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고 고갈되면 북 경제 큰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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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 순서에선 북한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뒤 달라진 경제 현황의 이모저모에 관해 북한 경제전문가인 루디거 프랭크(Rudiger Frank)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 교수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정은 제 1비서가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려고 이런 저런 경제개선 조치를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느 나라든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개혁도 필요하지만 특히 자본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프랭크: 그게 실은 제게도 커다란 의문입니다. 김정은이 취임한 후 벌인 모든 일에 많은 돈이 들어갔다는 점인데요. 취임 후 김정은은 주민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북한 곳곳에 새로운 건물이 많이 짓고 있는데 이게 다 주민들에게 삶의 형편이 나아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하는 겁니다. 문제는 이런 새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돈을 어디서 조달하느냐 하는 겁니다. 지금 가진 통계를 가지고 추산해볼 때 북한 경제는 성장하고 있지만 초고속 성장은 아니죠. 성장은 천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건물 신축과 관련해 무슨 돈으로 이런 특이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지가 정말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대외 거래와 관련해 북한은 유엔의 제재 때문에 어떤 외국 차관도 들여올 수 없습니다. 지금 북한의 수출은 물론 수입도 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수출을 통해 얻은 외화 만으로 지금 북한의 경제적 호황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에 충분한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북한 정권은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어 그 가운데 일부를 경제 건설을 위해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단 외환보유고가 고갈되면 나중엔 이런저런 경제적인 문제들을 일으킵니다.

기자: 방금 북한의 외환보유고를 언급하셨는데 추정치 같은 게 있습니까?

프랭크: 저도 알 길이 없습니다. 아마도 북한은 금괴를 갖고 있을 겁니다. 북한이 외환보유고 차원에서 금괴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고, 추정치라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문제는 그런 추정치조차 신뢰할 수 없다는 겁니다. 북한이 내놓은 수치는 거의 믿을 게 못 됩니다. 알 길은 없지만 북한이 중국에게서 경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중국도 모든 걸 다 공개하진 않습니다. 다른 나라론 러시아가 북한에 경제지원을 해줄 수도 있지요. 북한 정권은 경제적 형편이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도 매년 일정한 돈을 별도의 용도를 위해 보관해왔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별도의 돈이 외환보유고보다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북한의 외환보유고가 지금 아무리 많다 해도 지속적인 경제적 투자를 통해서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대안을 찾지 못하면 언젠가 외환보유고는 고갈되리라는 사실입니다.

기자: 김정은 정권의 외환보유고가 고갈되면 북한 경제에 많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어떤 문제를 예상해볼 수 있을까요?

프랭크: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게 붕괴 가능성이죠. 빌린 돈을 값을 수 없다면 경제는 정체하기 마련인데 그 경우 북한 정권이 정치적으로 생존하긴 힘들다고 봅니다. 이는 주민들 사이에 이미 기대감이 많이 생겼기 때문인데요. 지난해 북한이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주민들이 보다 밝은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됐습니다. 매달 지급되는 국가 배급도 좋아져 기대가 한껏 높아진 주민들은 더 많은 걸 기대하게 됐는데 그럴수록 국가가 이를 충족하긴 더욱 힘들어지게 됐다는 겁니다. 북한 주민들이 참담한 경제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던 1990년대와 지금은 다릅니다. 따라서 이런 난제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개혁뿐입니다. 북한 지도부는 외환보유고가 고갈되고 자신들이 지금까지 얻은 걸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순간 외환을 확보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할 것이고, 자연스레 개혁으로 성공한 중국을 처다 보게 될 겁니다. 북한이 중국을 그대로 답습하진 않겠지만 중국이 경제개혁을 위해 도입한 시장 요소들, 이를테면 경쟁이라든가 실질 화폐, 실질 물가, 북한 경제가 가진 잠재력을 발휘하기 위해 생산 단위에 대한 개인책임 강조 등을 도입할 것을 고려하리라 봅니다.

기자: 북한에선 올 연초에 김정은의 지시로 3~4명이 한 조가 돼서 경작에 나서는 '포전제'가 전국적으로 도입됐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이런 시도도 어떤 측면에선 경제 개혁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까?

프랭크: 글쎄요. 이런 시도를 보면서 저는 중국과 베트남의 이중경영 체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게 뭐냐 하면 기업들이 특정 상품을 낮은 가격으로 국가에 정해진 양을 조달하고 난 뒤엔 추가로 더 많은 상품을 만들어서 받고 싶은 가격에 주민들에게 파는 걸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중경영 체제는 한편으론 중앙경제적 요소가, 다른 한편으론 시장경제적 요소가 공존하는 셈이죠. 그런 점에서 북한이 이런 식의 방법을 농업에 도입한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실은 북한에서 나도는 이런 얘기가 지난 30년간 북한에서 있어왔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이 농업과 산업 분야의 생산단위를 재조직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더 준다고 하는 소문은 1980년대부터 늘 있어왔던 겁니다. 따라서 저는 북한의 포전제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입니다. 이런 것에 우리가 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으려면 어느 특정한 경제 부문이 아니라 북한 경제 전체에 이런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이런 게 어느 한 회사, 자강도 같은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든 분야에 도입됐다는 게 널리 공고돼야 합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충분히 확산되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어느 특정 분야가 아닌 경제 전반에 걸쳐 이런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군요?

프랭크: 맞습니다. 만일 북한 정권이 개혁을 해야 하고 변화를 꾀해야 한다면 그런 개혁은 광범위해야 합니다. 게다가 이런 개혁은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쳐야 하며 되돌릴 수 없다는 인상을 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북한 주민들이 반응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죠. 이들은 이미 경험을 통해 배운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경험상 국가에서 어떤 일을 시작해도 6개월 뒤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안다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또한 포전제에 따라 생기게 된 새로운 기회를 그들은 충분히 활용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들은 정부가 하는 포전제 시책이 정말 새로운 방향이고, 진지한 사업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만 주어진 기회를 충분히 활용도 하고, 동기부여도 되고 반응도 보일 겁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이런 현상이 아직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그런데 김정은이 경제 전반에 대한 개혁 작업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프랭크: 당연하지요. 과거 동유럽이나 구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겪었듯이 김정은도 전면적인 경제 개혁을 하고 나면 권력을 잃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김정은에게 그런 개혁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겁니다. 따라서 김정은은 중국의 등소평 식 개혁을 원합니다.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식이죠. 다시 말해 김정은은 경제 개혁에도 성공하고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권력도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그는 국내적 정적뿐 아니라 외부의 적에 맞서 자신의 권좌를 유지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가 국내외적으로 위협을 느끼는 한 경제 분야에서 개혁과 같은 모험을 취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기자: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