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선 최근 북한이 미국 정부의 고위 인사 방북을 대가로 억류 미국인 2명을 풀어준 것과 관련해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David Straub) 씨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스트라우브 전 한국과장은 현재 스탠퍼드대학 부설 아시아태평양문제연구소 한국학 부소장으로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미국 16개 정보기관을 관할하는 국가정보국의 제임스 클래퍼(James Clapper) 국장이 지난 8일 평양을 전격 방문해 북한에 억류돼온 케네스 배, 매튜 밀러 등 두 사람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북한은 과거 케네스 배 씨의 석방을 위해 방북하려던 로버트 킹 북한인권대사를 2번이나 초청해놓고 막판에 취소한 적도 있는데요. 우선 북한의 이번 석방 의도가 뭘까요?
스트라우브: 간단히 말해 북한의 이번 석방결정은 극적인 일이긴 하지만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북한이 왜 두 사람을 풀어줬을까요? 여기엔 두 가지 문제, 즉 북한이 왜 풀어줬으며 하필 이 시점인가 하는 문제이죠. 우선 북한은 결코 이들 미국인을 오랜 기간 억류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억류한 미국인들을 모두 풀어줬죠. 미국은 이런 사람을 북한이 억류한 '인질'로 간주했고, 북한은 이들을 통해 미국에게서 뭔가 얻고자 했습니다. 북한이 왜 이들을 억류했다가 풀어주면서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는 여전히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많은 생각을 해본 끝에 내린 결론은 북한이 이들을 내부 선전용으로 이용하면서 동시에 미국을 향해선 '우리가 당신보다 더 강하고 의롭다. 우린 자신들의 중대범죄를 고백한 이들을 체포했다. 이제 당신들이 와서 풀어달라고 간청하니 우리는 관대한 마음으로 석방하기로 했다'는 식의 말을 하고 싶은 심리적 욕망 때문입니다. 북한 지도부는 바로 이런 심리적 상승감을 맛보고 싶은 겁니다.
기자: 하필 왜 이 시점에 석방했을까요?
스트라우브: 말씀하신 대로 왜 이 시점을 택했는지 더욱 알 길이 없습니다. 2년 전 케네스 배가 구금된 직후 북한이 그를 '인질'로 활용할 것이며, 자신들이 원하는 걸 얻은 뒤에야 석방할 것이란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북한은 이를 위해 미국에 대해 고위 현직 인사가 방북하길 바란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나아가 사과를 바랬습니다. 북한은 석방 임무를 띠고 방북한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카터 전 대통령 때와 달리 북한은 이번 석방에 앞서 간헐적이긴 하지만 미국과 간접적으로 협상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로버트 킹 북한인권대사를 파견하길 바랬지만 킹 대사는 상당한 고위직은 아니라 북한이 만족하지 못했죠. 그래서 이런 주고받기 식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억류 미국인을 석방하기 위해선 결국 장관급 인사를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미국이 협상을 하기 위한 외교관이 아닌 정보기관의 수장인 클래퍼 국가정보국 국장을 택한 것도 그래섭니다. 미국도 북한에 대해 클래퍼 국장은 외교 협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단지 억류 미국인을 석방하는 게 방북 목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기자: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석방 결정은 미국과의 대화를 바란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다고 풀이하기도 하는 데 어떻습니까?
스트라우브: 북한은 늘 자기들 조건에 따라 미국과 대화하길 바랬습니다. 북한은 북한은 핵무기 국가이며, 따라서 미국은 그런 기준 아래 북한과 협상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조건을 전혀 바꾸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입장은 미국 측에선 전혀 받아들일 수 없죠. 따라서 북한이 미국과 대화하고 싶다는 말은 이번 석방과는 무관한 겁니다. 일종의 혼선책이죠. 그런 식으로 북한이 미국과 대화하고 싶다는 것은 '불순한' 동기에서 나온 겁니다.
