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주민 충성자금에 시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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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요즘 북한에서 '충성자금'이란 것이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 당국은 지난 10월 노동당 창건일 열병식을 앞두고 주민들한테 충성자금을 걷어 주민들의 원성을 샀습니다. 그런데 연말이 되면서 많은 주민들이 이래저래 밀린 '충성자금'을 바쳐야 하기에 아주 고생이 심하다는데요. 도대체 충성자금이란 무엇이고 언제부터 생겼습니까?

란코프: 북한에서 충성 자금의 역사는 1940년대 말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본격화되었습니다. 해방 직후, 많은 북한 주민들은 국가에 쌀, 돈, 귀중품 등을 바친 사례가 많았고 이것을 충성 자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국미와 같은 것은 충성 자금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국가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자발적인 뜻으로 바친 것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의 많은 주민들은 일제의 압력과 착취에서 해방되어, 누구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국가의 건설을 꿈꾸면서 자발적으로 돈이나 쌀과 같은 물건들을 국가에 바쳤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해방 초기만 해도 애국심에서 북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물자를 국가에 바쳤군요.

란코프: 맞아요.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물건을 바치는 방식이 변화하였습니다. 말로만 자발적인 것이라고 하였고, 사실상 주민들의 의무가 된 것입니다. 충성 자금을 바치라는 명령은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1972년은 김일성 주석이 환갑이 되던 해였습니다. 당시 북한 경제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지만, 경제성장의 둔화가 해마다 심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김일성 이후 최고 지도자가 되길 꿈꾸던 김정일은 아버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환갑 행사를 매우 호화스럽게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문제는 외화가 있어야 이러한 행사가 가능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은 김정일 지시로 할 수 없이 '충성의 외화벌이'라는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970년대부터 북한 대사관이나 다른 해외 기관은 외화를 벌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번 돈을 충성의 자금으로 국가에 냈습니다. 그 때문에 부작용도 많았습니다. 1970년대 들어와 북한 외교관들은 술, 담배 등 밀무역 사건뿐만 아니라 마약과 밀무역 사건 등이 발생하였습니다. 즉, 충성 자금으로 인해 그들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마약 판매와 같은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외교관들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였습니다.

기자: '충성의 외화벌이'가 그렇게 시작됐군요. 바로 이게 요즘의 '충성자금'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란코프: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충성 외화벌이는 1970년대 초, 김일성 주석 환갑 행사 준비 때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본적인 이유는 북한 국가가 별다른 문제없이 지내기 위해 외화가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다른 국가들과도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북한은 기술적 수준이 매우 낙후되어 있어, 국내에서 잘 팔리는 물건을 자체 생산할 능력이 부족하였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잘 팔리는 북한 상품은 철광석이나 석탄과 같은 지하자원과 수산물뿐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 정권은 기업소를 중심으로 하는 외화벌이를 할 뿐만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외화 벌이를 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국가가 하지 못하니까 주민들은 스스로 힘으로 해외에서 잘 팔리는 물건을 구하거나 외화를 벌어야 합니다. 이것은 사실상 '외화 세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무적으로 국가에 돈이나 물건을 바치는 것 역시 세금입니다.

기자: 충성자금은 해당자에 따라 내야 하는 규모도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해외 무역일꾼은 수천달러에서 수만 달러를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또 단위가 큰 기관에겐 수십만 달러가 되기도 한다는데요. 실제론 어떻습니까?

란코프: 제가 방금 전에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충성의 자금은 북한 식의 특이한 세금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세금이 납세자의 소득과 자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물론 매년 수십 만 달러나 수백 만 달러씩 무역을 하는 무역 일꾼들은 소득이 더 높기 때문에 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에서 충성 자금이 구체적인 경우는 해당자에 따라 그 규모가 매우 달랐습니다. 그러나 북한 식 외화 세금으로 볼 수 있는 충성 자금에는 흥미로운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세금을 결정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월 소득이나 연 소득의 일정 부분을 국가에 바쳐야 하는 것이 기본 원칙일 것입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잘 사는 나라에서 부자일 경우, 자신의 소득의 1/3 정도 즉, 30~40% 정도를 국가에 바쳐야 합니다.

기자: 미국이 그렇지 않습니까?

란코프: 미국이든 영국이든 호주, 일본이든 대체로 비슷합니다. 노동자와 농민과 같은 평범한 사람의 경우, 국가에 세금으로 바쳐야 하는 비율이 훨씬 낮은 편입니다. 보통 20~30%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경제학 입장에서 보면 가장 올바른 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국가에서는 경제 활동이 매우 투명하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개인의 소득이나 회사의 소득을 알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업가도, 노동자도 자신의 소득을 국가에 숨기기가 어렵습니다. 국가는 개개인이 번 돈이 얼마인지 잘 알고 있고, 그에 따라 세금의 비율을 감안하여 그가 내야 할 세금을 정확하게 결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