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안녕하세요. 북한에 총체적인 문제점을 차근차근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대담에는 국민대 교수이신 안드레이 란코프 박사입니다. 란코프 박사님, 오늘 첫 순서인데요. 사실 북한의 문제점이라고 하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오늘 첫 시간엔 어떤 주제를 다뤄주실까요?
란코프
: 네, 오늘 첫 시간엔 북한의 만성적인 경제난과 경제 개혁 문제를 살펴볼까 합니다.
변: 북한의 경제 개혁을 얘기하려면 먼저 북한이 오늘날 어떤 경제 상황에 처해 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올해 초 남한 통계청이 '북한 주요 통계지표' 란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놓았는데요. 이걸 보면 2009년말 현재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격차는 37배에 달합니다. 좀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만7천175달러인 반면 북한은 960달러에 불과했습니다. 란코프 박사님, 북한이 경제를 개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요?
란코프
: 이론적으로 말하면 북한 정부는 열악한 경제 조건을 빨리 개선할 방법이 있습니다. 북한이 중국식 개혁으로 나가는 겁니다. 중국은 1960년대에 2~3천만명 사람이 굶어 죽은 대기근을 경험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중국은 기근을 극복했지만 북한에 비해 경제적으로 크게 뒤처져 있었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1970년대의 중국의 경제 형편은 2010년 북한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1977년부터 등소평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중국은 눈부신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했습니다. 지난 20~30년 동안에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엄청난 경제발전을 했습니다. 그 동안 중국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아주 빠르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중국 변화를 보면서 이걸 중국의 경제 기적으로 묘사합니다. 사실 세계 역사를 보면 오늘날 중국처럼 이렇게 짧은 기간에 경제 생활이 이만큼 좋아지는 전례가 별로 없습니다.
변: 네, 지금 설명하셨듯이 오늘날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미국 다음의 세계에서 2번째로 큰 경제 대국입니다. 중국이 13억4천만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임을 감안할 때 개방, 개혁 30여년만에 이 정도 경제 성장을 이뤘다는 건 참으로 대단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처럼 중국이 개혁, 개방을 통해 잘 사는 나라로 발전했는데 북한도 이런 사실을 알까요?
란코프
: 물론 잘 알죠. 북한 고위 간부들은 중국을 자주 갑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개혁, 개방으로 발전한 곳들을 많이 구경합니다. 그러다 보니 10년전엔 아무 것도 없던 곳에 다층 건물, 대규모 공장 등이 생긴 것을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할 기회도 많습니다.
변: 이처럼 눈부신 중국의 발전상을 확인했으면서도 북한 지도부가 중국처럼 개방, 개혁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란코프
: 간단하게 말하면 북한 지도부가 중국처럼 개혁과 개방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남북 분단 때문입니다. 그들은 분단 국가에서 개혁이 너무 위험하다는 걸 잘 압니다. 북한도 중국처럼 경제 개혁을 시도한다면 평범한 북한 사람들의 생활은 많이 좋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보다는 체제 유지에 대해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분단 국가인 북한에서 개혁은 서민들을 도와주기는 하겠지만 동시에 집권 계층에겐 위협이 될 것 같습니다. 북한 정권은 중국식 개혁이 체제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못하는 거죠.
변: 다시 말해 중국은 남북한처럼 분단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훨씬 개혁, 개방을 하기가 쉬웠다는 말인가요?
란코프
: 그렇지요. 중국이 개혁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중국에는 남중국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중국은 남북한처럼 분단된 나라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북한이 만일 중국식의 개혁을 하게 되면 북한 주민들은 남한 주민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알게 될 겁니다. 만약 북한 정권이 개혁을 한다면 주민들은 불가피하게 외부 세계와 접촉이 훨씬 활발해질 겁니다. 또 북한 내부에 외부 생활에 대한 지식이 많이 들어올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과거 개혁, 개방을 할 때 이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중국이 남한, 일본, 미국보다 잘 못 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에겐 미국이든, 일본이든, 남한이든 모두 다른 나라일 뿐입니다. 역사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민족도 다릅니다.
변: 혹시 중국인들은 개혁 과정에서 대만인들이 자기들보다 더 잘 산다는 걸 알았나요?
란코프
: 그렇습니다. 그러나 대만은 작은 섬나라에 불구합니다. 중국 인구는 14억명 정도이면 대만 인구가 2천만명 정도 입니다. 70배 정도 차이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대만과의 통일을 이룩할 경우에도 대륙 중국에서 생활수준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물론 대만은 시장 경제의 우월성을 잘 보여 줍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시장 경제, 자본주의 경제입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국내 안정을 유지하면 조만간 대만을 능가하는 수준을 이룩할 수 있을 줄 압니다.
변: 그렇군요. 그러니까 북한의 경우는 대만과 다르다는 거네요?
란코프
: 맞습니다. 북한 정권이 개혁을 시작한다면 북한 주민이 바라볼 나라, 비교 대상이 될 나라는 당연히 대한민국, 즉 남한입니다. 같은 민족이 사는 나라입니다. 남북한은 같은 민족의 나라이지만 경제적인 지수를 보면 남북한만큼 일인당 소득 수준 격차가 심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남한 생활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다면 너무 심한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북한 주민들은 남한이 북한보다 잘 사는 것은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남한이 더 잘 산다는 것을 알긴 알지만 얼마만큼 더 잘 사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잘 사는 나라의 기준은 고기국과 쌀밥을 매일 먹는 것입니다. 즉 쌀밥 못 먹는 사람들이 못 사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남한에선 쌀밥을 먹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자가용 승용차가 없는 사람들을 아주 못 사는 사람으로 봅니다. 북한 주민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의 반응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장 통일을 하자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민들은 남한과 통일하면 하루 아침에 북쪽의 모든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변: 사실 자동차 말씀을 하셨는데, 오늘날 남한은 세계에서 자동차를 5번째로 많이 생산할 정도로 자동차 대국입니다. 특히 현대차는 자동차 왕국인 미국에서도 알아주죠. 남한에선 자동차 한 대 없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동차가 일상화됐는데요. 한마디로 남한은 북한에 비해 절대적인 경제적 우위를 차지하는데 이걸 북한 주민들이 알까봐 북한 지도부가 두려워할 거란 얘기죠?
란코프
: 그렇습니다. 북한 정권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중국처럼 개혁을 통해서 경제를 살리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에겐 특권과 권력 유지가 인민들의 생활 개선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개혁을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 정권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비효율적이며 시대착오적인 경제 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변: 어짜피 김정일 정권 아래에선 개혁이 불가능하다면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 아래에선 어떨까요?
란코프
: 현 단계에서 알기 어렵습니다. 김정은의 정치 목적이나 사상이 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김정일 사망 후에도 김정은 정권은 얼마 정도 원로들의 영향이 크니까 김정일의 정치 노선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 것은 아주 가설적인 얘기입니다.
변: 김정은도 개혁을 거부한다면 결국 북한 경제가 살려면 북한 정권이 민주적으로 교체되거나 남한과 흡수통일이 대안인가요?
란코프
: 그렇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말하면 남한과의 흡수통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건 먼 미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북한 지도부는 아무 변화 없이도 앞으로 5년, 10년, 15년 동안 그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그 동안 북한 경제는 아무런 발전도 없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또 그러는 사이 남북한의 경제적인 격차뿐만 아니라 북한과 중국 사이의 격차도 많이 커질 것입니다.
변: 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결국 개혁, 개방 만이 북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길인데 인민의 복지 향상보다는 체제 유지에 급급한 북한 정권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는 얘기군요. 지금까지 란코프 박사와 함께 한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