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미국과 신뢰회복부터 힘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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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 순서에서는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지낸 조셉 디트라니(Joseph DeTrani) 대사와 함께 북한의 행동양태와 관련해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신뢰도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은 10개월이 다 되도록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를 억류하고 있는데요. 배 씨는 지난해 11월 관광객을 인솔해 함경도 나진에 들어갔다가 길거리의 꽃제비를 촬영했다는 이유로 북한 당국에 의해 체포된 뒤 징역 15년의 노동 교화형을 받고 구금돼 있는데요. 최근 북한이 배 씨의 석방 가능성을 비추며 미국의 로버트 킹 북한인권담당대사를 초청했다가 막판에 취소해 많은 실망을 안겼지 않았습니까? 디트라니 대사는 북한의 전격적인 취소이유를 뭐라고 봅니까?

디트라니: 사실 킹 대사가 케네스 배 씨의 석방을 논의하기 위해 북한에 초청됐을 때 상당한 낙관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막판에 북한은 이를 취소해 당혹스럽고, 아주 실망스럽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북한 매체는 이번 취소가 한미 군사훈련과 관계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이건 매년 하는 훈련으로 컴퓨터 모의 훈련이 주를 이루는 것인데요. 북한이 아주 중요하고, 또 이미 예정돼 있던 킹 대사의 방북을 이런 이유로 취소한 것도 별로 놀랍진 않습니다. 막판에 어떤 이유로 취소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주 실망입니다.

기자: 일부에선 북한이 배 씨를 석방하고도 킹 대사를 통해 아무 것도 얻을 게 없기 때문에 그의 방북을 취소했다는 관측도 나오는데요. 그렇다고 봅니까?

디트라니: 정말이지 북한이 갑작스레 취소한 논리를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인도적 차원에서 케네스 배 씨의 석방을 논의하러 킹 대사가 북한에 갔다면 이건 북한과 미국 사이에 아주 긍정적인 사태발전이 됐을 것이고, 다른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서 양국의 신뢰를 증진하고 앞으로 더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었을 겁니다.

기자: 그렇군요. 북한은 몇 달 전 미국에 고위급 대화를 제안했다가 거부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점에서 북한은 혹시 킹 대사를 통해 배 씨를 풀어주는 대가로 고위급 대화의 재개 같은 것을 기대하진 않았을까요?

디트라니: 북한은 그런 식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주 불행한 일이죠. 아시겠지만 20년 이상 미국과 협상을 해봤으면 북한도 이런 식의 인도주의적 활동은 조건이 따라붙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겁니다. 우리가 만나면 아무런 조건이 없이 만나는 것이지요. 6자회담도 마찬가집니다. 케네스 배 씨의 경우도 조건이 따라붙으면 안 됩니다. 북한은 배 씨 문제를 조건부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20년 넘게 미국과 대화를 해봤으면 미국이 어떤 논의나 협상을 하는 데 있어 조건이 따라붙으면 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무조건적이어야 합니다.

기자: 최근 <아시아 타임스> 온라인에 기고하신 글을 보면 북한과 긴장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낙관적 근거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올해 초까지 북한이 저지른 호전적인 행동을 보고도 여전히 그런 생각이신가요?

디트라니: 추가로 핵실험이나 미사일 실험이 없다고 한다면 다행스런 사태발전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이런 추가 도발만 없다면 낙관적 근거는 있다고 봅니다. 현재 남북한 간에 개성공단 재개 문제라든가 공단 공동위원회 설치 문제, 개성공단의 국제화 문제, 이산가족 재회 문제, 비무장 지대 근처에 평화공원 조성과 같은 문제들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남북한이 신뢰를 구축할 수 있고, 북한이 미국 및 다른 나라들, 특히 중국, 일본과도 신뢰를 조성할 수 있는 긍정적인 신뢰구축 조처들입니다. 따라서 이런 길로 계속 간다면 배 씨도 석방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었죠. 우리가 킹 대사가 북한을 방문해 배 씨의 석방을 논의한다고 했을 때 고무된 것도 그 때문이었죠. 지금도 저는 사태를 낙관하지만 조심스럽긴 합니다. 과거 우린 북한에 기대를 걸었다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일이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기자: 북한은 근래 미국에 고위급 회담을 제의했는가 하면 남한에 대해선 개성공단 재개 문제, 금강산 재개 문제, 이산가족재회 문제 등 다각도로 회의를 제의하는 등 이른바 '미소 외교'를 펼치고 있는데요. 이걸 북한 외교가 근본적인 방향 전환으로 봐도 될까요?

