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오늘 순서에선 김정은 체제 하에서 북한의 개혁, 개방의 전망과 관련해 헤리티지 재단의 한반도 전문가인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 선임연구원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헤리티지 재단에서 일하기 앞서 미 중앙정보국과 국방정보국에서 약 20년간 북한 문제를 분석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2011년 12월 김정일이 타계한 뒤 후계자인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한지도 2년입니다. 북한에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과연 그가 군대를 앞세운 정책을 고집한 선친 김정일과 다른 노선을 취할 수 있을지 많은 궁금증과 기대감을 자아냈는데요. 우선 이 문제부터 살펴볼까요?
클링너: 제가 볼 때 김정은은 선친과 개성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에 있어선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김정은이 최고 지도자로 나섰을 때 일부 북한 전문가와 분석가들은 김정은이 어릴 적 스위스에서 몇 년 간 해외 생활을 했기 때문에 선친과는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나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과거 제3세계의 많은 독재자들이 서방에서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요. 김정은이 정권을 넘겨받은 직후 평양에서 문화행사가 열리고 디즈니 쇼가 벌어지고, 서구 영화의 장면이 보여지면서 뭔가 그는 다를 것이란 증거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물론 김정일은 생전에 2~3만점의 영화를 소장했던 게 사실입니다. 제가 기억하건데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이후 김정일이 곧 대담한 경제개혁에 나설 것이라고 예측한 전문가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하지만 김정은이 집권한 뒤 사람들은 그가 김정일만큼이나 경제개혁을 하지 않으려 하고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호전적이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기자: 그가 권력을 세습한 지도 2년이 됐습니다. 현재 그가 국정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고 봅니까?
클링너: 그런 것 같습니다. 누군가 만일 김정은에 도전하거나 권력을 찬탈할 수 있었던 가장 좋은 시기가 있었다면 그건 김정일이 사망한 직후였을 겁니다. 만일 김정일이 뇌졸증에 걸려 쓰러졌던 2008년 사망했더라면 여러 파벌과 힘있는 사람들이 서로 권력을 장악하려 했을 겁니다. 당시만해도 김정일의 후계자가 외부세계에 공표된 적이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김정일이 뇌졸증으로 쓰러진 직후 3년 간 후계체제 작업이 완료됐습니다. 그 결과 김정일이 사망한 직후 북한 정부와 선전매체는 김정은을 후계자로 적극 옹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권력투쟁도 없었고, 무슨 혁명위원회 같은 것이 조직돼 발표하는 것도 없었습니다. 대신에 이것 저것 지시하는 사람은 김정은이었습니다. 만일 그 시점에 누군가 김정은에 도전했다면 최상의 시기였고, 정권도 붕괴했을 겁니다. 하지만 김정은이 선친이 가지고 있던 6개의 각기 다른 직함을 하나씩 차지하면서 다방면에서 국정을 장악하게 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도전자들이 운신하기도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김정은이 사실상 전권을 부여 받은 상황에서 누군가 도전했다면 이는 김정일의 유언에도 반하는 것이었지만 위법적이기도 한 것이었을 겁니다. 일부 관측통들은 김정은 체제가 6개월 혹은1년 정도밖에 지속하지 못할 것으로 보았지만 그건 틀린 관측이었습니다. 제가 볼 때도 김정은은 시간이 흐를수록 권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기자: 북한에선 전통적으로 군부가 정권의 힘을 떠받쳐왔는데요. 하지만 김정은 체제 들어서 군부의 힘이 당 부문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요?
클링너: 맞습니다. 제가 볼 때도 군부의 힘이 당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선 김정은이 김일성의 통치 수법을 모방하고 있다고 봅니다. 김정은은 이미 옷이나 외모를 비롯해 많은 부문에서 김일성의 흉내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거 김일성은 당을 통해 지배했지만 김정일은 군부를 통해 지배했습니다. 따라서 당에 더 힘을 실으려는 김정은의 노력은 김일성을 흉내 내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까지 막강한 권한을 가졌단 부문을 다른 부문으로 교체해 균형을 깨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자: 김정은이 이처럼 군부의 힘을 당으로 되돌려놓으려는 노력이 혹시 개혁 조치와도 관계가 있을까요?
