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최고위급 방한은 5.24조치 해제 염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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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선 최근 아시안 게임 폐막식에 때맞춰 남한을 전격 방문한 북한 고위 대표단의 방한 배경과 김정일의 통치 문제점 등에 관해 남한 국민대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안녕하십니까? 최근 인천 아시안 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북한의 황병서 인민군 총 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등 북한의 최고 실세 3명이 동시에 방한해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이번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북한 최고급대표단의 전격 방문을 어떻게 보십니까?

란코프: 북한은 이미 6~7월부터 러시아, 유럽, 일본을 대상으로 한 포용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북한의 고위 대표단은 러시아, 동남아, 유럽 등을 많이 방문했지요. 이런 정치노선은 지금도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최근 북한에서 가장 힘센 세 사람이 남한을 방문했습니다.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등 북한에서 지금 영향력이 제일 많은 인물들이죠. 만일 북한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면 이들은 서울, 인천을 방문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 최고위급 3인의 방한 자체를 이상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북한 역사를 보면 이런 식의 방문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바로 김정은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은은 원래 과장 행동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장성택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숙청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왜? 힘이 너무 많아서죠. 힘이 많은 후견인은 아주 위험한 사람입니다.

기자: 많은 언론에선 벌써부터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김정은 제1위원장에 이은 북한의 2인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에서 황 총정치국장도 힘이 너무 세지면 혹시 숙청당한 장성택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있을까요?

란코프: 물론입니다. 독재국가에서 독재자와 가까운 사람은 계속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옛날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고급 간부들은 장성택의 숙청에 따른 교훈을 잘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장성택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김정은에 대해 아무런 비판을 하지도 않고 김정은의 마음에 드는 말만 하고 그의 정책을 절대 비판하지 않는 겁니다. 예를 들어 황병서 등 세 사람을 인천으로 보낸 문제를 보면 이는 진짜 지나친 처사입니다. 한 명이나 두 명만 갔어도 충분했을 겁니다. 장성택과 같은 사람들은 비판적인 말을 할 수도 있었고 조언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 황병서, 최룡해와 같은 사람들은 아마도 김정은 앞에서 감히 그런 말을 하지 못합니다.

기자: 그러니까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모두 김정은 제1위원장 앞에선 꼼짝도 못하는 '에스맨'이란 뜻인가요?

란코프: 맞습니다. 장성택 같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김정은에게 '원수님, 이 만큼 많은 사람을 보내면 문제가 될 겁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비판적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좋지 않아요. 독재국이든 민주국이든 최고 지도자는 그의 행동, 정책에 어느 정도 비판할 수 있는 측근들이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장성택 숙청 이후 북한 고급 간부들은 비판을 하는 것이 정치적 자살행위와도 같습니다. 이는 김정은의 정치노선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기자: 노동당 조직지도부 출신인 황병서는 과거 당에 있을 때 군부 인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담당해왔고 이들의 비밀 행적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어 군부 인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요. 김정은이 황병서를 기용한 것도 군을 장악하기 위해서겠죠?

란코프: 물론이에요. 최룡해도 똑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벌써 2012년 10월 이룡호 숙청 사건이후 김정은 정권은 가능하면 인민군의 정치적 영향력을 통제, 제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용호가 숙청된 이후 인민군을 사실상 감시한 사람은 최룡해입니다. 최룡해의 부친은 인민군에서 국가보위상을 지낸 최현입니다. 하지만 최룡해는 노동당 청년동맹 출신으로 인민군과 별 상관이 없습니다. 사실상 노동당, 당중앙을 대표하는 인물에 불과합니다. 황병서도 비슷합니다. 바꿔 말해서 지금 북한에서 선군정치를 운운하고 있지만 사실상 인민군을 지휘한 사람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한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인민군복을 입은 적이 없는 노동당 일꾼들입니다. 황병서가 그런 사람입니다.

기자: 이처럼 황병서 등 최고위급 대표단을 남한을 방문했는가 이수용 외무상은 유엔과 러시아를 방문했고,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는 최근 유럽을 방문하는 등 북한이 요즘 들어 전방위 외교를 펼치는 느낌인데요. 어떤 목적이 있을까요?

란코프: 제가 볼 때 북한은 지금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가능하면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금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북한은 물론 중국에게서 지원을 받고 중국과 무역을 하면 좋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요즘 중국이 북한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높습니다. 그들의 무역 구조를 보면 사실상 중국은 북한 무역을 독점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외교역사를 보면 김일성 시대부터 지켜온 원칙은 북한을 후원하는 국가가 하나만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는 국가가 적어도 두 개, 가능하면 세 개 있으면 제일 좋다는 입장입니다.

기자: 그러니까 과거 북한이 1960년대 중국과 소련의 틈바구니에서 등거리 외교로 득을 봤던 것처럼 지금 북한도 지나친 중국의 의존에서 벗어나려 이런 외교 다변화 활동을 펼친다는 것이군요?

란코프: 네, 지금 북한의 희망은 러시아에서도 지원을 받고 러시아와 무역을 촉진함으로써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 중국이 북한 정치에서 차지할 수 있는 잠재력을 줄이는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차단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이념은 김일성 시대부터 등거리 외교입니다. 즉 어느 한 나라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으면 위험한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기자: 남한 정부는 2010년 3월 북한이 남한 천안함을 폭파하자 그 해 5월24일 남북교역 중단한 '5.24 조치'를 취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 북한이 황병서 일행을 보내 남북고위급 접촉을 하기로 합의한 것도 실은 5.24 조치의 해제를 염두에 둔 측면이 있다는 말이군요?

그코프: 그렇습니다. 북한 최고 실세 3인방의 인천 방문에 대해서도 확실히 말하기 어렵지만 이것도 비슷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희망은 제일 먼저 남한 정부가 취한 5.24 조치를 해제하는 겁니다. 그걸 통해 남한과의 무역을 다시 살릴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렇게 해서 남북무역이 본격화되면 좋은 일입니다. . 5.24 조치가 해제되지 않을 경우 북한의 대남 무역성장은 불가능합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