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선 북한의 경제 개혁문제와 관련해 북한 경제전문가인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의 루디거 프랭크(Rudiger Frank) 교수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요즘 김정은 제1비서가 집권 3년 차를 맞이해 경제 발전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특히 김 비서는 근래 주민들의 삶과 직결돼 있는 경공업 분야에 대한 시찰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원산 구두공장을 시찰했고 그에 앞서 6월엔 평양기초식품공장을, 또 4월엔 평안북도의 대관유리공장을 시찰하기도 했습니다. 우선 김정은의 이런 행보를 어떻게 봅니까?
프랭크: 제가 보기엔 간단한 일입니다. 김정은은 정상적인 선거 과정을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북한 체제의 독재자란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권력을 장악했고, 현재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후계자와 관련해 자신이 선택된 게 옳다는 점을 계속 입증해왔습니다. 이런 일은 두 가지 방법으로 가능한데요. 하나는 이념적 수단을 통해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겁니다. 김정은은 젊어서 한국전이든 항일투쟁이든 나가 싸워본 일이 없지요. 따라서 그에겐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어진 방법은 거의 없지요. 그나마 김정은이 유일하게 자신이 권력을 이어받게 된 정통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자신의 지도력 아래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일입니다. 김정은이 지금 주민생활 개선전략을 추구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기자: 그러니까 김정은이 경제개선을 강조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이런 말이죠?
프랭크: 바로 그렇습니다. 김정은은 평범한 아이로 태어나 북한의 지도자가 된 조부 김일성과 달리 이미 태어날 때부터 김일성의 손자이자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특권층 자제였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일찌감치 자녀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가부장적 분위기를 익혔습니다. 그래서 김정은도 "내가 이 나라의 어버이니만큼 주민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 느끼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김정은이 경제개선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정통성을 확립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럴 수도 있고, 장차 북한의 지도자로 태어난 사람으로 인민들에게 좋은 어버이가 돼야 한다는 감정적인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기자: 하지만 경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돈도 필요하고, 개방을 해서 외국자본을 들여와야 하고, 또 북한 같은 경우 군대로 집중된 자원을 전용해야 하는 등 여러 문제가 따르지 않습니까?
프랭크: 김정은은 핵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병진노선 때문에 군대로 흘러가는 자원을 소비 경제부문으로 전용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 병진노선은 단순히 구호가 아니라 김정은이 진짜 성취하고 싶은 목표입니다. 김정은은 설령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돼도 그 때문에 나라를 자주적으로 방어할 능력이 사라지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그가 앞으로 나갈 길은 경제를 발전시켜서 경제와 국방 양쪽 모두 지탱하는 겁니다. 김정은은 핵실험과 로켓 실험 등을 통해 군사능력을 향상해가고 동시에 더 많은 소비자 제품을 만들고 수입도 늘리며 농업과 전력생산도 늘려서 주민들의 삶도 높이겠다는 겁니다.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이유 때문에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는 절박감이 있는 것이죠. 김정은은 경제분야뿐 아니라 군사 부문에서도 성공을 바랍니다.
기자: 그렇다면 김정은이 현 단계에서 경제를 성공시킬 수 있는 수단과 자원을 가졌다고 봅니까?
프랭크: 제가 보기에 김정은이 정말 경제적 성공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배우는 단계에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많은 사회주의 지도자들이나 독재자들에게 볼 수 있는 건데요. 이들은 자기 나라의 체제는 좋은데 시행이 문제라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처음엔 일단 체제가 굴러가도록 노력합니다. 행정 부서 단위들을 합치거나 새로 만들기 위해 행정절차를 개선하는 등 임시적인 개선책을 마련하지만 체제 자체는 건드리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단기적인 해결책은 내놓지만 장기적인 해결책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도 김정은처럼 젊은 지도자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5~6년 뒤엔 그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개선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인데요. 그래서 지금이 김정은으로선 흥미로운 순간이기도 합니다. 김정은은 개혁을 위해선 뭔가 상당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기자: 사실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경제를 성공시킬 수 있는 여건은 갖추고 있지 않나요?
프랭크: 그렇습니다. 북한에는 경제를 성공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풍부한 천연자원에다 잘 훈련된 인력이 있지요. 북한은 이미 산업화된 나라입니다. 모든 사람이 글을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습니다. 교육수준도 상당히 높습니다. 북한은 중국과 1천400km에 달하는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데요. 이런 사실 때문에 북한을 부러워하는 나라들이 아주 많습니다. 중국은 오늘날 세계 경제대국인데 북한이 이런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건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같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지금 필요한 건 이런 엄청난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는 올바른 체제와 개혁을 갖추는 겁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남한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처럼 북한도 대동강 기적을 이룩할 수 있지요. 과거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한국이 박정희, 전두환 정부 시절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처럼 북한도 그런 경제성공을 거둘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겁니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그런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해주는 사람이죠. 이런 일만 해준다면 북한도 남한처럼 경제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기자: 하지만 북한은 오늘날 핵과 장거리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로 인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을 당한 상태가 아닙니까? 이런 고립 속에서 과연 북한이 경제적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프랭크: 북한이 반드시 외부세계와 고립된 것은 아닙니다. 우선 이웃인 중국은 북한은 큰 우방입니다. 중국은 과거 미국이 박정희의 한국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북한이 성공해야 전략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됩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중국은 거대한 무역 상대국이죠. 중국은 돈과 기술, 시장이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박정희 시절 미국이 한국에 그랬던 것처럼 중국도 오늘날 북한에겐 미합중국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도 북한과 경제적인 관계를 다시 구축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지난 2001년만 해도 일본은 북한의 최대 무역국가였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하지만 2002년 일본인 납치 문제가 불거져 양국 관계가 뒤틀리면서 무역량이 거의 모두 줄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중국이 채웠습니다. 하지만 요즘 북한과 일본은 막후에서 회담을 진행해오고 있고, 근래엔 납치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에 양국이 합의한 상태입니다. 일본은 납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주 강력한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일본은 북한과 협력해서 북한의 원자재와 광산자원을 확보하고 싶어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북일 양국관계의 앞날을 저는 낙관적으로 봅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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