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은 북한의 경제개혁 문제에 관해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의 루디거 프랭크 교수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최근 러시아의 소리 방송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한에선 국영기업과 사기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이 벌어진다면서 예를 들어 자금력이 있는 기업투자가는 수출품을 사들인 뒤 이를 정부기관의 이름으로 해외무역을 해서 돈을 벌고 이익의 일부는 국고에 넣거나 관료들에게 배분한다는 겁니다. 특히 탄광이나 금광을 경영하는 투자가들이 돈을 꽤 많이 벌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게 사실이라면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 북한에 시장경제가 확산되는 기류가 아닐까요?
프랭크: 반드시 그렇진 않습니다. 제가 볼 때는 북한과 같은 경직된 체제에 많이 나타날 수 있는 연고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즉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누가 버느냐면 그런 기회에 접근이 가능한 사람이죠. 과거 옐친 시대 러시아에 자본주의가 성행했을 때 그랬습니다. 물론 그건 시장경제라기 보다는 대부분 통제된 경제였죠. 전 북한의 경우 경공업 분야의 소규모 사업엔 그런대로 낙관적인 생각이 들지만 광물을 팔아서 금새 많은 돈을 번다는 식의 보도엔 회의적입니다. 북한 경제는 시장경제라기 보다는 연줄에 기반한 경제에 가깝습니다.
기자: 연줄에 기반한 경제라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에서 외양상 시장경제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진정한 개혁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죠?
프랭크: 맞습니다. 어떤 면에선 북한 경제는 변화를 겪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돌파구를 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성숙해지면 중요한 진전을 볼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런 변화가 올 가을에 일어날 수 있을지 여부는 북한의 내부 여건에 달려 있는데, 우린 그 부분을 거의 알지 못합니다. 아직 우리가 잘 모르는 게 북한 지도부 내부의 동향인데요. 다시 말해 김정은 혼자 모든 걸 주도하고 있는지 아니면 측근과 함께 하는 것인지, 나아가 권력층이 경제개혁을 할 경우 패자로 남을 수도 있다는 우려해 이를 막으려 하는지 우린 모릅니다. 경제개혁이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설득하는 게 중요한 데 이런 정치적 기술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언제, 어떤 식으로 북한이 중요한 경제 개혁에 나설지 알 수 없는 겁니다.
기자: 김정은 위원장이 실무경제관료인 박봉주를 지난 4월 경제를 총괄할 총리로 올 봄에 임명했는데요. 박 총리는 지난 2002년 발표된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주도했고, 2003년 9월엔 내각 총리에 오를 정도로 북한에선 개혁의 상징인물입니다. 그러다 2007년 경제개혁을 추진하다 당과 군부와 마찰을 일으켜 실각했다가 지난해 경공업 부장으로 복권한 뒤 마침내 다시 총리를 맡았는데요. 이걸 보면 북한 김정은 정권이 박봉주 총리를 통해 경제개혁에 가속도를 내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프랭크: 아직은 잘 모릅니다. 김 위원장이 박봉주를 총리로 임명한 것은 분명 더 능력이 있고 경제를 잘 꾸려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랬는지 모릅니다. 아니면 일이 잘 못되면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경제개혁이 잘 못되면 박 총리는 희생양이 될 겁니다. 우린 추측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결과를 놓고 보면 아직은 그가 한 게 많지는 않습니다. 한 가지 제가 놀라운 점은 북한의 공장 간부들이 일꾼들에게 개별적으로 임금을 지불할 수 있도록 허용을 받은 일입니다. 이런 일이 지난 4월, 5월 시작됐는데요. 이게 사실이라면 상당한 조치입니다. 그 경우 북한에도 노동시장의 창출이 눈 앞에 펼쳐지기 때문이죠. 사회주의 나라에선 이런 노동시장이 없습니다.
