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1990년대부터 뇌물거래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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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이 언젠가부터 뇌물을 주면 사회 모든 분야에서 통하지 않는 게 없다며 '뇌물 천국' '뇌물 공화국'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에는 뇌물거래가 얼마나 퍼져 있다고 봅니까? 또한 구체적인 실례들이 있습니까?

란코프:부정부패, 뇌물 등은 학자들이 객관적으로 연구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물론 뇌물 규모를 보여주는 객관적인 통계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정부패 행위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방법은 경험자들을 토대로 조사를 실시하고, 뇌물을 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개인 경험과 인상을 바탕으로 하여, 여러 나라나, 시대에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각한지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은 북한뿐만 아니라 북한 보다 훨씬 더 열린 논리와 열린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유용한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세계에서 국가별 부정부패 수준을 측정하는 Transparency International 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그들의 연구 방법 역시 똑같습니다. 그들은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고 그들의 개인적 인상을 중심으로 하여, 어느 나라에서 뇌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 현상인지 판단합니다. 물론 그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지난 15년 동안 뇌물 공화국이 되었다고 해도 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 북한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은 사실상 뇌물을 주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장사꾼들뿐만 아니라 서민들도 뇌물을 많이 주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기자: 이런 뇌물 주고 받기가 최초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란코프: 북한에서 뇌물 및 부정부패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초부터입니다. 이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국가의 급속도로 어려워지는 경제 상황 때문에 주민들뿐만 아니라 간부들을 과거처럼 엄격하게 감시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1990년대 초부터 장마당 시대가 시작한 후에, 북한에서도 돈이 힘을 많이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시대에는 돈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돈 만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돈을 지불하고 좋은 집을 얻을 수도 없었고, 냉장고나 세탁기 역시 돈 만으로는 구매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국가가 준 배급, 공급을 받고 살았습니다.

기자: 그때까지만 해도 배급시대였죠.

란코프: 맞습니다. 당시는 김일성 시대였습니다. 그 때문에 뇌물로 받은 돈 역시 쓸모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 대신에 간부들은 위로부터 하달 받은 명령을 열심히 따르고, 그 대가로 추후 진급하기를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이것은 무조건 좋은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에 간부들은 자신의 야심으로 인해, 마치 나라를 죽이는 명령과 같은 명령도, 또 매우 어리석은 규칙이일지라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따라서 1990년대 초까지 북한 간부들은 뇌물을 많이 받을 필요는 없었고, 1990년대 들어와서야 부정부패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기자 : 오늘날 북한 일반 주민들은 장마당같은 비공식 경제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인데요. 혹히 이처럼 장마당이 늘어나면서 뇌물 거래도 늘어났다고 하는데요?

란코프: 옳은 말씀입니다. 제가 보니까 북한이라는 사회 자체에서는 뇌물이 거의 불가피하다는 모순이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장사를 하여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장마당이 없어진다면, 주민 대부분은 곧 굶어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 정부와 언론 및 규칙 등은 경제 기반이 된 장마당 즉, 개인 경제가 있다는 사실 조차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북한 정부는 아직까지도 장마당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란코프: 네. 공개적으로 말하지도 않고, 언론을 보면 장마당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개인경제란 말도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 주민 대부분이 20여 년 전 부터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해 온 거의 모든 경제 활동은 불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그렇죠. 당국이 인정하지 않는 것이니까 모두 '불법'이라고 할 수 있죠.

란코프: 따라서 어떻게 보면, 북한 사람 모두가 나라가 인정하지 않은 '불법 경제'인 장마당에 종사한 죄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누구나, 매일매일, 여러 번, 불법 행위를 하곤 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간부들의 뇌물을 요구 역시 매우 많습니다. 거의 모든 경제 행위가 불법이지만 간부들은 이와 같은 행동을 모른 척 해주는 대가로 뇌물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시장 경제를 합법화 한다고 해도 뇌물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 규모는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자 : 사실상 모든 북한 주민들, 장마당에 종사하는 모든 주민들이 다 죄인이라는 뜻인데요.

란코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마당에서 강냉이, 옥수수를 판매하는 게 불법 행위입니다. 1957년부터 그렇습니다. 다 불법입니다.

기자: 그래서 이렇게 뇌물이 성행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 같은 뇌물 거래가 김정은 시대 들어서 특히 활기를 띄었다고 볼 수 있는지요?

란코프: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보니까 김정은 시대가 시작했을 때부터 즉 1990년대초부터 뇌물거래가 커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뇌물거래는 김정은 시대에 일어난 일어난 갑작스런 변화는 아닙니다. 과거 김정일 시대의 막이 올랐을 때, 즉 20여 년 전부터 뇌물 거래의 규모가 커지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의 뇌물 거래는 1990년대 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2015년 현재는, 2000년대보다 더 심각합니다. 즉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부정부패가 이토록 점점 심해지는 이유는 장마당을 중심으로 한 개인 경제의 성장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이미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북한 경제는 개인 경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북한 경제에서 장사 즉 개인 경제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간부들이 뇌물을 요구할 때가 많습니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북한에서 숨겨져왔던 시장화가 많이 가속화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