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 순서에서도 북한의 경제개혁 문제에 관해 좀 더 살펴보겠는데요. 중국은 1970년대 말 경제개혁 및 개방을 실시한 뒤 경제도 좋아졌지만 공산당 일당 독제체제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 김정은 정권은 체제불안을 이유로 경제개혁에 소극적이지 않습니까? 김정은이 지금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개혁을 실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란코프: 가능할 지 모르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요즘에 사실상 개혁을 조심스레 추진하려는 김정은 정권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개혁을 잘 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공업설비도, 기술도 얻어야 합니다. 북한 관영언론은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력갱생을 운운하고 있지만, 이것은 평범한 민중만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북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북한과 같은 나라가 해외에서 기술, 공업설비, 투자 등을 받지 못한다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하지만 경제개혁을 통해 중국이 경제발전을 포함해 너무도 많은 것을 얻지 않았습니까?
란코프: 중국은 경제개혁을 통해 1970-80년대 해외에서 얻은 게 너무 많습니다. 북한도 이와 같은 기술과 공동 설비를 받을 때에 불가피하게 외부세계와 인적 교류가 많이 활발해질 것입니다. 외국 기술자, 사업가들이 많이 북한으로 가고, 북한 사람들도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 해외로 많이 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혁을 하는 나라가 돈을 버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실상 수출을 많이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국내에서 생산된 물건을 세계 시장에서 팔고 돈을 버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개혁은 국제교류의 활성화를 초래할 겁니다. 결론적으로 개혁의 불가피한 결과는 인간교류 및 해외생활에 대한 정보의 확산, 특히 북한 사람들이 가장 알고 싶은 나라인 남한생활에 대한 정보의 확산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분단 국가인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남한의 눈부신 경제성공을 북한 주민들이 점점 더 알게 된다면 불가피하게 체제 안전을 위협하고, 내부 봉기를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김정일 위원장은 개혁은 정치적으로 너무 위험해서 하지 않으면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기자: 세계 어느나라건 경제 개혁이 없다면 경제 성장이 거의 불가능한데요. 세계 역사를 오랫동안 경제 성장이 없는 나라가 무너지는 경우도 있지요?
란코프: 물론 그렇습니다. 지난 수십 년의 역사가 잘 보여주듯이 개혁을 하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국가사회주의는 다 무너졌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공산당이 여전히 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들 나라는 겉으론 공산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사실상 시장 경제를 채택했습니다. 북한의 경우, 고난의 행군 직전부터 시작한 자발적인 시장화가 보이지 않게 북한 체제를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1990년대 말 들어와 북한에서 사회주의가 끝나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구 소련식 국가사회주의 경제는 다 마비되었습니다. 김정일은 이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발적인 변화, 김정일도 차단할 수 없는 변화 때문에 그는 개혁을 시작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분단국가인 북한에서 중국식 개혁을 채택했다면 짧은 기간 이내에 내부 봉기가 일어나고 체제붕괴를 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김정일이 허용한 자발적인 시장화는 장기적으로 말하면 체제의 위기를 초래할 것 같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즉각적인 위협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당시 김정일이 개혁을 거부한 논리는 무엇이었을까요?
란코프: 1990년대 김정일과 그 측근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중국처럼 개혁을 한다면 경제를 살리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지만, 이와 같은 정책은 몇 년 후에 국내 정치 위기를 촉발시키고 체제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발적인 시장화가 북한 체제를 조금씩 약화시키고 있지만, 경제 개혁을 하지 않는 대신 가능한 한 엄격하게 장마당을 단속한다면 20년이나 30년동안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김정일은 60세가 넘은 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20년은 영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김정일의 입장에서, 개혁은 자살과 매우 비슷한 모험이었습니다. 반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정책은 늙은 나이에 자연사 할 때까지 거의 확실히 살 수 있는 방법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김정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기를 결정했습니다.
기자: 결국 김정일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북한 경제가 성장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기근에 빠졌다고 봐야죠?
란코프: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의 입장에서 보면 권력유지는 경제성장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김정일은 경제개혁 대신 시장화를 유지하는 현상유지 정책으로 북한이라는 나라를 구조할 수 있다고 보았고, 이와 같은 정책을 정당화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김정일에게 권력 유지는 인민의 생활수준을 향상할 수 있는 경제 성장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질문: 앞서 교수님은 김정일 정권이 체제불안 때문에 개혁을 하지 않았다고 하셨지만 김정은은 나름대로 개혁을 조용히 실천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김정일과 김정은은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란코프: 김정은이 처한 상황은 선친 김정일의 상황과 비교하면 차이점이 많습니다. 김정일이 자신의 개인 이익 때문에 개혁을 하지 말아야 했던 반면에, 김정은은 반대로 자신의 개인 이익 때문에 위험하고 쉽지 않은 개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하나 김정일하고 김정은은 참 중요한 차이점 하나가 있습니다. 이 차이점은 그들의 나이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김정은이 해외에 유학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김정일보다 개혁과 개방을 할 마음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최고 권력자는 자신의 이익과 상충되는 정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30대 초반인 김정은의 나이를 고려하면 그의 장기적인 전망은 선친 김정일이 갖고 있던 전망과 사뭇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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