기자: 방금 서구 시장주의 개념인 '노동시장'을 말씀하셨는데요. 쉽게 말해 노동시장이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노동력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시장 아닙니까? 쉽게 말해 상품가치가 높은, 즉 해당 분야에 맞는 기술과 효율성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고, 또 그런 직장으로 몰리게 되는 데요. 해방 후 북한의 사회구조를 보면 이런 노동시장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는데요. 만일 이런 서구식 '노동시장'이 북한에서 활성화되면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프랭크: 그렇습니다. 노동시장의 창출이 사실이라면 공장끼리 능률이 높은 일꾼을 차지하려고 경쟁을 할 것이고, 그러면 이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공장을 고르려 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란 국가가 약화될 뿐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더 높은 임금을 줄 수 있는 공장과 그렇지 않는 공장을 나누는 양극화 현상을 가져올 겁니다. 또한 이를 통해 공장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게 됩니다. 나아가 파산하는 공장도 나올 겁니다. 왜냐하면 이윤을 남기지 못하면 일꾼에게 높은 임금을 줄 수 없는데, 그 경우 가장 효율이 떨어지고 능력이 부족한 일꾼만 남게 됩니다. 그런 공장은 내리막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는 데요. 과연 북한 정부가 이런 공장을 구해줄지 아니면 파산하도록 내버려둘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여러 의문이 많지만 북한에서 노동시장이 창출된다면 광범위하고도 의미 있는 조치가 될 겁니다. 이런 일이 박봉주 총리 밑에서 일어난 것인데요. 과연 이게 박 총리가 계획한 것인지 아니면 그 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기자: 북한은 지난해 6월 이른바 '6.28 조치'를 통해 나름대로 경제 개혁을 시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골자는 협동농장에서 생산한 초과 생산량을 농장원이 공산당과 3:7의 비율에 따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중소 규모의 공장 기업소에선 독립채산제와 월급제를 채택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이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프랭크: 북한의 6.28조치는 공식적으로 발표되진 않았습니다. 몇 가지 얘기는 들리는 데요. 제가 듣기론 북한이 자강도와 양강도에서 이를 시범적으로 시행했다는데요. 두 지역은 북한에선 그다지 중요한, 또 의미있는 경제 지역이 아닙니다. 당시 경제계획이 시범적인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집행이 됐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평가를 내리기가 조심스럽습니다. 한가지 걱정스러웠던 건 농업개혁의 요소들이 아주 강한 것인데요. 제가 볼 때 북한이 나갈 방향은 농업개혁이 아닙니다. 오히려 산업 분야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북한이 치중할 개혁인 산업입니다.
기자: 6.28 조치가 공개적으로 발표되진 않았다 해도 최소한 이런 조치들이 내부적으로 나온 것으로 보아 김정은이 경제개혁엔 관심이 있다고 봅니까?
프랭크: 당연합니다. 안 그럴 수 있겠습니까? 김정은은 권좌에 오르자마자 '인민생활향상'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인민의 생활향상'이란 구호는 어디나 내걸렸습니다. 이게 전혀 새로운 구호는 아니었지만 김정은은 이를 아주 많이 강조했습니다. 김정은은 젊은 사람이라 변화를 일구고 싶어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현재의 정체를 원치 않지요. 김정은은 권력을 가졌으니 뭔가 변화를 추구하고 싶을 겁니다.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 군도 북한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데요. 저는 그가 진짜 그런 말을 했다고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왕자로 태어났기에 부자가 되는 일엔 관심이 없습니다. 이미 부자인데다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과는 다릅니다. 그들에게 돈은 가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오히려 존중받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칭송받고 싶어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런 사람들은 개혁에 관심은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그들이 개혁을 제대로 맞게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김정은이 경제개혁을 하고 싶어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가 경제 개혁을 해낼 능력이 있는지 여부는 잘 모릅니다.
기자: 만일 김정은이 경제개혁에 관심이 있다면 진정한 걸림돌은 무엇일까요?
프랭크: 여러 가지 많습니다. 우선 외적인 장애물로 경제 제재가 있습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너무 힘이 세지고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남한이 경제개혁에 따른 취약점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지금과 같은 현상유지를 통해 더 많은 혜택을 즐기는 사람들이 개혁에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경제 체제가 변하면 가장 잃을 게 많은 사람들입니다. 또 과거 동구권의 몰락을 보면서 경제개혁을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도 반대할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순전히 경제적인 문제점도 많습니다. 개발도상국들을 보면 다들 부유한 나라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지만 이루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필요한 자원이나 기술이 없어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점들이 북한에도 적용됩니다. 한마디로 거대한 과제이죠.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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