클링너: 제가 보기엔 개혁보다는 권력 공고화 작업과 더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김정은이 개혁을 실천하고 싶다는 징후는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작년 '6.26 경제개선조치'가 9월에 열린 최고인민회에서 정식으로 채택돼 공표될 걸로 기대했지만 당시 회의에선 경제개혁과 관련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북한의 새로운 방침을 가늠할 수 있는 올해 신년사의 경우에도 경제 개혁과 관련해 한 단어도 나온 게 없습니다. 대신에 신년사엔 구소련식 협농 농장이나 중앙정부가 계획한 지침에 따라 사회주의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식의 표현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자: 하지만 김정은은 지난 봄 개혁파인 박봉주를 총리로 임명해 큰 관심을 끌지 않았습니까? 박봉주를 총리로 임명했다는 건 그만큼 김정은이 경제개혁에 관심이 있다는 표시가 아닐까요?
클링너: 글쎄요. 두고 봐야 할 겁니다. 제가 지난 20년 북한을 관찰해온 바론 회의적입니다. 그간 이런 저런 사람의 입을 통해 북한 개혁과 관련해 많은 관측과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김정은과 장성택에 관한 관측도 나왔죠. 하지만 어떤 구체적 개혁조치가 나온 게 없습니다. 북한은 2002년 이른바 7.1 경제관리조치를 내놓기도 했지만 나중에 후퇴했습니다. 혹자는 북한이 중국식 경제개혁을 취하기만 한다면 이게 정치개혁으로 이어지고 북한의 대외 행동도 누그러질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중국은 경제개혁을 취하긴 했지만 예상한 것처럼 정치개혁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중국의 대외 행동에 더 많은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죠.
기자: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장기적으로 개혁, 개방에 나서지 않으면 결국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는데요?
클링너: 물론 이론적으로 말하면 북한은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붕괴를 예측했음에도 북한은 1990년대 중반 대기근을 겪으면서도 지난 20년간 잘 버텨왔습니다. 어떤 경우 국제사회의 지원 덕분에 오히려 북한의 붕괴가 안 된 적도 있습니다. 북한은 대기근을 겪을 당시 아시아에서 세계 최고의 원조 수혜국이었죠. 이런 대기근이 위정자들의 잘못에 따른 재앙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때 북한은 연간 수백만 톤의 식량을 지원받았습니다. 그러다 미국이 원조를 중단하자 남한이 떠맡더니, 남한마저 중단하자 이번엔 중국이 떠맡았습니다. 북한에서 경제적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정치적, 인도주의적인 고려에 따라 이들을 지원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거듭 말하지만 북한은 향후 20년 안에 망할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론 50년 간 지속할 순 없을 겁니다. 그 변화의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올지는 모릅니다.
기자: 만일 클링너 연구원이 김정은의 고문이라면 어떤 충고를 하겠습니까?
클링너: 제가 만일 서구인의 자격으로 충고한다면 우선 김정은에게 국제법을 준수하라고 말할 겁니다. 이어 개혁과 개방을 하지 않으면 북한의 상황을 결코 개선할 수 없으리라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북한 사람이라면 김정은에게 공공외교에 좀 더 신경 쓰라고 충고하겠습니다. 북한은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섰을 때 굉장한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당시 김정일은 핵 문제와 관련해 오바마에게 모종의 양보를 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그랬으면 6자회담도 재개됐을 것이고 오바마도 모종의 양보를 했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은 그와는 반대로 도발행동을 벌였기 때문에 유엔의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됐습니다. 김정은이 들어섰을 때도 마찬가집니다. 만일 그가 외부세계를 위협하지 않고 자신을 개혁주의자로 내세우고 미국과 남한 등에 손을 뻗쳤더라면 상황은 훨씬 좋아졌을 겁니다. 하지만 작년 2월 북미 합의가 깨진 뒤 북한이 미국에 진정성을 납득시키는 것이 아주 힘들게 됐습니다.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북한, 이게 문제지요' 이 시간에선 김정은 체제하의 개혁, 개방 전망에 관해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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