이라고 하셨는데 그게 뭔지 설명해주시죠?
프랭크: 그건 여러 가지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국내 정치적 안정과 안전입니다. 이를테면 사회주의 경제를 개혁하려는 그 어느 독재자라도 하나의 커다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일단 개혁을 하면 역동적인 변화가 생기고 멈출 수도 없다는 점이지요. 그게 김정은이 직면할 위험입니다. 그래서 모든 걸 확실히 통제하려면 아주 확실한 권력이 있어야 합니다. 김정은은 아직 젊고 경험도 미숙합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의 사망은 너무도 갑작스레 찾아왔기에 김정은은 무엇보다 북한의 단일지도체제를 장악해야 하는 데 이게 실은 복잡하고 엄청난 과제입니다. 김정은은 아직 그런 과정에 있습니다.
기자: 그런 국내적 위험 요인 말고 외부의 위험 요인도 있겠죠?
프랭크: 맞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위험도 있습니다. 북한은 주변에 우호적인 나라들만 둘러싸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를테면 남한은 통일에 관심이 있고, 일본과 미국은 북한의 체제를 혐오합니다. 중국도 한반도에 아주 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죠. 따라서 이를 테면 개혁이 실패했을 때 북한이 보인 약점은 불가피하게 외부 세력들에 의해 이용당하게 될 겁니다. 따라서 김정은은 개혁을 시도하기 앞서 외세의 개입으로부터 안전을 담보해야 합니다.
기자: 방금 국내적, 그리고 외부적 위험 요인을 지적해주셨는데요. 이런 위험 요인을 극복하더라도 경제개혁을 하게 되면 그 자체로도 많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지 않습니까?
프랭크: 그렇습니다. 순전히 경제적인 요인 때문이지요. 북한은 시장경제라기 보다는 아직 국가의 통제를 받는 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 경제는 진정한 의미의 시장경제가 아니라 '연줄 경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에서 경제개혁을 한다는 것은 기존의 경제 체계를 어느 정도까지 파괴하는 걸 의미합니다. 북한의 경제체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그런대로 안정적이었습니다. 만일 새로운 경제체계를 수립하기 위해 기존의 체계를 파괴한다면 일정 기간은 생산성 저하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걸 경제적으로 U-곡선이라고 하는데요. 무슨 말이냐 하면 생산이 증대하기 앞서 일단 떨어지는 걸 말합니다. 바로 그런 U- 곡선효과에 대처하려면 엄청난 자금을 비축한다든가 대외 지원을 확보하는 등의 대비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야 개혁이 비교적 단기간 안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볼 때 김정은이 하고 있는 게 바로 이겁니다.
기자: 그렇군요. 하지만 김정은이 이런 여건이 다 갖춰지더라도 정말 위험을 무릎 쓰고 진정한 경제개혁을 할 수 있다고 봅니까?
프랭크: 제가 볼 때 그건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김정은이 다른 선택방안은 없다는 겁니다. 만일 그가 개혁을 안 하면 실패할 겁니다. 북한 사회는 이미 지난 10~15년전에 바뀌었습니다. 이는 마치 큰 바위가 언덕을 굴러 내려오는 것과 같습니다. 이 돌은 계속 굴러가고 있고, 내려가는 속도가 느릴 수도 있지만 멈출 순 없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다른 많은 나라에서 경험한 게 바로 이겁니다. 사회분야는 물론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죠. 예를 들어 한 나라가 화폐경제화되면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젠 정치적 자본이 아니라 경제적 수단으로 얻으려 합니다. 사람들도 이런 과정을 이해하고 적응하게 됩니다. 전형적인 인간의 특성상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더 많은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휴대전화를 생각해봅시다. 이런 게 없던 시절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일단 이것을 늘 사용하게 되면 없어선 안될 뿐 아니라 더 좋은 것을 바라게 되죠. 똑 같은 일이 북한에도 생기고 있습니다.
기자: 그렇다면 김위원장 앞에 놓여있는 선택은 어떤 것입니까?
프랭크: 김정은은 기본적으로 두 개의 선택이 있습니다. 즉 경제개혁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형제국 중국처럼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쪽으로 상황을 조성해 개혁을 하든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한 채 모든 걸 무시하고 실패의 길을 걸었던 동유럽의 독재자들처럼 사라지는 겁니다. 물론 구소련의 고르바초프처럼 모든 걸 다 이해하고도 실수를 저질러 개인으로서 실패하는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김정은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그가 처한 상황은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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