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선 지난 11월 유엔 제3인권위원회를 통과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내용과 관련해 북한전문가인 미국 터프츠대 국제대학원 이성윤 교수의 견해를 들어봅니다. 이성윤 교수는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CNN 등 미국 주요 언론에 북한 정권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고, 2013년에는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북한 정권의 불법거래 현황에 관해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최근 통과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내용을 보면 인권유린을 자행한 북한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기는 등 예년과는 확연히 다르죠?
이성윤: 네, 금년은 많이 다릅니다.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이렇게 심도 있게 토론을 하고 111개국이 찬성표를 던졌고 반대표를 던진 나라는 9개국뿐이었습니다. 이 결의안은 금년 2월17일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토의를 하고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372쪽의 보고서는 지난 수 십년간 북한 정권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정권의 의도적이고 장기적으로 굶주림을 야기하는 정책은 국제법상 반인도적 범죄의 기술적 정의를 넓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이 기본적으로 변했다고 저는 봅니다. 즉 북한정권의 인권유린이란 중요한 문제는 보고서에 나온 구절을 인용하자면 '북한정권의 인권유린은 전 세계에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그래서 더 이상 많은 국가들이 방치할 수 없다'고 나와 있죠. 그래서 유엔도 북한 최고 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게 됐다고 봅니다.
기자: 유엔이 실은 2003년부터 대북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켜왔지만 2014년은 그런 점에서 아주 각별한 의미가 있겠군요?
이성윤: 그렇습니다. 금년은 국제사회에 북한인권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봅니다. 물론 사실 많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이란 나라를 연상할 때 '알지도 못하고 가보지도 못한 괴상한 나라' 는 추상적인 관념, 또한 '북한 인권 제기해서 뭐가 달라지겠느냐' 하는 안이하고 무기력한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하지만 2014년을 전환점으로 국제사회는 '북한 정권의 반 인도적 범죄를 이제는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강력한 입장을 취했다고 봅니다.
기자: 유엔북한인권위원회 보고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게 북한 주민의 기아문제 아닙니까? 그 원인이 자연적 재앙이 아닌 북한 정권의 그릇된 정책 때문에 야기됐다는 거죠?
이성윤: 북한의 기아현상은 세계 역사상 전례가 없습니다. 산업화, 공업화를 달성하고 문맹률을 퇴치한 나라가 기아를 겪은 적은 오직 북한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기근이 그냥 인재일까, 즉 날씨 탓 토지 탓만 하는 게 아니라 1990년대 전반부터 후반까지 북한 김정일 정권의 책임은 어느 정도일까? 이런 의문을 많은 분들이 갖고 있었는데 이 유엔보고서에 책임소재가 명확히 제시돼 있습니다. 북한의 식량난, 즉 당시 수십만에서 2백만까지 굶어 죽은 비극은 '바로 김정일 정권의 책임이다' 하는 점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1990년대 대규모 아사를 촉발시킨 원인이 자연 재해가 아닌 북한 정권의 잘못이란 말인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이성윤: 그렇습니다. 당시만 해도 90년대 중반 김정일 정권이 세계 최대의 호화판 금수산 기념관을 짓는 데만 8억 달러 이상을 썼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카자흐스탄 같은 데서 전투기를 여러 대 구입했습니다. 그 돈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2천3백만에 달하는 모든 북한 주민을 수년에 걸쳐 먹여 살릴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북한 날씨만 탓하고 있으면 큰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북한은 어떻게 지난 20년간 매년 이런 식량난, 영양실조에 시달릴 수 있겠습니까? 작년 유엔식량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인구의 84%가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년, 그러니까 2013년 한국 정부에 따르면 김정은은 해외에서 사치품을 구입하는 데만 약 6억6천만 달러를 썼다고 합니다. 유엔에 따르면 이 돈의 10분의 1만 가지고 식량을 구입했더라면 2013년 북한의 식량부족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2014년 9월 유엔 식량보고서를 보면 북한은 전 세계 국가중 세 번째로 식량부족이 심각한 나라인데요. 전 인구의 37.5%가 굶주리고 있다고 유엔보고서에 나와 있습니다. 북한과 비슷한 나라는 아프리카 빈곤국이지만 문맹률을 퇴치하고 산업화, 공업화를 이룬 나라로선 북한이 유일합니다.
기자: 10분의 1이면 6천여만 달러죠? 이 돈으로 북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
이성윤: 그렇습니다. 북한 정권이 사치품 구입의 10분의 1만 식량을 구입해 분배했다면 단 한 명도 배고플 필요가 없었죠. 북한이 돈이 없어 가난해서, 북한 정권이 가난해서, 식량을 구입할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방치해서 그랬습니다.
기자: 국가의 기본 사명 중 하나가 바로 국민의 복리민복을 보장하는 건데요. 그런 점에서 보면 북한이란 국가의 단면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죠?
이성윤: 그렇습니다. 북한정권이 인민의 3분의 1이 굶주리든 말 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은 바로 북한 정권의 성격과 연결돼 있습니다. 북한은 핵공갈, 무력, 위협 등과 같은 수단으로 정권을 유지해왔습니다. 특히 지난 25년 동안 냉전 이후 북한은 국가건설 차원에서 1945년 이후 가장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민주화 산업화를 한 세대만에 이룩한 남한이란 나라 바로 옆에 있으면서 체제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정상적인 경제개발 같은 수단으로 국가를 튼튼히 하고 인민들을 먹여 살리기 보다는 핵 공갈이나 주변국들에 대한 안보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능력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많은 보상을 얻어냈죠.
기자: 사실 이번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내용에서 가장 핵심은 역시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권고한 내용 아닙니까?
이성윤: 현실적으로 보면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세워서 재판을 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김정은을 체포해야 하는 데 쉬운 일도 아니고, 김정은을 감금하기 전엔 실현할 수도 북한을 침범할 수도 없죠. 반면 김정은 입장에선 자신이 재판에 설 수도 있다는 가능성, 어느 날 자신이 해외 순방 도중 체포될 수도 있다는 심적 부담을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김정은이 지금 30대 초반 아닙니까? 김정은이 앞으로 50년 간 해외 순방도, 여행도 못 한다고 생각해볼 때 지극히 불쾌하고 부담스런 일이죠.
기자: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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