기자: 만일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일 경우 설령 미국인들이 북한에 억류된 상황이라도 미국은 대화에 응했을까요?
스트라우브: 만일 북한이 진심으로 합리적인 조건 아래에서 자신들의 핵 계획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신뢰성있게 보여주고 협상에 임한다면 미국은 설령 자국민이 억류된 상황이라도 협상에 응할 겁니다. 물론 미국 관리들이 자국민 억류가 협상의 장애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미국인 억류 문제는 북한이 미국보고 '북한을 핵무기 국가로 인정하라, 미국이 모든 핵을 포기하기 전엔 우리도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식의 엄청난 장애물에 비하면 아주 작은 장애물입니다.
기자: 미국 정부는 이번 석방과 관련해 북한에 아무런 보상은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정말 그렇다고 봅니까?
스트라우브: 100% 확신할 순 없지만 제가 정부에 몸담았을 때나 클린턴 전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을 방문했던 경험을 가지고 말하자면 미국 관리가 공개적으로 '어떤 보상도 없었다'고 한 말은 맞습니다. 우리가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한 현직 고위 인사를 평양에 보냈다는 것 외에는 말입니다.
기자: 현재 북미 최대의 현안은 북한 핵 문제입니다. 이번 미국인 석방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석방과 핵 협상은 별개란 원칙이지만 이번 석방 건을 계기로 대화의 불씨를 살려볼 필요는 없나요?
스트라우브: 북한의 핵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입장은 전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6자회담의 기본 목적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핵무기를 개발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올 전망이 보이지 않는데 미국이 무턱대고 협상에 응할 아무런 이유가 없지요. 미국은 협상에 앞서 북한보고 먼저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시드 사일러 국무부 북핵 특사도 최근 연설에서 협상이 열리려면 북한이 추가 핵 프로그램 개발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억류 미국인 석방과 관계없이 북한은 협상을 벌이기 위해선 먼저 비핵화에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말이군요?
스트라우브: 맞습니다. 미국은 그런 입장을 공개 혹은 비공개적으로 누차 강조해왔습니다. 북한은 정치적으로, 제도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핵개발 프로그램에 깊숙이 빠져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핵포기를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북한이 바라는 것은 선전과 조작을 통해 계속 자신들의 핵 문제를 물고늘어져 국제사회가 피로감을 느끼게 해 마침내 북한을 사실상 핵무기 국가로 인정하도록 하는 겁니다.
기자: 북한은 근래 강석주 노동당 국제비서를 유럽에 파견했는가 하면 이수용 외무상을 유엔에 보내 평화 공세와 인권공세를 펼쳤는데요. 그런 의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스트라우브: 북한이 지난 한 두 달 고위급 인사를 파견해 두드러진 외교활동을 벌인 건 사실입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종종 그런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를 피로감으로 몰아 넣어 자신들의 핵 문제와 그에 따른 제재를 누그러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제사회를 상대로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식의 선전을 하지만 이런 외교노력은 보기 좋게 실패했습니다. 최근 이수용 외무상이 유엔에 와서 인권외교를 벌였지만 실패한 게 한 예입니다.
기자: 앞으로 오바마 행정부 임기가 2년 정도 남았는데요. 이 기간에 혹시 핵 협상이 재개되거나 북미관계가 개선될 조짐은 없을까요?
스트라우브: 개인적으론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진정한 자세를 보이기 전까진 협상이 열리는 걸 원치 않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전임 부시 행정부와 달리 아주 일관적인 훌륭한 대북 노선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은 북한 쪽에 있습니다. 제 말이 틀릴 수도 있지만 북한은 핵문제에 관한 기존 입장을 향후 2년 간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겁니다. 그건 미국도 마찬가집니다. 만일 북한이 또 다시 핵실험을 할 경우 미국과 유엔은 오히려 향후 2년 간 북한에 대한 압력을 더욱 넣을 겁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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