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 순서에서는 김정은 체제 하의 북한 경제개혁 문제에 대해 러시아 출신의 북한 전문가인 게오르기 톨로라야 (Georgy Toloraya)박사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톨로라야 박사는 1970년대와 80년대 평양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직접 만나본 적이 있고, 북한 내부 사정에도 정통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북한에서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국제사회에선 경제 부문에서 뭔가 개혁조치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구체적인 개혁 청사진이 나오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톨로라야: 북한 경제의 문제점은 지금의 경제체제가 60년전에 고안된 것이라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이죠. 한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점은 어느 나라도 전시에는 경제 개혁을 할 수 없는데요. 제가 볼 때 북한은 지난 60년 동안 전시 체제와 흡사한 형태에 있었다고 봅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자유주의 국가들에서도 일단 전시 상태에 들어가면 시장 활동이 전개될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경제활동을 국가가 통제하기 때문이죠. 북한은 지금도 비슷한 상태여서 시장 세력이 완전히 발전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국가가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외국 이해세력이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죠. 북한이 처한 정치 상황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개혁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을 둘러싼 외부환경, 즉 핵 협상이 타결되고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가 풀리고 협상이 시작되면 김정은이 경제개혁을 시도할 가능성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기자: 김정은이 올 봄 개혁파인 박봉주를 경제담당 총리로 임명한 것을 보면 김정은이 경제개혁에 나름의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톨로라야: 김정은은 경제 분야에 변화를 꾀하겠다는 점을 이미 보여줬습니다. 이를테면 가장 유명한 것은 지난해 6월 28일 농업 분야에서 개인들에게 더 많은 잉여 이익을 돌려주는 식의 개혁 조치를 내놓은 것입니다. 이건 과거 중국의 개혁 방식과 비슷합니다. 물론 6.28조치는 정치적 요인 때문에 확대 실시되진 않았지만 말입니다. 저는 1년에 한 두 번은 북한을 방문하는 데 최근에도 평양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보기엔 밑바닥 경제가 점점 더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도 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통제를 많이 완화했습니다. 한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북한 당국이 공식으로 발표한 경제 개혁이라든가 혹은 개인 재산이나 경제활동, 시장활동의 허용에 관해 공식으로 발표한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당국은 기존의 관련 법들을 엄격히 실시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때문에 모두가 당국의 통제가 완화되고 있다는 건 압니다.
기자: 근래 북한을 다녀오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전에 비해 볼 수 없는 변화상을 말씀해주시죠?
톨로라야: 현재 북한에는 장마당은 물론이고 평양 같은 곳에는 요식업 등을 비롯해 장사활동에 종사하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평양에는 상점도 많고 해외에서 물건을 수입해다 내놓은 소비품목도 많습니다. 이런 외화전용 상점에선 북한 돈도 거래됩니다. 즉 북한 돈을 외화로 환산하는 환전 체계가 돼 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시장활동이 정교해지고 있고, 그에 따라 중산층도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많습니다. 김정은은 선친과 달리 이런 중산층을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간주할지 모릅니다. 지금 생성되고 있는 중산층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경제적 이해가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북한이 남한에 흡수되면 그들은 기득권은 물론 경제적 특권을 잃게 되기 때문이죠. 물론 김정은 자신이 중산층을 만들지는 않을는지 모르지만 새로운 중산층은 자신에게 힘의 기반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기자: 금방 중산층이란 표현을 쓰셨는데요. 이런 표현이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선 널리 통용되지만 북한처럼 계급사회에선 좀 생소한데요. 북한에도 서구식 개념의 '중산층'이 존재한다는 말인가요?
톨로라야: 분명 북한 주민들 가운데는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지요. 그들은 이런 돈을 자신들의 지위나 능력 혹은 시장 활동을 통해 벌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중산층 일부는 전, 현직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로 당과 군부의 간부들입니다. 저는 이들이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버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아마도 부패한 방법으로 돈을 벌지도 모르고, 자신들이 속한 다양한 기업소에 소속해 돈을 벌지도 모릅니다. 현재 북한에는 각급 도나 군, 혹은 보안부대가 운영하는 이런저런 상점과 대외거래 조직들이 있습니다. 또한 영리적 목적을 위한 농장을 운영하는 군부대도 있는데 이런 곳에서 시장활동이 벌어집니다. 바로 이런 데 종사하는 사람들이 중산층의 일부입니다.
기자: 중산층의 특징이 '돈'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아무래도 외화벌이나 대외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중산층으로 볼 수 있는 다른 계층도 있습니까?
톨로라야: 국영 광산이나 공장, 운송 수단 등을 이용해 시장 활동을 해서 돈을 번 사람들이 또 한 부류의 중산층입니다. 이런 시설들은 물론 국가의 소유이지만 지금은 뇌물 등을 주고 운영 통제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시장활동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로 밑바닥 장마당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이들은 물건을 구하러 중국을 드나들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중산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이들 대다수는 평양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은 지도층에 속해 있고, 그들은 주로 대외무역 회사들에 다니거나 대외무역과 관련한 일에 종사합니다. 물론 중산층이 모여 사는 곳은 평양이지요.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이 지방엔 없다는 건 아닙니다. 러시아에도 자본주의가 도입됐을 때 제일 처음 돈을 번 사람들은 은행, 갱단, 전직 당 지도급 인사들이었고, 이들은 주로 수도 모스크바에 모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엔 이들 부유한 중산층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런 일은 정상적인 것이죠. 북한도 마찬가질 겁니다. 북한과 같은 획일주의 사회도 지금처럼 중산층의 성장을 그대로 놔두면 나중에 번창해서 중국에 버금가는 변화가 북한 사회에도 올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기자: 김정은 체제 들어 사회통제가 많이 완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경제 분야에서도 장마당도 활성화되고 민간의 경제활동도 늘어나는 추세이지 않습니까?
톨로라야: 김정은도 김정일이나 김일성이 말한 공산주의 이념이나 혹은 사회주의 사상이 더는 아무 쓸 데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이런 사상은 이제 통하질 않습니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공산주의 이념과 사상에 도전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그가 유독 관심있는 것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나라와 정권을 지키는 겁니다. 만일 민간 경제활동이 이런 부분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한 그는 그대로 놔둘 겁니다. 그런 경제활동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경제적 권위에 누군가 도전한다면 응징을 당할 겁니다. 지금까지 그의 권위에 도전한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자: 그렇군요. 북한이 경제적으로 이런 저런 문제가 많습니다. 만일 김정은의 고문이라면 어떤 충고를 하고 싶은가?
톨로라야: 무엇보다 경제활동과 관련한 여러 부문을 법제화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시장활동도 법제화하고 재산권도 법제화하라는 겁니다. 또한 북한경제를 개방할 수 있는 경제 전략을 짜라는 겁니다. 우선 기존 경제활동을 법제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경제규칙을 세워서 어떤 건 되고 안 되고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또한 부패를 발본색원하고, 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넘어서는 안 되는 금지선도 정해놔야 합니다. 북한은 현재 법이 없는 사회와도 같습니다. 물론 북한 사회에는 많은 법들이 있어 누구건 유죄, 무죄를 단정할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뇌물이나 부패를 이용해 이런 법을 피해갈 수도 있습니다. 이래가지곤 나라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법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어떤 건 되고 어떤 건 안 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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