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개혁 거부감은 김정일 시대 유산”

0:00 / 0:00

기자: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 김정은 정권 들어서 경제부문에서 소위 개혁 움직임이 감지돼왔습니다. 예를 들면 농업 부문에서 포전담당제를 실시하고, 공업에서 독립채산제를 시행하고 있다는데요. 경제부문에서 이 같은 변화를 소위 '경제 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란코프: 제가 보기에는 나름대로 북한식 개혁으로 볼 수는 있습니다. 김정은시대 북한 관영언론들은 개혁이라는 말을 심한 욕으로 봅니다. 북한은 개혁이라는 것을 반동적인 정책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논리는 북한과 같은 완벽한 사회에서 개혁은 필요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관영언론의 황당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김정은시대의 경제정책은 1970년대 말 개혁정책을 시작한 중국의 정책과 매우 유사합니다. 물론 북한 관영언론은 이 사실을 전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북한은 90년대 초부터 개혁이라는 서구식 개념에 강한 거부감을 가져왔기 때문에, 개혁을 실시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도 못 합니다. 그런 면에서 개혁에 대한 이와 같은 부정적인 태도는 김정일 시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지금 말씀하신 걸 보면 김정은 시대 들어서 비로서 경제부문의 개혁이 시도된 것처럼 보이는데요. 김정일 시대에는 개혁에 대한 시도가 없었나요?

란코프: 이것은 좀 복잡한 질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이 통치한 시대는 17년입니다. 그동안 김정일도 개혁을 시도한 적이 딱 한 번 있습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2년간에 걸쳐 김정일도 중국을 흉내낸 개혁을 사실상 실시하였습니다. 당시에 북한은 종합시장을 도입하고, 공업에서 관리구조를 바꾸고, 장마당에 대한 단속을 많이 완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신의주에서 경제특구 설립 준비를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17년에 걸친 김정일 시대를 종합적으로 보면, 경제개혁을 시도한 기간은 고작 2년 뿐입니다. 대체로 말하면 김정일이 실시한 정책의 기반은 서구식 경제개혁을 거부하는 것이 기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시대는 물론 북한에서 장마당을 중심으로 하는 자발적인 시장화가 많이 심화되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개혁이 아닙니다. 당시에 시장화는 자발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인민들은 당선전 일꾼들의 주장, 즉 정부의 입장을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장사를 시작했고 새로운 장마당 문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 개혁은 자발적인 것이 아닙니다. 개혁이라는 것은 정부가 계획해서 실시하는 정책입니다. 김정일 시대에는 정부차원에서 시장화를 추진하는 정책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김정일과 그 측근들은 북한에서 중앙경제를 유지하려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김정은 시대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김정일 정책과 김정은 정책의 제일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1970년대 말부터 중국이 개혁을 시작해 커다란 성과를 이룩했다는 사실을 김정일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란코프: 물론 김정일은 중국 경제개혁의 성공을 너무 잘 알았습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북한도 경제개혁을 시작하도록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개혁의 성과를 많이 보여 주었습니다. 개혁의 상징물로 볼 수 있는 상해까지 김정일이 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지도자들의 희망과 달리 김정일은 여전히 개혁정책을 굳게 반대하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김정일은 개혁을 통해서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와 같은 정책은 불가피하게, 위험하고 어려운 정치적 문제를 초래했을 것입니다. 김정일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성장이나 인민생활수준 향상보다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은 자신의 권력유지 및 안전유지였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개혁을 너무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기자: 중국에서의 성공적인 경제개혁은 아무 정치적인 문제를 초래하지 않았는데, 왜 김정일은 개혁에 대한 공포를 가졌을까요?

란코프: 좋은 질문입니다. 중국과 북한은 매우 중요한 차이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즉 북한은 분단국가입니다. 중국은 분단국가가 아닙니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면 중국도 분단국가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건설을 시작하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또 하나의 중국은 대만뿐입니다. 물론 대만은 잘 사는 부자 국가이지만, 중국에 비하면 너무 작은 섬나라에 불과합니다. 중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 아예 없습니다.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은 바로 밑에 남한이 있습니다. 인구는 두 배입니다. 경제생활, 국민생활 수준으로 보면 북한과 남한은 하늘땅 차이만큼 큽니다. 1인당 소득, 즉 평균적인 남한사람들이 버는 돈을 보면 남한은 북한보다 적게는 15배, 많게는 30배 정도 잘 살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이 만큼 격차가 큰 이웃 나라는 남북한밖에 없습니다. 당시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남한의 경제성공은 비효율적인 사회주의경제로 인민생활이 피혜한 북한에는 가장 큰 정치적 위협이 되었습니다.

기자: 사실 경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중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이나 남한 사람, 미국 사람과 비교해보면 더 어렵게 삽니다. 그렇지만 이는 중국에서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왜 그렇게 느낄까요?

란코프: 중국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든 일본이든 남한이든 다른 민족이 사는 외국입니다. 이들 국가의 문화, 역사 등은 중국과 사뭇 다릅니다. 중국 사람이 보기에는 미국이나 일본의 경제적 성공은 중국 정부의 무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남북한은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남북한에는 같은 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언어도 비슷하고, 문화는 요즘에 차이점이 많아지기 시작했지만, 얼마 전까지 거의 비슷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 사람이 보기에는, 남한의 성공은 북조선 정부의 무능력을 보여주고 김일성을 비롯한 김씨일가 정권이 수십 년 동안 실시해 온 정책이 틀렸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같은 민족인데 남쪽은 잘 살고 북쪽은 못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중국 사람들은 미국이나 일본이 자기들보다 잘 산다는 것을 알아도 그 때문에 중국의 체제에 대한 실망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 사람은 남한이 너무 잘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북한의 기존 체제와 집권계층에 대한 실망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