디트라니: 글쎄요. 우린 이미 10년 이상 북한에게서 실망을 느껴왔습니다. 따라서 최근 북한의 행태들을 아는 사람들은 아마도 실망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른 생각입니다. 오히려 낙관적 생각을 갖게 됩니다. 평양에 김정은과 군부와 당, 국방위원회에서 그를 지지하는 새로운 지도부가 포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김정은이 남한과 미국 등과 현안을 해결하려고 다른 접근을 취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만일 현재의 집권자가 김정이라면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김정을을 중심으로 한 새 지도부는 뭔가 다를 것으로 봅니다. 물론 이건 저의 조심스런 낙관이죠. 과거 일이 잘 못 되면 우리의 낙관은 틀렸으니까요.

기자: 북한의 과거 행태를 보면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도 핵 실험이나 미사일 실험과 같은 호전적인 행동은 여전합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미소 외교'를 위장된 평화공세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디트라니: 제가 볼 땐 북한이 '미소외교'를 펼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그 중 하나는 북한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남한과 미국 및 다른 나라와 접촉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엔 특히 국제투자를 끌어들여서 북한이 궁극적으론 국제금융기관들과 상호 거래를 할 수 있는 합법적인 나라가 되도록 해야 하는 급선무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북한의 우방인 중국이 근래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핵실험을 못 마땅하게 생각을 해왔다는 점이지요. 다시 말해 중국 요인인데요. 중국은 지금이라도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서 북한의 핵포기와 그에 따른 정치, 경제적 혜택을 담은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실천해주길 바란다고 봅니다.

기자: 북한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해 4월 북한 최고의 직책을 차지한 뒤 선친과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 내외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를테면 부인 리설주를 공식으로 대동한다든가 모란봉 악단이 미국 음악을 연주한다든가 하는 것인데요. 그러면서도 김정은은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과 같은 호전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디트라니: 아주 어려운 질문입니다. 김정은은 권력에 오른지 1년 반 정도 됐기 때문에 그가 권력을 쥔 지도자임은 분명합니다. 물론 그는 그런 자리에 오르는 데 필요한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한 젊은이지만 분명 권력을 쥐고 있고, 또 중요한 몇 가지 인사결정도 내렸습니다. 그걸 보면 김정은은 자기 주위에 자신의 생각과 같이하는 사람을 두고 싶어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국내적으로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강력한 지도자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와 연관된 핵문제와 관련해선 지난 2월 핵실험이라든지 지난해 12월 미사일 실험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분명 실망스런 요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북한은 소위 미소 외교를 벌이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남한에게도 손을 뻗치고 있고, 다시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합니다. 비핵화에 대해서도 그러길 바랍니다. 궁극적으론 남북간의 정상적인 관계나 다른 문제들은 논의해서 풀어야 할 것이겠지만, 우린 지금 종전과는 다른 새로운 평양의 지도부와 상대하고 있다는 겁니다.

기자: 그런 점에서 김정은은 킹 대사의 방북을 취소함으로써 미국에 선의를 보여줄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까요?

디트라니: 동감입니다. 킹 대사의 방북을 막판에 취소한 것은 아주 불행한 일이죠. 북한이 다시 초청하길 바랍니니다. 그래서 킹 특사가 인도적 차원에서 배 씨의 석방을 논의했으면 합니다. 킹 대사의 초청 문제는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빨리 마무리돼서 북미 양국이 신뢰를 쌓았으면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몇 주, 몇 달이 아주 중요합니다.

기자: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